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칠레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청년과 네루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다소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어서인지 몰라도 책을 읽는게 너무나 편안했고 촉촉했습니다. 문장을 읽어내려가는게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사실 이 책은 1996년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의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입니다. 이 영화는 제가 오래 전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적어도 10년은 넘었을 것입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지금까지 제 기억 속에 남아있나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머릿 속에 한 장 한 장씩 책의 페이지들이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듯 합니다. 200 페이지가 되지 않는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오랜만에 제 감수성을 살짝 건드려 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의 특징은 이야기의 줄거리가 있는 서사이면서 등장인물들이 활동하는 시대와 장소가 허구적이지 않고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나 장소는 자연스레 그 시간과 장소로 궁금증을 확장시켜주고 새로운 이야기거리로 이어주기 때문입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나서 이것 저것 궁금해서 계속 찾아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계사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난 후 찾아본 첫번째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라는 인물입니다. 칠레의 낭만 시인이면서 동시에 칠레 공산당에 가입하고 나서 대통령 후보까지 추대되고 살바도르 아옌덴을 단일 후보로 추대하고 사퇴한 인물입니다. 정말 치열하면서도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여기서 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가 공산당에 입당하게 되었을까?

 

네루다가 스페인 대사직에 있을 때인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 많은 사람들이 파시스트들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럼 파시즘, 파시스트는 무엇일까? 아직 궁금증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19년부터 1939년의 기간 동안에 나타난 국수주의적, 권위주의적, 반공주의적인 정치적 주의라고 합니다. 좁게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로 시작되는 파시즘을 말하지만 넓게는 앞서 말한 특징을 포괄합니다.

 

아 그러면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이 주요 원인으로 해서 만들어진 정치,경제적 소산물이구나! 앗, 내가 1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구나 라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이제는 제1차 세계대전이 궁금해졌습니다. 대충이라도 알아두자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찾아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한 세르비야는 같은 계통의 슬라브족이 많이 살고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자기네 영토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1908년 오스트리아가 이 지역을 병합해버리고 제 2차 발칸전쟁에서도 세르비아의 알바니아 장악을 저지합니다. 그래서 이때 세르비아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적대감이 증폭됩니다.


1914년 6월 28일에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군사 훈련 참관차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 중 세르비아 민족주의 비밀결사조직인 흑수단의 단원 프린시프에게 암살됩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은 이것으로 시작됩니다. 정말 나비효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연합국, 동맹국 합쳐서 7천만명의 병력이 투입되고 1천만명의 군인사망자, 2천1백만명의 군인부상자, 770만명의 실종자를 발생시킨 제 1차 세계대전은 이 총성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사라예보 사건이 있은 후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이에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총동원령을 내립니다. 1914년 8월 1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 선포를 합니다. 그리고 후에 독일 잠수함이 미국 상선을 공격하면서 미국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1914년 7월 28일 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 4개월 동안 전쟁은 지속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후유증이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독일제국에서 바이마르공화국으로 되고 이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들어서게 되고, 이탈리의 무솔리니를 필두로 하는 파시즘이 나타났습니다.

 

네루다에서 시작한 궁금증이 스페인내전, 파시즘, 제1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다음에는 스페인내전이나 제1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스페인 내전은 서구 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 역시 스페인 내전에 참여 했었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스페인 내전이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다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온전히 돌아가볼까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을 읽은 후 부터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등장 인물과 관계에 대해서 적어 두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소설 속 줄거리의 윤곽이 잡힙니다.

 

# 마리오 히메네스 (소설 속 주인공, 17세)
# 호세 헤메네스 : 마리오 히메네스의 아버지 (아들에게 바닷가에서 일하라고 함)
# 코스메 : 마리오 헤메네스의 우체국 상관
# 파블로 네루다 (칠레의 낭만파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대통령 후보에 오름, 마리오가 유일하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곳이기도 함)
# 베아트리스 (마리오 히메네스가 사랑하고 네루다를 통해서 결혼까지 하게 됨)
# 로사 곤살레스 : 베아트리스의 어머니 (처음에는 마리오를 반대하지만 베아트리스와 관계를 맺은 것을 안 후에는 인정함)
# 랍베 : 지역 우파를 대표하는 하원 의원
#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 : 마리오와 베아트리스의 아들

 

간단한 줄거리를 이야기해보자면,

17세 소년인 마리오 히메네스는 아버지 호세 헤메네스가 아버지처럼 어부가 되라고 하지만 그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다른 일을 찾아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구인광고를 보게됩니다. 구인광고를 보고 구한 직업은 우편배달부입니다. 그런데 이 우편배달부는 좀 독특하다. 바로 수신인이 한 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수신인은 바로 유명한 시인이자 정치가인 파블로 네루다이다. 이렇게 마리오와 네루다가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네루다를 알게 되면서 마리오는 조금씩 시에 대해서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이 글에서는 은유를 뜻하는 '메타포'라는 것이 자주 등장합니다.
마리오는 이 메타포를 통해서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나가고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베아트리스를 그녀의 어머니의 로사 곤살레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네루다의 시와 네루다의 지원으로 그의 아내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마리오의 인생에서 네루다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슬라 네스라에 있던 네루다에게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천되고 후에는 아옌덴 후보를 단일 후보로 추대하고 사퇴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프랑스 대사직으로 가게 됩니다.
어느 날, 프랑스에 간 네루다로부터 소니녹음기와 편지 한 통이 옵니다.
네루다는 몸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리오만이 들어줄 수 있다는 부탁을 하나 합니다. 바로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를 녹음기에 담아달라 합니다.
이에 마리오는 파도소리, 종소리, 새소리 등을 녹음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그와 베아트리스의 아들이 태어난 소리를 녹음한 것에서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를 녹음해달라 하고 그것을 찾아 하나하나 뛰어다니는 마리오의 모습이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후에...... 네루다가 건강을 잃어서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는 아옌덴 후보가 쿠데타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고 네루다와 공산당을 지지했던 이들에게도 위기가 찾아온 때였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은 네루다의 죽음을 차분하게 묘사하며 끝나갑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는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제 호기심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주었습니다.
메타포가 중심이 되는 시, 성적인 장면을 희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전체의 분위기를 어둡지 않게 끌고 가는 이야기 전개,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보면서 궁금하게 만드는 20세기 초의 여러 사상들의 대립 등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서평은 정리가 안되고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책 속의 주요 장면으로 머리속에는 영화의 필름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적어봅니다.

▶ 마리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되다.

“구인 광고를 보고 왔습니다.”
마리오가 버트 랭커스터 뺨치는 미소를 지으며 관리에게 말했다.
관리는 지루해하며 물었다.
“자전거 있나?”
마리오는 얼씨구나 싶었다.
“네.”
관리는 안경을 닦으면서 말했다.
“좋아, 이슬라 네그라를 담당할 우체부 직이아.”
“우연이네요. 제가 이슬라 네그라 옆 포구에 살거든요.”
“그것 참 잘됐군. 하지만 문제는 수신인이 단 한 사람뿐이라는 거야.”
“한 사람뿐이라고요?”

“그렇다니까. 포구 사람들은 모두 까막눈이야. 계산서조차 못 읽으니까.”
“그 수신인이 누구죠?”
“파블로 네루다 씨.”


▶ 마리오가 베아트리스에게 잘 보이려고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에게 콧방귀도 뀌지 않는 소녀들에게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려고 광장 가로등 아래에서 걸핏하면 책을 바지 위에 놓았다. 그러는 사이 아뿔싸! 책을 그만, 그만, 그만 …… 몽땅 읽어버리고 말았다.


▶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시를 읽어줍니다.

네루다는 만족하여 시를 멈췄다.
“어때?”
“이상해요.”
“’이상해요’라니. 이런 신랄한 비평가를 보았나.”
“아닙니다. 시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시를 낭송하시는 동안 제가 이상해졌다는 거예요.”
“친애하는 마리오, 좀 더 명확히 말할 수 없나. 자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침나절을 다 보낼 수 는 없으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바다처럼 말이지!”

“네 그래요. 바다처럼 움직였어요.”
“그게 운율이란 것일세.”
“그리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이 움직여서 멀미가 났거든요.”
“멀미가 났다고.”
“그럼요!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같았어요.”
시인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내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바로 그래요.”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를 녹음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자네에게 글 말고 뭔가를 보내주고 싶었어. 그래서 이 노래하는 조롱에 내 목소리를 담았지. 조롱이면서 새인 셈이지.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야. 하지만 마리오, 나 역시 부탁이 있네. 자네만이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친구들은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내가 망령 든 우스꽝스러운 늙은이라고 생각할 테니. 이 녹음기를 가지고 이슬라 네그라를 거닐면서 마주치는 모든 소리를 녹음해 줘. 우리 집 유령이라도 필요해. 건강이 좋지 않다네. 바다가 아쉬워. 새들도 아쉽고. 우리 집 소리를 실어 보내주게. 정원에 들어가서 종을 울리게. 먼저 바람에 울리는 작은 종들의 가냘픈 소리를 녹음하게. 그리고 다음엠 큰 봉 줄을 대여섯 번잡아당기라고. 종, 나의 종! 바닷가 종류에 걸려 있는 종만큼 낭랑하게 들리는 말을 없지. 그 다음에는 바닷가로 가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담아줘. 갈매기 소리가 들리면 녹음해 주고, 밤하늘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도. 파리는 아름답지. 하지만 내겐 너무 큰 옷이라네. 게다가 여기는 겨울이라 밀가루를 흩날리는 풍차처럼 바람이 눈을 휘날리고 있어. 눈은 쌓이고 쌓여 내 몸으로 기어오르지. 나의 하얀 도포를 입은 서글픈 왕으로 만들어벼려. 번쩍 입까지 차올라 입술을 덮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 마리오는 네루다의 부탁을 듣고 정성스레 소리들을 녹음합니다.

(침묵_ 좋아요. 여기까지가 시고요. 지금부터는 원하시던 소리들입니다.
첫째, 아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소리. (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제가 이슬라 네구라 종류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 (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 한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 (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 뿐만 아니라 절제미가 담긴 무수한 날개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울란 말이야.” 라고 소리 지른다.)
다섯째, 벌집. (거의 삼 분간 윙윙거리는 위험천만한 주음향이 들리고 배경음으로는 개 짖는 소리와 무슨 종류인지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 (녹음의 절정의 순간으로, 큰 파도가 요란하게 모래를 쓸어 가다가 새로운 파도와 뒤섞일 때까지의 소리를 마이크가 매우 가깝게 쫓은 듯하다. 마리오가 내리 쏟아지는 파도 옆을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끼리 절묘하게 섞이는 것을 녹음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곱째, (분명이 긴박함이 깃든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브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 군. (갓 태어난 아기가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그를 부축하려 했을 때 마리오는 네루다의 육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기력은 사고력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 네루다는 죽음에 임박해가는 것 같습니다.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말합니다.

“이봐, 편안히 죽을 수 있게 절묘한 메토포나 하나 읊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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