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중독서 <이기적 유전자> 


Chapter2. 자기복제자


안정을 향하여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학설이 납득할 만한 것인 이유는 어떻게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지, 어떻게 무질서한 원자가 복잡한 패턴으로 모여 인간을 만들어 내기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윈은 인간의 존재에 관한 심원한 문제의 해답을 제공해 준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기된 해답 중에서 유일하게 그럴듯하다.



생명의 기원과 자기 복제자


생명 탄생 이전의 지구에는 어떤 화학 원료가 풍부했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타당성 있는 것들로는 물, 이산화탄소, 메탄, 암모니아 등 태양계 내 적어도 몇 개의 행성에 있다고 알려진 단순한 화합물이 있다. 화학자들은 초기 지구의 화학적 상태를 재현하려는 많은 시도를 했다. 가능성이 있는 이들 단순한 물질들을 플라스크에 넣고 자외선이나 전기 방전(원시 시대의 번개를 인공적으로 모방한 것) 등의 에너지원을 가한 뒤 2~3주 지나면 대개 플라스크 속에서 흥미로운 것이 나타났다. 처음에 넣었던 분자들보다 복잡한 분자들이 다량 포함된 연갈색 액체가 생긴 것이다. 특히 그 액체에서 아미노산이 발견됐는데, 이것은 생물체를 구성하는 대표 물질 두 가지 중 하나인 단백질을 구성하는 요소다.


더 최근에는 생명 탄생 이전의 화학적 상태를 본뜬 실내 실험에서 퓨린(purine)과 피리미딘(pyrimidine)이라는 유기물이 생성됐다. 이들은 유전 물질인 DNA의 구성 요소다.


이와 비슷한 과정이 생물학자나 화학자가 30~40억 년 전에 해양을 구성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원시 수프'를 만들어 냈음에 틀림없다. 이들 유기물은 아마도 해안 부근의 말라붙은 물거품이나 떠 있는 작은 물방울 속에 국지적으로 농축되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다시 태양으로부터 자외선과 같은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결합하여 더 큰 분자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거대 유기물 분자가 만들어지자마자 박테리아나 기타 생물에 흡수되어 분해되기 때문에 눈에 띌 정도로 오랫동안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박테리아나 그 밖의 여러 생물이 아직 생겨나지도 않았다. 거대 유기물 분자는 점점 더 진해지는 수프 속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표류했을 것이다.


자기 복제자


어느 시점에 특히 주목할 만한 분자가 우연히 생겨났다. 이들을 자기 복제자라고 부르기로 하자. 자기 복제자는 가장 크지도, 가장 복잡하지도 않았을 수 있으나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든다는 놀라운 특성을 지녔다. 


자기복제자를 주형이라고 생각해보자. 여러 가지 종류의 구성 요소 분자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하나의 거대 분자라고 생각해보자. 이 자기 복제자가 담긴 수프에는 이들 구성 요소들이 많이 떠다닌다. 이제 각 구성요소가 자기와 같은 종류에 대하여 친화성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되면 수프 속의 어떤 구성 요소가 자기 복제자에서 자기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 부분과 만날 때마다 자기 복제자에게 들어붙으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들러붙은 구성 요소는 자동적으로 자기 복제자 내 구성 요소들의 서열과 같은 식으로 배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성 요소들이 최초의 자기 복제자가 만들어졌을 때처럼 안정한 사슬을 만들 것이라 상상하기는 쉽다. 이 과정이 순서에 따라 계속 반복되어 그 산물이 층층히 쌓인다. 이것이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방법이다. 한 편 두 가닥의 사슬이 세로로 쪼개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2개의 자기 복제자가 되어 그 각각이 다시 복제를 계속할 수 있다.


복제의 오류


생물학적 자기 복제자의 복제 오류는 진정한 의미의 개량으로 이어지며, 몇몇 오류의 발생은 생명 진화가 진행되는데에 필수적이다. 최초의 자기 복제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사본을 만들어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자손인 현재의 DNA 분자는 인간의 정확한 복사 기술에 견주어 보아도 놀랄 만큼 정확하지만, 그 DNA분자도 때로는 오류를 일으킨다. 그리고 결국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오류다. 아마도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더 많은 오류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오류는 생겨났고, 이 같은 오류들이 누적되어 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원시 수프는 모두 똑같은 복제자 사본의 개체군이 아닌,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몇 가지 변종 복제자의 개체군들로 채워졌다. 어떤 변종은 다른 변종보다 그 수가 많았을 것이고, 수명이 길었을 것이다.


다산성과 정확성


어떤 자기 복제자가 개체군 내에서 퍼져 나가는 데 보다 더 중요한 특성은 바로 복제의 속도, 즉 '다산성'이었다. 수프 속의 분자들이 더 높은 '다산성'을 갖는 '진화적인 경향'이 존재했을 것이다.


선택에서 살아남았을 자기 복제자 분자의 세 번째 특징은 복사의 정확성이다. X분자와 Y분자가 같은 시간 동안 존재하고 같은 속도로 사본을 만들지만, X형 분자가 평균 열 번 중 한 번 잘못된 사본을 만들고 Y형 분자가 백 번 중 한 번밖에 잘못된 사본을 만들지 않는다면 분명히 Y형 분자 쪽이 수적으로 많아질 것이다.


수프는 여러 종류의 안정한 분자, 즉 오랜 시간 존속하거나 복제 속도가 빠르거나 복제의 정확도가 높은 안정한 분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을 것이다. 이들 세 종류의 안정성을 향한 진화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은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수프에서 두 번 샘플을 취할 경우, 두변째 샘플에서는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 면에서 우수한 분자들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본직적으로 생물학자가 말하는 생물의 진화이며, 그 메커니즘도 바로 자연 선택이다.


생존경쟁 / 오늘날의 자기 복제자


원시 수프가 무한히 많은 자기 복제자 분자를 담고 있기는 불가능했다. 자기 복제자가 많아지면서 구성 요소 분자는 점점 더 소진되어 결국 희소하고 귀중한 자원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복제의 여러 가지 변종들 내지는 계통들이 경쟁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자기와 경쟁하는 종류의 분자를 화학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한때 다른 분자를 구성했던 구성 요소를 자기의 사본을 만드는 데 이용하는 개체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 원시 육식자는 먹이를 얻음과 동시에 경쟁 상대를 제거할 수 있었다. 


아마도 어떤 자기 복제자는 화학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둘레에 단백질 벽을 만들어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자기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최초의 생존 기계는 아마도 보호용 외피 정도 였을 것이다. 그리고 생존 기계는 더 정교해지고 누적되면서 개량화 했을 것이다. 장구한 세월동안 어떤 기괴한 자기 보존 기관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 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정한다. 우리는 아마 그들의 생존기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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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성과나 경쟁에서는 반드시 승리자를 가려내려 하는 이 시대가 만들어 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레 승리자가 생기면 패배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생겨난 패배자들은 결코 승리자들보다 부족한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세상이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렇게 만들어 졌을 뿐이다.


<위대한 패배자>의 작가인 볼프 슈나이더 이 책의 나가는 말에서 승리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사를 가만히 지켜보면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일수록, 혹독하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일수록 정상에 좀더 쉽게 도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백과사전에 이름이 실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거칠고 비정하고 역겨운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작가는 정치,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 속에서 각기 다른 패배의 모습을 찾아내어 그 사례를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위대한 실패자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며 실패에 대한 새로운 가치인식을 심어주는 지도 모른다.


또한, 각기 다른 시대와 국가들 속의 인물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만들며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두 인물 체 게바라와 앨런 튜링을 소개한다.



◇ 열대 우림의 피투성이 구세주 체 게바라 (1928~1967)


체 게바라는 자유주의적 좌파 성향의 건축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크 독재 체제를 피해 망명한 정치인들을 집에 받아들였는데 어린 체 게바라에게는 인상적인 기억이었다.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24살의 나이에 일상에서 떠나기로 마음 먹고 의사 보조, 웨이터, 부두 노동자, 말 사육사, 사진사 등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떠돌아 다닌다.


1955년 체 게바라는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로 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유격대원을 모집하던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고, 80명의 유격대원으로 1956년 12월 2일 쿠바 해안에 상륙한다. 하지만 쿠바 병사에 발각되어 쫓겨다니고 18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죽게 된다. 18명은 산으로 들어가 2년 동안 끈질기게 정부군에 대항하고 이후 카스트로는 야당세력을 모으는 데 성공하고 농민들로 부터 신뢰를 받게 되었으며 혁명군의 신병 모집도 늘어났다.


'혁명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노선이탈자, 밀고자, 탈영 계획자의 머리에 총을 직접 쏘며 사형을 집행을 할 정도로 엄격하고 가혹했다. 1951년 1월 1일 마침내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망가고 3일 뒤 카스트로가 유격대원을 이끌고 쿠바의 아바나에 입성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게바라는 쿠바 시민으로 선포되고 혁명 후 중앙은행장, 그리고 산업부장관에 임명된다.


체 게바라는 권력층이 되었지만 철저한 금육과 절제의 생활태도를 견지하고 상류층의 특권은 포기했다. 1965년 안주하는 삶과 관료주의적 강압에 염증을 느낀 그는 모든 관직을 버리고 다른 나라에도 쿠바의 혁명을 수출하겠다는 마음으로 콩고와 볼리비아로 향한다.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에서 혁명군으로 활동하다 라이게라 마을 근처에서 적의 매복에 걸린다. 그에게 총을 겨눈 병사에게 말한다.

"쏘지 마라! 나는 체 게바라다.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는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전 세계 인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미제국주의에 대한 진실과 쿠바에서 벌어진 혁명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그러한 사실을 안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의 정치고문단과 CIA와 협의 한 후에 대외적으로는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발표하고 비밀리에 처형한다.


사후에 그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인기가 치솟았다. 1969년에 그의 삶을 담은 오마 샤리프 주연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수많은 전기가 쏟아져나왔다. 1997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는 체 게바라학 과목이 개설되었으며, 같은 해 볼리비아의 폐쇄된 활주로에서 발견된 그의 유골은 쿠바로 보내져 산타클라라에 사원이 만들어졌다.


그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만 간직했던 일들을 그가 직접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으며 이 세계에 비해 선한 모든 사람은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어떤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고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무모할 정도로 돌진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는 철저히 패배했지만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고 죽어서는 승자가 되었던 패배자였다.


◇ 영국의 승리를 도운 무명인 앨런 튜링 (1912~1954)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그 누구보다 영국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은 바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하지만 이 사실은 그가 영국 법정과 정부의 수모에 못 이겨 자살한 지 20년 만인 1974년까지 묻혀있었다.


전쟁 중 연합군은 수수께끼라는 뜻을 지닌 독일 암호기 에니그마의 암호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니그마는 타자기처럼 사용되는 암호기로 타자기 안에 미리 설치해둔 회전체 덕분에 입력한 철자 대신 다른 철자가 타이핑되어 나오는 방식이었다. 후에는 회전체가 여덟개나 되었고 회전체의 위치도 날마다 바뀌면서 24시간 안에 풀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

당시 영국 암호해독반에 참여한 앨런 튜링은 1940년 '폭탄'이라 불리는 암호 해독 기계를 처음 고안하고 점점 조합의 수를 줄여가며 해독작업을 진행해나갔다. 1943년 3월 1일부터 20일 사이에는 수학자들에 대한 영국정보의 압력이 점점 커져갔다. 독일잠수함들은 2~3주 사이에 무려 108척의 선박을 침몰시켰고 전함들도 21척을 파괴시켰다. 반면에 적의 잠수함은 불과 1척 밖에 피해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1943년 3월 21일부터 전세가 역전되었다. 튜링의 암호해독반은 독일의 암호를 한 시간안에 해독했으며 나중에는 단 몇 분으로 줄였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튜링과 그의 동료들은 암호학교를 나서기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누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튜링은 1948년까지 국립물리학연구소에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로 일했다 당시 에니악보다 뛰어난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자청하고 실제 1948년 에니악보다 연산 속도가 훨씬 능가하는 '파일럿 모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맨체스터 대학의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에 임명되고 인공지능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인간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관점에서 실험을 제안했고 이것은 지금도 전문가 그룹에서 유명한 '튜링테스트'였다.


그러나 1951년 이후 그는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 동성애자 였던 튜링은 열아홉 살 청년과 우연히 만나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당시에 처벌 대상이었다. 이에 영국정부는 그를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에서 해임시키고 1년 동안 강제 치료를 받게 한다. 그리고 불과 얼마 후 1954년 6월 7일 마흔 둘도 채 되지 않은 그는 사과에 독약을 주사한 뒤 동화 속 백설공주처럼 사과를 깨물고 삶을 마무리한다.


후에 영국 정부에 허가를 받은 프레더릭 윌리엄 윈터보섬이 1974년 <울트라의 비밀>을 통해 당시 암호해독반의 이야기를 했고 앨런 튜링이 세상에 다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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