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화상간도 > , 경교명승첩 中, 1740~1741, 비단에 담채, 29 x 26.4 cm, 간송미술관


겸재 정선    1676년(숙종2)~1759(영조35)

사천 이병연   1671년(현종12)~1751년(영조27)


한양의 사천(조선 최고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병연의 호)이 시를 써 보내면 양천의 겸재가 그림으로 화답하고, 겸재가 그림을 보내면 사천이 시로써 응수하자는 아름다운 기약이 그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낸 시화첩이 아직도 전하고 있으니 간송미술관 소장의 '경교명승첩'이 그것이다. 이 화첩 서른세 폭에는 한강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린 보석같은 걸작들이 줄지어 있지만 그 중에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그림 한 폭이 포함되어 있다. 이병연의 시를 주제로 한 <시화상간도>라는 작품이다.


겸재는 작품의 제시 옆에 백문방인 '천금물전' 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천금이나 되는 큰 돈을 준다해도 남의 손에 넘기지 말라!'는 뜻이니, 얼핏 보기에 무덤덤하고 꾸밈새 없는 이 소탈한 그림에 얼마나 깊은 겸재의 우정이 스며있는지 알 만하다.


화면 중심에는 아름드리 우람한 늙은 소나무가 둥치만 보이고 넓은 가지는 일산처럼 드리워져 아래만 약간 보이는데 그 아래 풀밭에 겸재와 사천 두 늙은 선비가 마주보고 앉아 시와 그림을 바꿔보자고 약속을 한다. 등이 보이는 몸집이 자그마하고 단단해 보이는 분이 겸재 정선이고, 정면을 향해 앉은 큰 체수에 수염 좋은 분이 사천 이병연이다. 사천 이분은 앞서 보았듯이 과연 인왕산(인왕제색도, 이병연의 쾌유를 빌며 그린 정선의 대표작)처럼 풍신이 훌륭한데, 두 분 모두 맨상투 차림으로 아무렇게나 편한 자세로 앉아 흉금을 터놓고 후일을 기약한다. 겸재 뒤쪽으로는 한 길쯤 되는 큰 바위가 박혀있고 오른 편 아래쪽으로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 휘몰아 간다.


늙은 소나무, 굳센 바위, 그리고 맑은 물, 이 모두는 옛부터 좋은 벗의 상징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에서 작가는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을 가장 친한 다섯 벗으로 꼽지 않았던가


물은 구름이나 바람과 달리 '맑고 그칠 때 없는' 벗이요.

돌은 꽃이나 풀과 달리 홀로 '변치 않는 벗'이다.

그리고 소나무는 '눈서리를 모르는' 기개가 있으나 '땅 속 깊이 뿌리가 곧은 벗'인 것이다.


이 셋은 조선을 대표하는 뛰어난 화가와 빼어난 시인이 만고에 모범이 될 우정을 나누는 이 그림에 참으로 걸맞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中, 오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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