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아니면 전무 또는 그 밖의 무엇]

p21
 말도 할 줄 모르고 이성도 생기기 전인 내 아들이 느낀 최초의 욕구는 아마도 식욕이었을 것이다. 거의 태어나자마자 아들은 젖을 빨았다. 나는 내 평생 느껴 보지 못한 경외감에 차서 아기를 바라보았다. 설명도 들은 바 없고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아이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알았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가 아기의 조그만 심장이 고동치도록, 막 태어난 마른 폐가 팽창하고 수축하도록, 암호를 새겨 놓듯이 아기에게 그 지식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런 경외감은 내 평생 전례가 없는 것이었지만, 수세대를 뛰어넘어 나를 다른 이들과 묶어 주었다. 내 나무의 나이테가 보였다. 우리 ㅜ모님이 내가 먹는 것을 보고 있고, 할머니가 엄마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고, 증조할머니가 할머니를 보고...... 아들은 동굴에 그림을 그린 이들의 아이들이 그랬듯이 먹고 있었다.

p50
 주낙을 따라 해마다 낚싯바늘 14억 개가 걸리고(낚싯바늘마다 수많은 물고기 도막, 오징어, 돌고래 살이 미끼로 매달린다.) , 선단 하나가 오직 한 종만을 잡기 위해 50킬로미터마다 한 개씩 총 1200개 그물을 펼치며, 배 한 척이 단 몇 분 만에 바다 동물 50톤을 잡아 올릴 수 있는 산업화된 어업의 전모를 알게 된다면, 현대의 어업인을 어부라기보다는 공장식 축산업자들이라고 생각하기가 더 쉬워진다.
 전쟁의 기술이 문자 그대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어업에 적용되어왔다. 레이더, 음향 측정기(적의 잠수함 위치를 탐지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것이다.), 해군에서 개발한 전자 항행 시스템, 그리고 20세기 말에는 위성 기반 GPS 덕분에 어부들은 물고기들이 몰려드는 위치를 찾아내고 추적할 수 있는 유례없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 위성 관측 수온 영상을 이용하여 물고기 떼를 식별할 수도 있다.

p54
 우리는 가끔씩 정신이 들 때면 우리도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느다. 이것이 옳은 생각인 듯하다. 우리는 말하자면 물고기 앞에서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우리는 물고기를 보며 우리 자신의 일부(등뼈, 통각수용기,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엔돌핀, 고통에 대한 온갖 낯익은 반응들.)를 인식할 수 있으면서도 이러한 동물적 유사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그 결과 우리 인간성의 중요한 일부를 마찬가지로 부인한다. 우리가 동물에 대해 잊어버린 것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잊어 간다.

p56
해마는 주변 환경에 맞추어 색을 바꿀 수 있으며, 벌새의 날갯짓만큼이나 빠르게 등지느러미를 칠 수 있다. 해마는 이빨이나 위가 없어서 먹자마자 음식이 몸속을 통과해 내려가기 때문에, 쉬지 않고 먹어야 한다. (그래서 머리를 좌우로 돌리지 않고도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눈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식으로 적응했다.) 헤엄은 그리 잘 치지 못해서, 해마는 아주 약한 해류에라도 휘말렸다가는 지쳐서 죽기도 한다. 그래서 해초나 산호에 붙어 있거나, 서로 몸을 감고 있는 편을 더 좋아한다. 해마들은 잘 감을 수 있는 꼬리로 서로 몸을 붙들어 매고 짝을 지어 헤엄치기를 좋아한다. 해마드의 구애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보름달이 뜰 때 짝짓기를 하는 경향이 있고, 짝짓기를 하면서 음악적인 소리를 낸다. 해마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부일처 관계를 맺고 산다. 아마도 가장 특이한 점은 수컷 해마가 6주 동안 아기 해마를 밴다는 사실일 것이다. 수컷들은 그야말로 '임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라나는 알에 분비액으로 영양을 공급해 준다. 알을 낳는 수컷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놀랍기 그지 없다. 알 주머니에 탁한 액체가 터져 나오고, 아주 작지만 완벽하게 제 모양을 갖춘 해마가 구름 속에서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 단어 / 의미 ]

p65
전형적인 산란계의 닭장은 마리당 건평 432제곱센티미터이다. 이 페이지보다는 크고 A4용지 한 장 크기보다는 작은 크기다. 이런 닭장을 창문도 없는 헛간에 3층에서 9층까지 층층이 쌓는다. 일본에는 18층 높이에 달하는 세계 최고 높이의 배터리식 닭장도 있다.

p66
지난 반세기 동안, 실제로는 각각 분명히 유전적으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닭, 육계와 산란계가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닭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전혀 다른 몸에 전혀 다른 신진대사로 움직인다. 산란계는 알을 만든다. (계란 생산량은 1930년대 이후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육계는 고기를 만든다. (같은 시기에 닭은 이전과 비교하여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두 배 이상 성장하도록 만들어졌다. 예전에 닭의 기대 수명은 15~20년이었지만 요즘 육계는 대략 6주 만에 도살된다. 매일의 성장률은 줄잡아 400퍼센트 정도 증가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산란계들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평아리들이 1년에 1억 5000만 마리 이상 폐기된다.
폐기된다? 이 말은 좀 더 알아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산란계 수평아리들은 대부분 연이어 늘어선 파이프에 전기가 흐르는 판 위로 들여보내져 폐기된다. 다른 산란계들은 다른 식으로 죽는데, 그 동물들은 운이 더 좋은지 나쁜지는 말하기 곤란하다. 어떤 병아리들은 거대한 플라스틱 컨테이너 속으로 던져진다. 약한 것들은 바닥에서 짓밝히다가 천천히 질식사 한다. 강한 것들은 위에서 천천히 질식사한다. 다른 병아리들은 산 채로 펄프 제조기 안으로 던져진다.

p82
칠면조 축산업에서는 23~26주, 양계 산업에서는 16~20주가 되어 암컷이 성숙하면 암컷들을 바로 우리에 넣고 조명을 어둡게 합니다. 완전히 깜깜하게 해 놓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아주 저단백질 사료만 먹입니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이는 거죠. 이런 식으로 2~3주쯤 갑니다. 그 다음 하루 열여섯 시간, 스무 시간씩 불을 켜 줍니다. 그러면 새들은 봄이 온 줄 알지요. 사료도 고단백질로 줍니다. 새들은 곧장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아주 과학적인 원리에 따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할 수 있습니다. 야생에서는 봄이 오면 싹이 돋아나고 잔디가 자라고 해가 길어지지요. 새들한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자, 이제 슬슬 알을 낳아야겠어. 봄이 왔잖아." 그러니까 이미 내장된 것을 사람이 톡 건드려 주는 것뿐이지요. 조명, 음식, 먹는 때를 조절함으로써 산업은 새들이 1년 내내 알을 낳게 만들 수 있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죠. 칠면조들은 이제 1년에 알을 120개 낳고, 암탉은 300개를 낳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보다 두 배 내지는 세 배까지도 많은 양이지요. 그렇게 첫해를 보내고 나면 다음 해에는 새들이 그만큼 알을 많이 낳지 못하기 때문에 도축당합니다. 산업은 알을 적게 낳는 새들을 먹이고 돌보느니 죽여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편이 더 싸게 먹힌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지요. 이러한 관행 덕분에 새고기가 오늘날 그렇게 싼 값에 나오게 되어씨만, 새들은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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