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 갈증이 밀려왔다. 

어떤 주제라도 상관이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직장에서의 글이 아닌,

내 삶을 위한 글을 쓰지 못했다. 

관성이라는 놈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 동안 글을 적지 않은 나에게,

쉽사리 글쓰는 기쁨을 허락하지 않았다.


책상에 무작정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 본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이 눈에 들어온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빨간색 표지에 하얀색 글자가 눈에 쉽게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이런 심플한 표지를 좋아한다.


'독서법'에 관련된 책이다.

이런 책이 내 방 서재 한 켠에 10권이 넘도록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목차를 읽어보니, 어떤 내용일지 쉽게 짐작도 된다.

보통 이럴 때는 책을 구입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글들을 읽고 지나친다.


그런데 책에 관련된 부분을 소개하는 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나중되면 조금은 후회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스스로 속아 넘아간다.

그리고 그동안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통해 

그에게 빚진 것 같은 부채감도 있었는데,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갚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몇 군데 줄을 그은 부분을 적어두기도 했지만,

무언가 그렇게 크게 다가오는 부분은 사실 적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텍스트를 통해서는 충분히 논리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저 글을 썼을 때의 그 마음을 진정으로 가슴으로 알 수는 없다.

그건 개인의 경험에 국한될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에 대한 깨달음이나 깊은 성숙은 스스로 경험해보지 못하면

결코 알 수 없다. 그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정리된 생각이다.


그는 그렇게 책을 읽는 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추천도서 500권 목록은 너무나 감사한 선물이었다.)

그가 그저 부러운 것은 그가 책을 구입하고 읽어가면서.

가슴 속으로 쌓아갔던 그 고민의 시간들,

그 고민의 시간들을 거쳐서 스스로의 내면을 다져갔던 순간들,

지금도 그의 삶을 지탱해가는 그것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갑자기 '충만하다' 라는 네 글자가 생각이 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한껏 차서 가득하다' 라는 의미이다.

내 삶이 기꺼이 충만해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서운하니, 책을 읽고 줄을 그어 본 부분을 적어본다.


p146

책을 읽는 진정한 가치를 좀 다르게 표현하면, 책은 한 사람의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거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읽을 때 저자의 세계 전체와 상대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독서 행위의 정말 중요한 가치는 '이 사람이 한 권의 책에서 구현해낸 엄청난 세계를 내가 어떻게 빨리 습득하느냐'가 아니죠. '이 책은 저렇게 말하는데 나는 이렇지' 하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도 핵심이 아니죠. 그 둘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두 세계 사이의 교직에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책 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기 성찰과 반성을 위해서라는 말은 부분적으로 맞지만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한 사람의 세계를 만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깊은 방식일 수 있지만 그 역시 핵심은 아닌 것 같아요. 핵심은 그 둘 사이 어디에 있다는 거죠. 그러면 둘 사이에서 만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공간에서 특정한 시간을 함께 흘려 보내는 식으로 만나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한다면 좋은 삶은 뭐겠어요. 시간을 흘려 보내는 삶,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잘 선택하는 삶, 그것이 좋은 삶이잖아요. 그래서 앞에서 말한 습관이라는 것도 시간을 경영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면,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검증된, 유쾌한, 훌륭한 방식 중 하나가 책 읽기라는 거죠


p151

독서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죠. 쌓는 독서라고 하면 내가 내 세계를 만들어가는, 내 관심사에 맞는 책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을 것 같고요. 허무는 독서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거나 다른 생각을 받아들에게 하는 경우일텐데요. 쌓는 독서를 게을리하면 '내 것'이 안 생기고, 허무는 독서를 안 하면 내 세계가 좁아지거든요. 




■ 목차 읽어보기


1부.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 실패한 독서가

. 그런데 왜 책을 읽으세요?

.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

. 넓이의 독서

. 문학을 왜 읽어야 하나요?

.꼭 완독해야 하나요?

.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없다.

. 지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은 무엇입니까?

. 이토록 편하고 행복한 시간을

. 읽고 쓰고 말하고

.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 느리게 읽어도 상관없다

. 책을 숭배하지 말아요

. 한 번에 열 권 읽기

. 때로는 도전도 필요하다

. 나만의 서재, 나만의 전당

. 책을 고르는 세 가지 방법

. 그래서, 좋은 독서란 무엇일까


2부. 대화 (읽었고, 읽고, 읽을 것이다.)

. 어린 시절의 책 읽기

. 넓이의 탐색

.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 이야기의 특별함

. 성공적인 실패

. 습관이 행복한 사람

. 두 세계의 교차

. 읽는 것과 쓰는 것

. 독자의 시작

. 앞으로 써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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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책정리

 

#1.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 - 최병삼,김창욱,조원영/삼성경제연구소
-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주목을 받아온 플랫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IT업체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을 바라보면서 플랫폼에 대해서 설명하고 플랫품 구축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플랫폼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논리적인 구조를 잘 갖추고 있어서 논리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라든가 플랫폼에 대한 전략에 대해 접근법을 보기에는 좋은 것 같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 2.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마로니에북스

- 박경리의 <토지>를 읽다가 6권에서 정체되고 있다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았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제목인데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김약국과 그의 딸들이 겪게 되는 비극적인 삶의 이야기가 짙게 베어 있다. 읽고 나면 무언가 묵직한 기분이 든다. 읽고 나서 별도로 정리해두지 않고 서평을 쓰지 않은 게 아쉬운 책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의미있는 책이다.

 

# 3. 나의 조선미술 순례 - 서경식/반비

- 여기서 '조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선시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재일동포인 서경식 작가가 큰 그림에서 바라보는 우리나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가 직접 만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미술에 대해서 더듬어 가는 것이다. 다른 미술 관련 책들과 구별되는 점이라면 작품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작가를 중심으로 접근해가는 방식이다. 그의 작가 본인도 그렇고 디아스포라에 관련된 글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가 예전에 쓴 <나의 서양미술 순례>도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다.

 

# 4. 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 다케우치 가즈마사/비즈니스북스

- 전기자동차 테슬라, 우주산업 스페이스엑스, 태양광산업 솔라리스를 이끌고 있는 엘론 머스크에 관한 책이다. 사내외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유난히 많이 언급된 인물이다. '인간을 지구 밖으로 보낸다'라는 비전으로 실제 일을 만들어내고 실천해내는 모습이 대단할 뿐이다. 개인적인 목표, 비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책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분명히 목표를 찾아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 5. 식물의 인문학 - 박중환/한길사

- 식물, 나무, 환경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서 관련 분야의 책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처음에 들어가는 말부터 인상적이었다. "식물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그 외에도 가정 내에서 환기의 필요성과 식물을 기름으로써 얻는 효과등을 유심히 보고 조그마한 화분도 두개 사서 집에 두었다. 올해는 화분의 수를 많이 늘리고 관리법에 대해서 공부해볼 생각이다. 이 책은 식물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분명 좋은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인데, 몇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 6.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민음사

- 읽으면서 나 역시 수없이 상상했다. 망망대해의 조그만 배위에 낚시대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실제 그런 사진이라도 있으면 하나 구해서 책상 앞에 걸어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노인이 몸에 낚시 바늘을 두르는 모습, 손에 쥐가 나서 그 손을 보고 대화하는 모습들이 떠오르고, 자꾸만 그 노인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 그 설명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은 올해 안에 한 번 필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노트를 준비했다. 남다른 감동을 받은 건 아닌데 한 번 써보고 싶었던 충동이 일어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르겠다.

 

# 7.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 최효찬/예담

# 8. 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 최효찬/바다출판사

- 독서와 자녀교육에 대한 책이다. 무언가 특별히 남다른 이야기가 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보통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중간은 간다. 지금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뒤돌아보게 되고, 자녀 교육에 아버지로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준 책이었다.

 

# 9. 삶의 한 가운데 - 루이저 린저/민음사

- 이 책은 지루하지는 않은 데 읽는 데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작중 몇 년 만에 만난 언니와 동생이 동생의 우편물을 보면서 동생의 지난 삶에 대해서 회고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두 자매는 서로 이해하기도 하고 스스로 깊은 갈등과 고민에 빠지는 모습이 드러난다. 동시에 동생과 한 남자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볼 만하다. 시대적 배경은 나치시대이기에 당시의 시대상도 엿보인다. 읽고 정리하지 않고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작중 인물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다.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구는 하나도 없는 방안에서 트렁크가 놓여져있고 그곳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두 자매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고 그 옆에 위스키 병이 계속 생각났다.

 

# 10.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와이즈베리

- 제목 그대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각종 실험과 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효과적인 공부법을 소개한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중해서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자주 기억속에서 인출을 자주 함으로써 배운 것을 떠올리라는 것이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시험이다. 이러한 인출작용을 통해서 뇌를 자극해서 부족한 부분을 알고 뇌 속의 뉴런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반복적으로 읽는 것은 우리가 텍스트에 익숙해져서 이해하지 못함에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외에도 흥미로운 기억법도 소개되었다. 어떤 것을 외울때 자신이 잘가는 카페를 생각하고 카페에 외울 것들을 대입하는 것들 같은거... 무언가 획기적인 공부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롭게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 11.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문예출판사

- 이 책의 첫번째 매력은 재미있다는 점이다. 작중 주인공인 도리언 대신 그의 초상화가 나이를 먹어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인간의 도덕과 쾌락 뿐만 아니라 본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도리언이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추하게 변해가는 초상화를 통해서 과연 나는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간 소설이지만 19세기 영국의 귀족문화를 엿볼 수 있었고,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에 대해서도 경험하게 만든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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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왕
녀를 위한 파반느>

책을 읽는 도중에 인터넷에 '박민규'를 검색해 보았다. 도대체 이런 작품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
작년부터 책 속에 빠져들면서, 여러 작가들과 간접적으로 만나왔는데 이런 이야기 전개는 처음 보는 것이었으며 영화식스센스를 넘어서는 반전이 숨어있고 책을 덮으면서 우와~! 라는 탄성과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깊은 숨을 들이 쉴 수 밖에 없었다.


피아노 연주곡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들 중 못생긴 한 시녀를 주목하여 만든 표지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 표지는 이 책의 내용을 맗해준다. 우리는 항상 [시녀들]속에서 금발의 귀여운 하얀 드레스를 입은 가운데 아이를 본다. 그림에도 주변은 대개 어두운 계통인데 비해 그 아이만 밝은 옷을 입고 있다. 우리의 사회의 모습이다. 아름답고 부유한 것만 바라보고 부러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에 반해 우리는 그 옆의 못생긴 시녀에 대해서는 무관심함을 넘어서서 가혹하게 대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한쪽이 밝아질수록 점점 그 주변은 어둠속에 파묻히게 되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떠날 때 남긴 편지에는 그녀의 외모때문에 겪은 억울하면서도 비참하기까지 한 그녀의 과거 경험이 드러난다. 그녀는 남보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방으로 몰리고 또 그 주변으로 떨어지게 되는 모습을 보며 단지 외모로 비유하고 있으나 여러 요소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을 중심에서 소외하게 만드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여자는 철저하리만큼, 마치 자기가 입은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그녀의 모든 것을 뱉어내듯이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모든 걸 뱉어내어 그녀 자신을 드러내는 그 장면이 너무나도 강하게 뇌리에 기억에 남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그리고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명예의 유무를 떠나서 그렇게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서 부터 새로운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 또한 알게 되었고, 그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내 가슴의 폐부를 찌르고 말았다. 그것은 나에게는 어쩌면 작은 충격이기도 했다.

어쩌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면서도, 이 사회를 향해 내뱉는 포효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작품이었다.
정말 책을 덮으면서 심장이 뛰고 깊은 숨을 들이 쉴 수 밖에 없는 올해 내가 접한 소중한 책이며, 작가였다.

(39p)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p58)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 느낌이야. 나... 예전의 엄마가 너무 좋았어.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달라고는 말 못하겠어. 그런 일을 당하고 어느 누가 예전처럼 살 수 있겠어. 그래도 죽지는 마. 그것만 빼곤 나 다 괜찮아. 설령 어떻게 변한다 해도 달라진 엄마를 좋아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있어주기만 하면 돼.

(p102)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놀라운 걸요. 놀랍지. 여자들에겐 네트웍을 위한 장기 하나가 따로 몸속에 있지 않으까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혀를 차며 요한도 얘기했었다.

(p144)
공부 공부... 그러다 죽는 거잖아. 1등 1등... 그러다 죽어야 하고... 돈 돈 그러다 죽는 거잖아.

(p149)
어머니께선 너무 많은 말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단 한 줄도 쓰지 못하셨을 거예요. 그건... 제가 소설을 써봐서 알아요.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땐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게 인간이거든요

(p156)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p175)
그런 생각도... 해본 적 없어요. 그런데 형, 저는 한 가지는 알아요. 그 어떤 인간도 실은 나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거... 이러쿵저러쿵 말들은 해도 실은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란 거. 그건 정답이야, 하고 요한은 얘기했다. 하지만 명심해, 앞으로의 길에는 정답이 없어. 뭐, 이러쿵저러쿵 말은 하지만 나 역시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p193)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p270)
이름으로 저를 부르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저에겐 늘 지독한 별명이 따라다녔고, 별명이 늘어날 때마다 어둠의 영역도 커져만 갔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놀림을 받아야 했는지 지금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어떤 피해를 준 건지... 타인의 얼굴을 공격하는 일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이었는지 저로선 알 길이 없습니다. 지독한 몇몇 앙치들과는 싸움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싸움을 할 때마다 또 새로운, 더 지독한 별명 하나가 추가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메주였던 별명이 미친 메주가 된다거나... 호박이나 돼지에서 괴물이나 산돼지로 변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p281)
화장을 시작한 여자에겐 두 개의 얼굴이 생긴다는 것을... 그리고 여자에겐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꺄아~ 선생님이 직접 완성한 아이의 변화 앞에서 모두가 탄성을 질렀던 순간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하거나 누구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p287)
바라는 모든 걸 얻는 것이 인생의 가치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겨우, 가까스로 얻은 것을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인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포기하면 세상을 살아온 저 같은 여자에게... 인생의 '가치'는 그런 것입니다.

(p292)
얼마나 먼 길을 걸어가야만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먼 바다를 건너가야만 갈매기는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날아다녀야 우리에겐 평화가 올까

오 친구여 묻지를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p296)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지식을 왜 배우는 걸까. 이를테면 f(x+y) = f(x) + f(y)를 가르치면서도 왜, 정작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왕조의 쇠퇴와 몰락을 줄줄이 외게 하면서도 왜, 이별을 겪거나 극복한 개인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는가. 지층의 구조를 놓고 수십 조항의 문제를 제출하면서도 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 것인가.  아메바와 플라크톤의 세포 구조를 떠들면서도 왜, 고통의 구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는가. 남을 이기라고 말하기 전에 왜, 자신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

(p315)
미녀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에 나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그것은 부자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관대함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관대함을 베푸는 것은 누구인가, 또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생각했었다. 나 역시 무작정 그들에게 관대했던 인간이었고, 그로 인해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갖추어야 할 인간이었다.

(p329)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세상의 풍경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워지는여자들... 아름다워 <져야만>하는 여자들과 ... 학력을, 차를, 또 집을... 말하자면 힘을 <가져야만>하는 남자들... 서로에 의해, 서로에 비해, 올라선 서로를 위해 구축하던 프리미엄과... 올라서지 못한 서로에게 요구되던 또 그만큼의 스펙에 대해... 그러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삶의 성질에 대해... 오로지 스펙과... 프리미엄만 늘어날 뿐인 이 삶에 대해... 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p361)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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