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누군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 고 물어봤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 라고 답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출간된 그의 작품을 완독하고 책꽂이 한 켠을 바라보니 그의 책이 10권이나 되었다. 특히 그의 장편이 발표되었을 때 서점가 들썩이듯이 나 역시 항상 그 작품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어쩌면 그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힘이 아닐까. 작품을 통해 먼저 좋아하게 되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수필집이라던가,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찾아서 그들을 조금 더 알고 싶어지는데, 이제는 '무라카미 하루키' 에 대해서 찾아볼 시간이 다가온 듯 하다.


『기사단장 죽이기』 는 1권 '현현하는 이데아' 는 거의 열흘에 걸쳐서 짜투리 시간이 생길 때 마다 한 장 한 장 읽어갔고, 2권 '전이하는 메타포'는 주말 하루동안 깊숙이 빠져들어서 읽어버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특히 그의 장편소설은 '이야기의 힘' 이다. 초반 부터 인물을 차곡 차곡 쌓아가고, 풀어야 할 미스테리를 다시 얽히고 설키게 만든다. 그리고 궁금하게 만든다. 내가 읽는 이야기가 의문을 풀어주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다시 한 단계 더 깊이 어둠 속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인지 긴장된다. 어쩌면 '쫄깃쫄깃하다' 라는 표현이 이런 때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는 어느 날 아내인 유즈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다. 유즈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 나는 차를 몰고 여기저기를 떠돈다. 그러던 중 한 레스토랑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고, 거기서 그녀는 자신을 아는 척 해달라 한다. 그리고 레스토랑에 들어온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달라 한다.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를 타고 온 남자를 그려서 그녀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녀와 하룻밤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녀는 마조히스트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한다.


그리고 친구인 '아마다 마사히코'가 아버지인 일본의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 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머물게 되면서 아버지가 살던 산 속의 집을 관리할 겸 나에게 그곳에서 살아도 된다는 권유를 한다. 일본의 대 화가의 집과 그의 작업실을 사용하면서 나의 하루하루의 삶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 집의 천장 쪽으로 이어진 조그만 방에는 한 작품이 고이 포장되어 있었다. 제목은 '기사단장 죽이기' 였다. 이 작품을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사건들이 하나씩 일어난다.


잘 모르던 어떤 이에게 제안이 들어온다. 고액의 사례가 있을 테니 자신을 직접 모델로 세우고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이다. 그는 '와타루 멘시키'라는 인물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작품이 '와타루 멘시키'라는 인물을 불러들인 것일까? 그리고 어느 날 새벽 평소 울던 풀벌레 소리는 들리지 않고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 종소리는 정원의 뒤 편에서 시작되는데 멘시키와 그가 그 종소리의 위치를 찾으면서 3미터 가량의 깊이의 구멍에 사면이 촘촘한 돌로 메꾸어진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을 끌어가는 주요 매개는 '그림' 이다. 주인공인 내가 친구의 집에서 발견한 그림과 그곳에서 그리기 시작한 새로운 나의 작품들 속에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고, 그 이야기가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내가 친구인 '아마다 마사히코'와 '아마다 도모히코'의 요양원에 가서 '지하세계?' 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부분이다. 무언가 갑자기 맥락에 맞지 않은 이야기가 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에 맥락을 생각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서는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멘시키'라는 인물이다. 그가 소설 속에서 분명히 마지막에는 어떤 역할을 할 줄 알았다.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그를 등장시키면서 이야기가 이어졌고, 갈등과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는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듯 하다. 그래서 무언가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남겨둔 느낌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다. 바로 소설 속의 음악 찾기다. 한때 그의 아내와 재즈 카페를 운영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던 그이기에 언제나 작품 속에 음악에 등장하는 것이다. 한 번씩 찾아서 들어보려고 하나씩 적어두었다. 이런 것도 책 읽는 쏠쏠한 재미다. 최근에 클래식을 하나씩 찾아서 듣고 있는데, 클래식을 들어야지 하면서 찾는 것 보다 이렇게 우연하게 만나는 인연들이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으로 이끌어 준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라 보엠>

베토벤 <현악 4중주>

슈베르트 <현악 4중주>

모차르트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베르디 <에르나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이번에는 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차(Car) 도 등장한다. 나는 차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많은 남자들이 자동차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있지 않은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 속에 다양한 차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인 내가 처음에 몰던 '도요타 코롤라 왜건'

나중에 새로 바꾸게 된 '빨간색 푸조 205해치백'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된 남자의 차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

내가 나중에 초상화를 그리게 될 아키가와 마리에의 고모 아키가와 쇼코에의 '파란색 도요타 프리우스'

멘시키가 그의 집에 초대할 때 보내준 '닛산 인피니티'

나의 유부녀 여자친구가 타고 오는 'BMW 미니'

아키가와 쇼코에의 아버지의 추억 '재규어 XJ6 (시리즈 Ⅲ)'

멘시키가 가지고 있는 차들 '은색 재규어 쿠페, 재규어 E타입 (시리즈 Ⅰ 로드스타), 레인지로버, 미니쿠퍼'



마지막은 소설 속의 마지막으로 대신한다.


"기사단장은 정말로 있었어." 

나는 옆에서 곤히 잠든 무로를 향해 말했다.

"너는 그걸 믿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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