글을 쓰고 싶은 갈증이 밀려왔다. 

어떤 주제라도 상관이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직장에서의 글이 아닌,

내 삶을 위한 글을 쓰지 못했다. 

관성이라는 놈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 동안 글을 적지 않은 나에게,

쉽사리 글쓰는 기쁨을 허락하지 않았다.


책상에 무작정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본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이 눈에 들어온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빨간색 표지에 하얀색 글자가 눈에 쉽게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이런 심플한 표지를 좋아한다.


'독서법'에 관련된 책이다.

이런 책이 내 방 서재 한 켠에 10권이 넘도록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목차를 읽어보니, 어떤 내용일지 쉽게 짐작도 된다.

보통 이럴 때는 책을 구입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글들을 읽고 지나친다.


그런데 책에 관련된 부분을 소개하는 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나중되면 조금은 후회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스스로 속아 넘아간다.

그리고 그동안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통해 

그에게 빚진 것 같은 부채감도 있었는데,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갚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몇 군데 줄을 그은 부분을 적어두기도 했지만,

무언가 그렇게 크게 다가오는 부분은 사실 적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텍스트를 통해서는 충분히 논리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저 글을 썼을 때의 그 마음을 진정으로 가슴으로 알 수는 없다.

그건 개인의 경험에 국한될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에 대한 깨달음이나 깊은 성숙은 스스로 경험해보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다. 그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정리된 생각이다.


그는 그렇게 책을 읽는 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추천도서 500권 목록은 너무나 감사한 선물이었다.)

그가 그저 부러운 것은 그가 책을 구입하고 읽어가면서.

가슴 속으로 쌓아갔던 그 고민의 시간들,

그 고민의 시간들을 거쳐서 스스로의 내면을 다져갔던 순간들,

지금도 그의 삶을 지탱해가는 그것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갑자기 '충만하다' 라는 네 글자가 생각이 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한껏 차서 가득하다' 라는 의미이다.

내 삶이 기꺼이 충만해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서운하니, 책을 읽고 줄을 그어 본 부분을 적어본다.


p146

책을 읽는 진정한 가치를 좀 다르게 표현하면, 책은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거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읽을 때 저자의 세계 전체와 상대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독서 행위의 정말 중요한 가치는 '이 사람이 한 권의 책에서 구현해낸 엄청난 세계를 내가 어떻게 빨리 습득하느냐'가 아니죠. '이 책은 저렇게 말하는데 나는 이렇지' 하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핵심이 아니죠. 그 둘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두 세계 사이의 교직에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기 성찰과 반성을 위해서라는 말은 부분적으로 맞지만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깊은 방식일 수 있지만 그 역시 핵심은 아닌 것 같아요. 핵심은 그 둘 사이 어디에 있다는 거죠. 그러면 둘 사이에서 만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을 함께 흘려 보내는 식으로 만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한다면 좋은 삶은 뭐겠어요. 시간을 흘려 보내는 삶,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잘 선택하는 삶, 그것이 좋은 삶이잖아요. 그래서 앞에서 말한 습관이라는 것도 시간을 경영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면,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검증된, 유쾌한, 훌륭한 방식 중 하나가 책 읽기라는 거죠


p151

독서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죠. 쌓는 독서라고 하면 내가 내 세계를 만들어가는, 내 관심사에 맞는 책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을 것 같고요. 허무는 독서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거나 다른 생각을 받아들에게 하는 경우일텐데요. 쌓는 독서를 게을리하면 '내 것'이 안 생기고, 허무는 독서를 안 하면 내 세계가 좁아지거든요. 




■ 목차 읽어보기


1부.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 실패한 독서가

. 그런데 왜 책을 읽으세요?

.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

. 넓이의 독서

. 문학을 왜 읽어야 하나요?

.꼭 완독해야 하나요?

.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없다.

. 지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은 무엇입니까?

. 이토록 편하고 행복한 시간을

. 읽고 쓰고 말하고

.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 느리게 읽어도 상관없다

. 책을 숭배하지 말아요

. 한 번에 열 권 읽기

. 때로는 도전도 필요하다

. 나만의 서재, 나만의 전당

. 책을 고르는 세 가지 방법

. 그래서, 좋은 독서란 무엇일까


2부. 대화 (읽었고, 읽고, 읽을 것이다.)

. 어린 시절의 책 읽기

. 넓이의 탐색

.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 이야기의 특별함

. 성공적인 실패

. 습관이 행복한 사람

. 두 세계의 교차

. 읽는 것과 쓰는 것

. 독자의 시작

. 앞으로 써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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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성과나 경쟁에서는 반드시 승리자를 가려내려 하는 이 시대가 만들어 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레 승리자가 생기면 패배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생겨난 패배자들은 결코 승리자들보다 부족한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세상이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렇게 만들어 졌을 뿐이다.


<위대한 패배자>의 작가인 볼프 슈나이더 이 책의 나가는 말에서 승리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사를 가만히 지켜보면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일수록, 혹독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일수록 정상에 좀더 쉽게 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백과사전에 이름이 실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거칠고 비정하고 역겨운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작가는 정치,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 속에서 각기 다른 패배의 모습을 찾아내어 그 사례를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위대한 실패자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며 실패에 대한 새로운 가치인식을 심어주는 지도 모른다.


또한, 각기 다른 시대와 국가들 속의 인물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만들며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두 인물 체 게바라와 앨런 튜링을 소개한다.



◇ 열대 우림의 피투성이 구세주 체 게바라 (1928~1967)


체 게바라는 자유주의적 좌파 성향의 건축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크 독재 체제를 피해 망명한 정치인들을 집에 받아들였는데 어린 체 게바라에게는 인상적인 기억이었다.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24살의 나이에 일상에서 떠나기로 마음 먹고 의사 보조, 웨이터, 부두 노동자, 말 사육사, 사진사 등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떠돌아 다닌다.


1955년 체 게바라는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로 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유격대원을 모집하던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고, 80명의 유격대원으로 1956년 12월 2일 쿠바 해안에 상륙한다. 하지만 쿠바 병사에 발각되어 쫓겨다니고 18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죽게 된다. 18명은 산으로 들어가 2년 동안 끈질기게 정부군에 대항하고 이후 카스트로는 야당세력을 모으는 데 성공하고 농민들로 부터 신뢰를 받게 되었으며 혁명군의 신병 모집도 늘어났다.


'혁명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노선이탈자, 밀고자, 탈영 계획자의 머리에 총을 직접 쏘며 사형을 집행을 할 정도로 엄격하고 가혹했다. 1951년 1월 1일 마침내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망가고 3일 뒤 카스트로가 유격대원을 이끌고 쿠바의 아바나에 입성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게바라는 쿠바 시민으로 선포되고 혁명 후 중앙은행장, 그리고 산업부장관에 임명된다.


체 게바라는 권력층이 되었지만 철저한 금육과 절제의 생활태도를 견지하고 상류층의 특권은 포기했다. 1965년 안주하는 삶과 관료주의적 강압에 염증을 느낀 그는 모든 관직을 버리고 다른 나라에도 쿠바의 혁명을 수출하겠다는 마음으로 콩고와 볼리비아로 향한다.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에서 혁명군으로 활동하다 라이게라 마을 근처에서 적의 매복에 걸린다. 그에게 총을 겨눈 병사에게 말한다.

"쏘지 마라! 나는 체 게바라다.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전 세계 인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미제국주의에 대한 진실과 쿠바에서 벌어진 혁명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그러한 사실을 안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의 정치고문단과 CIA와 협의 한 후에 대외적으로는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발표하고 비밀리에 처형한다.


사후에 그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인기가 치솟았다. 1969년에 그의 삶을 담은 오마 샤리프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수많은 전기가 쏟아져나왔다. 1997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는 체 게바라학 과목이 개설되었으며, 같은 해 볼리비아의 폐쇄된 활주로에서 발견된 그의 유골은 쿠바로 보내져 산타클라라에 사원이 만들어졌다.


그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만 간직했던 일들을 그가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으며 이 세계에 비해 선한 모든 사람은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어떤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고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무모할 정도로 돌진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는 철저히 패배했지만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고 죽어서는 승자가 되었던 패배자였다.


◇ 영국의 승리를 도운 무명인 앨런 튜링 (1912~1954)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그 누구보다 영국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은 바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하지만 이 사실은 그가 영국 법정과 정부의 수모에 못 이겨 자살한 지 20년 만인 1974년까지 묻혀있었다.


전쟁 중 연합군은 수수께끼라는 뜻을 지닌 독일 암호기 에니그마의 암호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니그마는 타자기처럼 사용되는 암호기로 타자기 안에 미리 설치해둔 회전체 덕분에 입력한 철자 대신 다른 철자가 타이핑되어 나오는 방식이었다. 후에는 회전체가 여덟개나 되었고 회전체의 위치도 날마다 바뀌면서 24시간 안에 풀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

당시 영국 암호해독반에 참여한 앨런 튜링은 1940년 '폭탄'이라 불리는 암호 해독 기계를 처음 고안하고 점점 조합의 수를 줄여가며 해독작업을 진행해나갔다. 1943년 3월 1일부터 20일 사이에는 수학자들에 대한 영국정보의 압력이 점점 커져갔다. 독일잠수함들은 2~3주 사이에 무려 108척의 선박을 침몰시켰고 전함들도 21척을 파괴시켰다. 반면에 적의 잠수함은 불과 1척 밖에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1943년 3월 21일부터 전세가 역전되었다. 튜링의 암호해독반은 독일의 암호를 한 시간안에 해독했으며 나중에는 단 몇 분으로 줄였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튜링과 그의 동료들은 암호학교를 나서기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튜링은 1948년까지 국립물리학연구소에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로 일했다 당시 에니악보다 뛰어난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자청하고 실제 1948년 에니악보다 연산 속도가 훨씬 능가하는 '파일럿 모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맨체스터 대학의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에 임명되고 인공지능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인간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관점에서 실험을 제안했고 이것은 지금도 전문가 그룹에서 유명한 '튜링테스트'였다.


그러나 1951년 이후 그는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 동성애자 였던 튜링은 열아홉 살 청년과 우연히 만나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당시에 처벌 대상이었다. 이에 영국정부는 그를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에서 해임시키고 1년 동안 강제 치료를 받게 한다. 그리고 불과 얼마 후 1954년 6월 7일 마흔 둘도 채 되지 않은 그는 사과에 독약을 주사한 뒤 동화 속 백설공주처럼 사과를 깨물고 삶을 마무리한다.


후에 영국 정부에 허가를 받은 프레더릭 윌리엄 윈터보섬이 1974년 <울트라의 비밀>을 통해 당시 암호해독반의 이야기를 했고 앨런 튜링이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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