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우리 동네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새로 생겼다. 한 동안, 온라인 서점 중심으로 재편되던 국내 도서시장에 오프라인 서점이 하나 둘 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소규모 책방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가수 요조와 방송인 노홍철도 소규모 책방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조용히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시류에 편승하듯 아니면 이들이 먼저 그 시류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최근 들어 대형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과  'YES24' 에서도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하나 둘 씩 늘려가면서 독자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서고 있다.


집 근처에 생긴 중고서점을 반가운 마음에 빈 가방을 하나 메고 간다. 많은 책들을 손에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한 권의 책만을 가방에 넣고 돌아왔다. 바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를 적어보라면 나는 서둘러 이 두 명의 이름을 남길 것이다.

'알베르 카뮈' 그리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을 읽었을 때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하며 읽었었다.  아마도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를 빼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홀로 수없이 감탄하며 읽어 내려갔다. 이 한 권의 책 만으로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접한 그의 다른 책은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이었다.  여전히 나는 바다로 다시 나가는 플렌티노 아리사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 까지"


이렇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만나고 나서,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그와 관련된 사소한 것들도 관심이 생겨난다. 그의 작품, 그의 삶, 그의 이야기. 나에게도 행운이다.



이번에 만나게 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은 한 노인의 생(生)과 성(性) 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1927년 생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2004년에 발표한 작품이니 77세의 나이에 집필한 책인 것이다. 어쩌면 작품 속의 한 노인 속에는 그의 내면의 모습도 어느 정도는 투영되지 않았을까.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소설의 시작이다.  소설 속의 나는 아흔 살이다.  그는 아흔 살이 되는 날에 갑작스런 결심을 한다.  그동안 비밀의 집 여주인인 로사 카바르카스가 '새로운 것' 이라는 말과 온갖 음탕한 유혹을 했지만 그는 넘어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 일까? 아흔 살이 되던 날 갑자기 마음 속에 어떤 내적 갈등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처녀와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로사 카바르카스는 열 네살의 한 소녀를 소개한다. 소설 속의 나는 그녀를 '델가디나'라 부른다.


아흔 살의 나는 매일 저녁 로사 카바르카스가 마련해 놓은 유곽의 델가디나의 방으로 향하고, 그녀의 방에 그림을 가져다 두고, 그녀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씩 가져다 놓는다. 나는 델가디나의 방에 저녁마다 찾아가지만, 그녀를 실제로 탐하지 않는다. 낮에 바느질을 하며 피곤에 찌든 델가디나를 그저 바라보고 아침에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자리를 뜰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델가디나가 어느 사건에 의해서 처녀성을 잃어버렸다고 오해한 후,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소설의 마지막으로 향한다. 나는 그 사건이 오해임을 알게 된다. 


"소녀가 따를 거라고 생각하오?"

"아, 나의 서글픈 현자 양반, 늙는 것은 괜찮지만 멍청한 소리는 하지 마세요." 

로사 카바르카스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 불쌍한 아이는 당신을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어요."


이 소설의 마지막은 아흔 살의 노인에게는 분명히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궁금하다. 과연 열 네살의 소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소설 속의 소녀는 실제 그녀의 입으로 어떤 의사를 표출한 적이 없다. 로사 카바르카스의 입을 빌려 그녀가 표현될 뿐이다. 소설 속의 그녀는 실제 아흔 살의 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그 반대의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과연 아흔 살의 노인과 열네 살의 소녀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그냥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들 뿐이다. 


이른 일곱살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소설을 예전부터 구상을 하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를 읽고 작품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고양한 짓은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여관 여주인이 노인 에그치에게 경고했다.

"잠자는 여자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서도 안 되고, 그와 비슷한 어떤 짓도 해서는 안 됩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잠자는 미녀의 집』


어쩌면 그는 남자의 욕망과 노인의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아흔 살의 노인과 열 네 살의 소녀라는 극단적인 인물 창조를 통해 조금 더 거칠게 그리고 조금 더 절제하며 삶을 그려낸다.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 번 믿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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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브리아 마르케스(1927.03.06~2014.04.17)는 지난 4월에 타계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다. 당시 우리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믿기지 않는 참사로 다른 것들에는 암묵적 합의 하에 침묵했다. 이때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누구인지 몰랐다. <백년의 고독>이라는 작품은 제목을 몇 번 들었던 기억은 있었지만 접하지 못했다.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할 때 선정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끌리는 제목으로 <백년의 고독>을 손에 잡았다.


처음에는 책과 작가의 배경적인 지식은 알지 못했다. 이게 내가 읽는 방식이다. 읽으면서 궁금한 사항이라던가 사건들이 어떤게 있는지 읽으면서 하나씩 찾아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계속 읽어나가도 되는 건지 나 자신에게 의심스러웠다. 작중 등장하는 수많은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사람이 어떤 아우렐리아노인지 그의 부모는 누군인지 책의 첫 페이지에 있는 가족관계도를 수시로 들춰보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게 <백년의 고독>에서 느낄 수 있는 오묘한 매력이다.


마르케스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현대예술 사조의 선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콜롬비아의 역사에 대해서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콜롬비아 내전인 '1000일 전쟁'에서의 자유파와 보수파의 갈등과 '바나나농장 학살 사건'은 소설 속의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콜롬비아 바나나농장 학살 사건


1928년 12월 6일 콜롬비아 산타마리아 근처 시에나가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이다. 바나나농장에서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하면서 노동조합이 벌인 한달 간의 파업을 끝내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가 군대를 보내 진압하기로 결정한 뒤,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최소 47명에서 최대 2000명)이 군당국의 발포에 의해 살해됨.
당시 바나나 회사였던 '돌 푸드 컴퍼니'는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고, 콜롬비아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당시 파업의 일환으로 시에네가 시 광장에서 열리는 예배에 참석한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윤회와 마술적 사실주의




약 100여 년 동안 한 집안에 7대에 걸쳐서 마치 과거의 조상들이 살아난 듯이 비슷한 성향의 자손들이 조상들의 삶을 마치 윤회하듯이 살아가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가족 내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아르까디오', '아우렐리아노' 라는 이름은 반복해서 이름에 포함된다.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체구가 좋고 과격했으며, 충동적이고 모험적이었다. 반면에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차가워보이는 얇은 입술을 갖고 태어난 명민하고 은둔적인 성격을 보였다.


<백년의 고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다. 이번을 계기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마술적 사실주의는 사실과 환상, 사실과 허구가 초현실주의적 수법으로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형태라고 한다. 이 책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돼지 꼬리 달린 아이' 가 어쩌면 대표적인 하나의 소재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사촌 간인 우르술란과 호세 아르까디오는 근친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자신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서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서 '마꼰도'라는 마을을 세운다. 그렇게 한 가족의 역사는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대를 거듭해서 6대 째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와 그의 이모인 아마란따 우르슬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나면서 한 집안은 몰락해 간다. 그리고 그 예언은 전해져내려오는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문서에 담겨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미녀 레메디오스가 하늘로 승천한다거나, 레베카가 흙은 먹고, 마꼰도에 처음 온 집시들이 가지고 온 하늘을 나는 양탄자 등 일반적이지 않은 정말 마술적인 요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백년의 고독>은 분명 콜롬비아의 역사와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이야기 속에서 사실적으로 나타내지만, 그 방법으로는 환상적이고 허구적이고 마술적인 요소를 가득 담아 표현해내고 있다.


20세기의 세르반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백년의 고독>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두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소설 예술의 극치인 동시에 소설의 시대에 보내는 작별 인사"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과 같은 신비한 매력을 가진 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떠어져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과 함께 살아왔던 시절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 학살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그들의 고향이었으며, 외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전쟁터에서의 모험담과 콜롬비아의 역사는 작중 아우렐리아노 대령에 영향을 미쳤고, 외할머니와 집안 여자들이 들려준 신기한 이야기 또한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발판이 되었다.


마르케스는그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가장 좋은 출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내 앞에서 나눈 다화들이다" 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


<백년의 고독>의 2편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 이전에 윤회하듯 반복되던 모든 것이 결말로 수렴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읽은 많은 소설들은 분명 현실에서 있을 듯한 소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때로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이고 때로는 허무한 표현 방식 속에서 그대로 현실을 표현해냈고 민중들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세익스피어라고 칭해지는 세르반테스에 비유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에 신문컬럼 <조용호의 문학노트>에서 본 글귀가 눈에 띄었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서서히 현실은 내면화하면서 밑바닥에서부터 인간들을 위로하는 치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르케스 역시, 조국 콜롬비아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 속에서 아파하는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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