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7년 동안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생각해오던 방식과 기술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은 되지만, 그렇게 큰 역할은 하지 못하네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설득하는 일을 차근차근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회사라는 건, 제가 배울 때 까지 기다리지 않는 법이지요.

새롭게 시작한 지 6주 정도 된 거 같은데, 평소 같지 않게 한 숨이 자주 나오고 스트레스성 증상들이 하나 둘 생겨납니다.


그 동안은 이런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어 왔던 거 같습니다.

하루가 힘들었을 때 그걸 잘 풀고 새로운 하루를 마주해야 하는데, 푸는 방식은 자기 전에 캔 맥주 2캔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정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떠는 건 그렇게 큰 효과가 없습니다. 조용히 어떤 책을 집중해서 읽어내고, 잔잔한 음악 조차 배제하고 단지 백색 소음 속에서 조용히 제 머릿 속의 생각들을 글이라는 형태로 토해내는 것이 저를 다시 차분하게 해주고, 가슴을 달래주는 듯 합니다.


제대로 저를 달래주지 못하다보니, 괜한 짜증과 스트레스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짜증스런 목소리와 상처주는 말을 뱉어낼 때도 생겼습니다. 뒤늦게 다시 미안한 마음에 달래도 보고, 스스로 자책도 몇 번이고 해봅니다.


이번 주말은 온전히 하루 동안 저만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냥 책만 읽으려고 합니다. 우선 손에 잡은 책은 그동안 이름만 수 없이 들었던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 입니다. 책상 의자에 앉아 보다가, 쇼파에 누워서 읽고, 바닥에서두  발을 모으고 책을 잡은 손으로 무릎을 감싸면서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휴~' 그냥 오랜만에 한 권을 단 숨에 읽어버린 것이 기쁘네요. 이런 게 저한테는 무엇보다 큰 위안입니다.


『댓글부대』는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이 운영한 댓글 부대를 1세대로 보고 있으며 그 이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불현 듯 생각난 게 있었습니다. 예전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생각은 국정원에서 댓글 부대를 운영한단 말이야 하는 역할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댓글 부대가 만들어지기 전에 과정이 궁금해졌으며,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소름이 돋아났습니다. 저는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어떤 제안을 하거나 일을 할 때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댓글 부대를 만들 때도 누군가는 제시를 했겠죠. 어떤 방식으로 어떤 주제의 글에 어떤 댓글을 남길 경우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 질 것이며, 그런 댓글을 반복적으로 남긴다면 그건 분명 여론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여론이 생기고 대중의 의견이 되면, 저희가 모두들 알 듯이 우리는 그 대세라는 곳에 편승해서 자신의 의견없이 그저 몸을 싣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석과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고 누군가는 이런 방법을 제시하고 실제 국정원을 통해서 실행에 옮겼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제가 사는 세상을 낯선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네요.


인터넷신문사 중에 돈 받고 기사 실어주는 데들 많아요. 뒷거래고 뭐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인터넷언론 홈페이지 가면 첫 페이지에 그냥 써 있어요. 기사 게재 문의는 어디로 하라고. 인터넷 돌아다니다보면 이게 신제품 홍보인지 기사인지 모를 뉴스들 있잖아요. 보도자료 그대로 올려놓은 거. 그게 다 그렇게 올리는 거예요. 별로 비싸지도 않아요. 30만원 정도? 그 인터넷신문이 네이버뉴스에 등록이 돼 있냐 안돼 있냐, 기사에 '이 기사는 광고 기사입니다' 라고 쓰느냐 마느냐, 기자 이름 적느냐 마느냐 그런 거에 따라 가격은 좀 달라지지만.

그렇게 기사 올린 다음에 실시간검색어 순위를 올리면 누리꾼들이 알아서 다 퍼가요. 내용만 있으면 (중략)

조금 있으면 큰 언론사에서도 퍼가요. 언론사에 닷컴부서라고 인터넷뉴스만 따로 만드는 팀들이 있거든요. 그런 데는 실시간으로 클릭수랑 유입량 체크하고 그걸로 광고 팔아서 돈 버니까 조금만 화제가 된다 싶으면 다 퍼가요. 팩트 확인하고 그런 거 없어요.

그러면 살마들이 웃기는 게, 신문사 닷컴 사이트에 기사가 오르면 그게 실제로 그 신문에 난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신문에 실렸으니 이건 진짜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 P165


장강명 작가의 프로필을 보니 11년간 동아일보 기자생활을 했네요. 그래서일까요? 무언가 하나의 사건을 파헤쳐가는 것에서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짜임새 있게 이어갑니다. 제 성향도 나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을 해서인지 몰라도 이런 흐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사이버 상에서 의도적인 목적으로 심각하게 댓글을 조작하고, 그걸 넘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획에서 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런데 그게 정말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속의 내용은 마치 취재를 해서 적어놓은 듯 느껴집니다. 


오늘 아내와 무슨 대화 중에 제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여보, 아이를 낳고 나이가 점점 들어가다 보니까 정말 사는 게 더 무서워진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냥 저만 열심히 하면 모든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다 보니, 예전에 인정하지 않았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되고, 어떤 것은 그건 내가 바꿀 수 없는 무엇으로 고정시켜버리기도 합니다. 어쩔 때는 그저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 그저 멍하니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반응형

내 안의 악(惡)은 무엇일까?




온라인 서점에서 문자가 날라왔다. 예전에 예약했던 정유정 작가의 신작 『종의 기원』 이 도착한다고 한다.

보통 책이 출간되기 전에 사전 예약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정유정 작가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영화로 치자면 누구나 기대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유정 작가의 책은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에 이어서 네 번째로 만나는 책이다. 

하나같이 마지막 장까지 스스로 호흡을 관리하면서 읽어야 할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했다.

어찌 그녀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은 토요일 새벽 3시다. 방금 책의 마지막을 덮은 다음에 서둘러 이렇게 글을 남긴다.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뒷목의 근육이 뻣뻣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소설은 읽고 나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한기가 올라와서 긴 옷으로 서둘러 갈아입었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책을 접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에필로그, 작가의 말을 순서대로 읽었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있다.


책을 편 독자들에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는 하나 이야기 자체로서, 혹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부디 즐겨주시면 감사하겠다. (P383)


아주 힘들게 읽었다. 책의 소재 자체부터 너무나 자극적이다. 

작가 역시 이를 알았을 것이지만, 그렇게 깊숙히 밀고 가면서 진정으로 끄집어 내고 싶은 것이 있었나보다.

소재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살인' 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불편한 거는 그 살인에는 존속살인이 포함된다.


소설은 사이코패스인 유진의 시선과 아들이 사이코 패스인 걸 알고 살아왔던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서 전개된다.

정유정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는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해버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과감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의 입에는 오르기 조차 망설이는 주제이기에 어쩌면 많이 망설여졌을 테지만,

그러기에 더 과감한 표현이 이어졌을 거라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프로파일러 분에게 감사하다는 글을 보니.

유진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서 실제 일어난 사례도 많이 분석해본 듯 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예전에 있었던 존속살해 사회 기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과 몇 일 전에 강남역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살인이 벌어졌다. 

뉴스에는 듣기에도 무서울 정도의 살인 사건이 연일 보도되어 진다.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너무나 잔인하고, 이유가 없고, 반성도 없다. 

세상이 사는 게 점점 무서워지고 있다.


이 소설은 싸이코패스라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부터 인간의 근본적인 악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묻는다.

작가도 프로이트로부터 실마리를 악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P380)


나 역시 내면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표출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욕망은 프로이트의 말대로 상당히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위일 때가 있다.

입 밖으로 내밷기 힘들고 홀로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만이 알고 있기에 내뱉기 힘들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불편하지만 쏘아붙인다.

그래서 많이 불편하고 속이 메스껍기도 하다. 작가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즐겨달라고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했다. 하지만 역시 '정유정' 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유정의 새로운 스릴러를 읽는 내내 움크리고 있었고, 새벽이라 오롯이 들리는 내 숨소리에 긴장이 더했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후유증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반응형

 

소설가 정유정의 작품이다. 정유정의 이름 석자는 이제 이야기에 대한 신뢰를 나타낸다. 책이든 어떤 것이든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조건들을 따져 본다. 그럴 때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름 자체만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는 소설가 정유정이 그렇다.

 

베스트셀러, 남들이 많이 입는 옷, 쉽게 접하는 흔한 것들보다 우리는 나만의 독특함을 원한다. 넘쳐나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나의 취향을 찾아서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내고, 남들이 잘 입지 않는 브랜드를 탐하고, 항상 새로운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본질과 가치를 그 속에서 찾으려 한다. 나 역시 나만의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 남들이 많이 따르기에 나는 좀 거리끼는게 생기더라도 나 역시 좋아서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정유정의 소설이 그렇다.

 

<7년의 밤>, <28>, 그리고 접한 책이 <내 심장을 쏴라> 이다.

처음에 접한 책이 <7년의 밤> 이었다. 댐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어두운 분위기의 사건들과 치밀하고 치열하게 얽히는 사건의 얼개 속에서 헤어나오는 게 쉽지 않았고, 그 여운은 한 동안 지속되었었다.

아직까지도 <7년의 밤>은 나에게는 국내소설 중 가장 큰 보물로 뽑는다.

 

이번에는 그 전의 작품인 <내 심장을 쏴라> 이다.

예전에 정이현 작가가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그 속에서 사건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이야기거리를 찾는다고 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면, 그 살인사건의 당사자들 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가족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의문의 사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얼개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내 심장을 쏴라> 도 신문의 사회면의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정신질환자 2명, 차량을 탈취해 탈출. 1명 검거 - 강원일보, 2004년 9월 18일자 사회면]

[시신 없는 정황상 자살, 자살 방조죄 성립될까? - 강원매일, 2004년 10월 18일자 사회면]

이 두 기사가 바로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분명 우리는 실제로 어떤 이유 때문에 그랬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상상과 이야기라는 게 있다. 그것을 통해서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이야기는 정신병원에 갇힌 두 남자의 탈출기를 그린 것이다. 수명과 승민 동갑내기 두 남자는 끊임없이 탈출에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한다. 두 인물의 배경인물로는 의사를 비롯해 동료환자 특히 재밌는 케릭터인 만식, 그리고 한이와 지은이, 그리고 병원 측인 최기훈, 점박이등이 등장하면서 정신병원의 모습을 묘사한다. 작가는 실제 정신병원을 방문하면서 그 배경을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라 하지만 읽을 수록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가 실제 있음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직업이나 장소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 인터뷰 및 사전 조사등을 통해서 이야기에 철저히 녹아낸다는 점이다.

 

수명은 어머니의 죽음이후에 귓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 온다. 수명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수명은 귓속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집착하고 결국은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승민은 한 재벌의 혼외 자식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남기고 가고 이것을 계기로 해서 다른 배 다른 형제들과 갈등을 겪게 되고 강제로 정신병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점점 눈이 안보이기 시작한다. 수명은 그저 갇혔다는 생각 때문에 나가고 싶어하고 승민은 날고 싶다는 의지로 정신병원을 탈출하려고 한다.

 

p286

"날고 있는 동안 나는 온전히 나야. 어쩌다 태어난 누구누구의 혼외자도 아니고, 불의 충동에 시달리는 미치광이도 아닌, 그냥 나. 모든 족쇄로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존재, 바로 나."

"난 잘 모르겠다. 너로 존재하는 순간이 남은 인생과 맞바꿀 만큼 대단한 건지."

"넌 인생을 뭐라고 생각하는데? 삶은? 죽음은?"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수명과 승민이 탈출한 후, 승민이 떠나기전에 서로 대화를 나눈다

수명은 항상 얽매여서 살아왔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 속에서, 그리고 그로 인해 귓속의 누군가에게 얽매여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만의 무엇인가는 없었다.

 

수명은 특별히 병원을 나가서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없다. 그저 병원에 들어오면 병원밖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p291

꿈을 꿔요. 창문은 통로죠. 희망은 아편이고요."

"해석하면 이런 말이었다.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퇴원을 꿈꾸고, 퇴원하는 날부터 퇴원을 굼꿀 수 있는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은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그리하여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꿈꾸던 희망이 세상 속 진실보다 달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많이 아팠다. 나도 모르게 그냥 아팠다. 퇴원을 꿈꾸고 나갔으나 막상 나가고 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꿈꿀 수 있다는 것 조차 없다는 게 너무 아팠다. 우리는 무슨 문제가 발생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그 순간만을 생각한다. 이것만 해결되면, 지금 순간만 지나가면 모든 게 나아질 거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오히려 더 허무하고 더 안타깝고 아쉬울 수도 있는 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 버리고 주저앉는다.

 

방법은 없는 듯 하다. 그런 아쉬움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절망 속에서 다시금 뛰어 들고 다시금 판도라상자의 마지막 남은 희망에 기대 볼 뿐이다.

 

p327

"잘 가라고 안 해?"

승민이 물었다. 나는 조명탄을 꺼내 쥐고 절벽 끝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할게. 불빛을 보고 곧장 달려와."

승민은 손을 내밀었다. 머뭇머뭇 맞잡았다. 손을 떼자 손바닥에 승민의 시계가 놓여 있었다.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승민은 그렇게 떠난다. "네 시간은 네 거야."라는 마지막을 말을 남기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비행을 한다. 이제는 수명도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까? 아니 그동안 얽매였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그 동안 가위의 공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이발도 몇 번이나 했다라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아프더라도 마주하기를 바란다.

항상 생각해오던 말이 있다. 이제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가르쳐주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 닥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이 닥친 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삶에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온전히 나와 마주할 수 있도록 내면의 탄탄한 근육을 만들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반응형

'■ 책과 영화 > □ 소설,수필,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0) 2014.06.16
소년이 온다  (0) 2014.05.30
달과 6펜스  (0) 2014.04.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0) 2014.03.31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1) 2014.03.3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