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건축법에 규정된 건축의 정의는 "건축이란 건축물을 신축, 증축, 개축, 재축하거나 건축물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다.

그러나 건축을 건설과 분리시켜 국토교통부 같은 곳이 아니라, 문화부 산하 문화유산부에 소속하게 한 프랑스는 1977년에 제정한 건축법에서 이렇게 건축을 정의한다. "건축은 문화의표현이다. 건축적 창조성, 건축의 품격,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자연적/도시적 경관 및 문화 유산의 존중 등의 공공적 관심사다."


건축에 대한 정의부터 다르다. 우리나라는 건축을 부동산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문화유산으로 여기며 법을 제정한 것이다.

이렇게 다른 시작은 결국 다른 건축물, 다른 도시공간으로 나타나게 된다. 과연 어느 나라의 도시 공간에서 살고 싶을까?


우리가 흔히 쓰는 '우리가 책을 만들지만, 다시 그 책이 우리를 만든다.' 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윈스턴 처칠이 1943년 10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회 의사당을 다시 짓겠다며,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 라고 연설한 부분을

타임스(The Times)가 인용한 말이다. 바라보는 시선부터 다르다. 우리에게도 건축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건축가 승효상의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는 이런 건축과 우리가 사는 공간 그리고 도시에 대해서 인간 중심으로 풀어낸 한 편의 인문서적이다. 그의 첫 책이자 그의 건축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빈자의 미학』을 그는 가난한 이가 아니라 가난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건축 방법론이라 했다. 그런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책으로, 건축과 도시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성찰하고 있다.


▲ 건축가 승효상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을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었던 부분이 있다. 바로 프랑스 국립 도서관 건립에 관한 내용이다.
1989년, 그랑프로제(Grand Project)의 하나인 프랑스 국립 도서관 현상 공모에서 심사위원단이 두 개의 안을 뽑은 후 최종 결정을 미테랑 대통령(1916~1996)에게 미루는 일이 생겼다. 당시 심사위원단에는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렌초 피아노(1937~)도 포함되어 있는 역량있는 심사단이었지만, 대통령의 식견을 신뢰하고 그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리고 미테랑 대통령은 당시 43살이었던 도미니크 페로(1953~)의 설계안을 선정한다. 도미니크 페로는 이화여자대학교의 ECC 설계자이기도 하다.


▲ 프랑스 국립 도서관 전경(미테랑 도서관)


▲ 프랑스 국립 도서관 외관


▲ 프랑스 국립 도서관 내부


당시 해당 설계안 선정에 대한 미테랑 대통령의 평론을 소개한다.


"그의 디자인은 대칭 속에서 명료하며 선들은 절제되고 그 속의 공간들은 참으로 기능적입니다. 마치 침묵과 평화의 요구인 것처럼, 이 건축은 지면 속으로 파고 들었으며, 네 개의 타워는 이 도시의 심장부인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땅과 하늘에 생겨난 이 도서관의 산책로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 현대도시의 새로운 거처인 이 넒은 공공의 공간에서 우리는 만나고 섞이게 됩니다. 페로의 이 작업은 일개 건축이 아니라 미래를 예시하는 하나의 도시 계획입니다. 바로 그가 인류가 갈망하는 지식과 아름다움을 위한 위대한 성취를 이룩한 것입니다."


프랑스는 이 도서관을 미테랑 도서관이라고 이름 지으며, 그를 영구히 기리기로 한다. 그가 대통령 직을 마친 후, 예전에 저지른 불륜으로 인한 혼외자식 문제가 드러나자, 그 사건이 불륜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회자될 정도로 프랑스는 그를 보호하고 사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1996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전 세계에서 연민의 정을 보내왔으며, 정적인 시라크 마저 그를 추모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도서관 건축을 단순히 도서관 하나를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의 건축물이 공공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삶에 관점에서 건축으로 이어진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997년 부터는 프랑스의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기 위해 '2000년 포럼'을 운영한다.

오랜 기간의 논의 끝에 프랑스는 2000년이 시작되기 전에 21세기 맞이 행사계획을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2000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모든 지식의 대학'이라는 주제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지 매일 토론한다. 과학기술을 주제로 200여회, 인문과학으로 100여회, 21세기의 장점에 대한 내용으로 60여회를 구성하는 이 토론회는 미테랑 도서관과 퐁피두 센터, 과학의 집에서 개최되며 매일 TV로 생중계하고 기록하여 모든 일정을 마치면 책으로 발간하여 보존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이게 바로 '격(格)' 이구나! 초고층의 높은 빌딩과 경제성장률의 수치 등은 국가의 격을 만들 수 없구나. 결국 격(格) 은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의 진지한 성찰과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격(格)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 함께 예전에 EBS 지시채널e 에서 소개한 프랑스의 대학입학시험인 '바칼로니아'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1808년 부터 지속되어온 이 시험의 목적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바칼로니아는 모두 주관식이고 특히 철학 문제는 세개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 4시간 동안 자기의 생각을 글로 적어야 한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가 있었던 1989년의 문제는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가?"

이민자 폭동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2006년은 "특정한 문화의 가치를 보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정치인의 탈세와 온갖 비리로 얼룩졌던 2013년에는


이것이 격(格) 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건축과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세상에 접근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매체와 매개가 다를 뿐이지, 결국 바라보는 세상은 같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으로 올바른 세상에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닐까?


만약 바칼로레아가 우리나라에 있다면,

과연 2016년 지금은 어떤 문제가 등장할까?

그 질문에 대해 각자 생각할 시간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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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시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간 속의 삶은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인식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부모님의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에 변화를 실감합니다.

하지만 공간 속의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넓게는 지금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 아시아라는 대륙,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좁게는 집 앞의 거리를 거닐며, 출퇴근 길의 도로를 이용하고, 집 안의 작은 서재와 침실에 이르기까지,

1초, 2초 시간이 끊임없이 지나가듯, 우리도 끊임없이 어떤 공간 속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 속의 삶에 익숙한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10년 후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하루를 24칸으로 나눈 다이어리에 일정을 체크하고, 일을 하면서도 업무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합니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삶을 사는 우리는 공간에 대해서 어떤 고민을 할까요?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던 길을 다니고, 타던 버스를 타고, 익숙한 풍경을 지나서 집과 회사를 오갑니다.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는 별 다른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주 동안에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정착할 공간을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지요.

저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수많은 네모진 박스의 한 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합니다.

주변에 쇼핑몰이 가깝고, 공원이 있으며, 학군이 좋고,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통도 편리하다고 추천하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반면에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주거용으로 지어진 곳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시설을 이용하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 접근성이라는 요소가 네모난 콘크리트 아파트의 작은 한 칸을,

평범한 직장인이 20~30년에 걸쳐서도 사기 힘든 공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와 도시와 동네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참여시 '어디에 사는 누구'라는 자기 소개가 그걸 말해준다. 이방인은 자리만 바꾸지 않고 자신의 특성까지 바꾼다. 공간은 인간에게 깊은 영향을 미쳐 인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공간과 분리된 채 자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본질을 획득" 한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144)

 

사람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간은 공평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지만, 공간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사람들마다 지금 현재도 각기 다른 공간에 있지요.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에서 인상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화가 나혜석에 대한 부분입니다. 

제가 사는 수원에는 '나혜석 거리' 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 거리의 중심에는 나혜석의 동상이 있지요.

하지만 그녀가 화가였다는 사실 말고는 알고 있는 사실이 없었습니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로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공(空)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사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의해 희생된 자 이었더니라" - 나혜석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171)


화가인 나혜석은 일제강점기의 신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프랑스 파리에도 다녀옵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를 경험하고, 그 공간에 매료되었나 봅니다. 190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는 프랑스의 문화예술인 뿐 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 제럴드 등이 머물렀던 공간입니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 나혜석이 있었네요.

이런 그녀가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 속에서 계속 살아갔다면 분명 다른 삶을 살았겠지요.

공간은 이렇게 사람들을 다르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공간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공간을 받아들여야겠지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똑같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 공간 속에서 얼마나 자기가 느끼고, 그 공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느냐가 중요하지요.



보잘 것 없는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와 동시에 위대함 속에서 보잘 것 없음을 찾아내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화려한 것들 속에 숨어 있는 허풍과 허세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스쳐지나가는 작고 무가치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눈도 가지고 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p43)


저도 무언가 새로운 시야를 얻고 싶습니다. 

낭만의 도시 프랑스도 가보고, 

드높은 마천루를 자랑하는 뉴욕 거리도 걸어보고 싶습니다. 

원시림이 살아 있는 아마존 유역도 가보고 싶고, 

고대 도시의 흔적을 찾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를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들 비슷할 겁니다. 시간이 없죠.

시간이 많으시다구요, 그럼 그 때는 돈이라는 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사는 이곳에서라도 새로운 시야를 얻어보는 수 밖에요.


저는 예전에 그냥 지나가면서 간판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메모장에 다 적어 보았습니다.

가로수가 어떤 나무인지도 알아보려고 했는데,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은 나무가 대부분이어서 알지 못했지요.

그러던 중에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집 근처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 거리다가 발견한 거 같습니다.


그 책은 앞서도 몇 번 언급했던 정수복 작가의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라는 책입니다. 

우연히 만난 작가이고, 스쳐 지나가면서 고른 책이었는데, 

알고 보니 제 서가에도 이 분의 책이 한 권 꽂혀 있네요.

바로 책 읽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적은 『책인시공』이라는 책입니다.

이 분의 책들을 보니 '공간' 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라는 책의 뒤에 보면 아주 소중한 정보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노트에도 적어두고, 별도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도시를 걷는 16가지 방법> 이라는 글입니다. 

각각의 방법을 소개하고, 조금 상세하게 방법을 기술해 놓았지요.

상세한 내용을 일상에서 꼭 한 번 활용해봤으면 좋겠네요. 책 한 번 꼭 읽어보세요.

여기서는 짧게 16가지 방법을 소개드립니다. 


1. 도시 전체를 보여주는 큰 지도를 벽에 붙이고 매일 다닌 지역을 표시한다.

2. 편안한 보폭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천천히 걷는다.

3. 도로, 자동차와 사람들의 흐름, 가로수, 건물, 상점, 간판, 신호등, 진열창 등을 찬찬히 자세하게 바라본다.

4. 밖에서 보는 건물과 들어가 본 건물은 다르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모조리 다 들어가본다.

5.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먹고 마시고 무엇 하나라도 산다.

6. 안 가본 구역, 낯설고 잘 모르는 동네를 일부러 찾아다닌다.

7. 도시의 역사, 문화에 대한 책, 여행기, 안내 책자 등을 다양하게 읽는다.

8. 책에서 알게 된 장소를 방문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9. 때로 함께 걸을 친구를 만들어 방문한 동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걷는다. 같이 걷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것이 보인다.

10. 지름길, 정해진 길, 상투적인 행로가 아니라 자기만의 다양한 우회로를 만든다.

11. 박물관, 미술관, 식당, 영화관 등을 갈 때 그 장소만이 아니라 그 주변을 걸으며 동네 분위기를 파악하고 인접한 다른 지역과의 이음새에 주의를 기울인다.

12. 마음이 가는 장소나 재미있는 동네는 여러 번 방문한다.

13. 방문하여 걸어본 동네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사진을 찍어 노트에 메모를 남긴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본 것, 한 것, 느낀 것,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다.

14. 지금 살면서 걷고 있는 도시를 자신이 잘 아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 본다.

15. 자신이 쓴 도시에 대한 기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

16. 걷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작은 일에 참여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그런 여름도 비가 내리고 다음 날은 어김없이 사라집니다. 

8월의 막바지가 되면서 끝나지 않을 듯한 더위도 꼬리를 살살 내립니다.

대신에 하늘은 점점 더 드높아지고 있고, 어스름한 저녁이 조금씩 빨리 찾아오네요.

걷기 좋은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어디 한 번 걸어보시죠. 

이제는 새로운 것이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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