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팔달산에 얽힌 이야기

이렇게 작은 산이 600년 전부터 역사적으로 주목받았을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팔달산 지명의 등장은 화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팔달산과 관련된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화성유수부의 주산이자 읍성의 성격을 가진 화성의 성곽이 지니는 가장 높은산 - 팔달산의 중요성에 비해 팔달산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한 자료는 거의 없다. 팔달산을 그저 그런 야산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팔달산은 어떤 이유에서 정조시대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팔달산 지명의 탄생]
팔달산은 해발 128m의 낮은 구릉성 산지로 남북이 약1.2km, 동서가 약 800m 정도의 작은 산이다. 정조에 의해 화성이 세워지기 이전까지는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수원부의 옛 읍치였던 화산 남쪽 융, 건릉에서 볼 때, 팔달산은 북쪽 20리 지점의 변경에 위치한 작은 야산에 불과하였고, 그 주변은 거의 황무지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반계 유형원(1622~1673)은 팔달산 주변을 주목하여 수원읍의 읍치를 이곳으로 옮겨 축성하면 대번진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때 유형원이 '팔달산'이란 지명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북평'이라 지목하고 있다. 곧 17세기에는 팔달산 지명이 아직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팔달산 지명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팔달산 주변의 평야'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팔달산이 역사자료에 등장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팔달산이 고지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1700년에 제작된 [여지대전도]-수원부지도 에 '팔탄산(八呑山)'으로 표시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 후 1735년에 제작된 [해동여지도]를 비롯하도 1750년에 제작된 [해동지도], 1767~1776년 사이에 제작된 [광여도]에도 역시 '팔탄산'으로 표시되었다. 즉 화성성역 이전의 18세기 지도에는 모두가 '팔탄산'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팔탄산'이 '팔달산'으로 표시된 지도는 1834년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청구도]가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수원부 읍치 서쪽에 산 표시와 함께 '팔달산'명이 기록된 것이다. 그런데 1861년 간행된 [대동여지도]에는 산 표시만 있고, '팔달산'이란 지명은 빠져 있다. 그 후 1872년 제작되 [수원부지도]에는 팔달산 표시는 물론 상단 가운데에 팔달산의 지명유래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은 후술할 [수원부읍지]의 기록과 유사하다.

이처럼 고지도 상에 나타나는 팔달산 관련 기록은 19세기 이후 지도에서만 확인될 뿐이다. 적어도 수원부를 옮기기 점까지는 팔탄산으로 쓰이다가 읍치 이전과 함께 팔달산으로 개명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각종 고문헌 자료의 경우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나타나 정조 시기 수원 이읍 당시에 팔달산이란 지명이 확실하게 굳어지고 있다.

즉, 팔달산이 역사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789년 사도세자의 원침인 영우원을 옛 수원부 읍치 뒤로 천장하고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의 동쪽 기슭으로 이전하면서부터 라고 할 것이다. 이때부터 팔달산은 수원부 읍치의주산이 되고 이전까지 사용되던 팔탄산이 팔달산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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