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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세상은 사라질까? - 조지 버클리

Broaden 2025. 6. 25. 09:31

눈을 감으면 세상은 사라질까? - 가장 기묘하고 대담한 철학자, 조지 버클리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책상, 그리고 창밖의 풍경.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보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게습니까? 아마 황당한 소리라고 웃어넘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인류 철학사에 가장 대담하고 기묘한 주장으로 이 아이디어를 평생 밀어붙인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아일랜드의 주교이자 철학자였던 '조지 버클리(1685-1753)' 입니다.


버클리의 철학은 '상식에 대한 가장 비상식적인 변호'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의 주장은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당시 과학이 만들어낸 '물질'이라는 유령과 싸우고, 우리 경험의 확실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논리적 투쟁이었습니다. 자, 버클리와 함께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의 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지적 모험을 떠나볼까요?


버클리는 왜 '물질'과 싸웠을까?

17-18세기는 뉴턴과 로크의 시대였습니다.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많은 철학자들은 우리 마음 바깥에 '객관적인 물질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를 볼 때, 우리 마음 속에는 '빨갛다', '달콤하다', '동그랗다'는 관념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 관념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우리 마음 바깥에 '사과'라는 물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버클리는여기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오직 관념뿐인데, 어떻게 그 관념 너머에 있는 '물질'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단 한 번도 우리의 감각이나 지각을 벗어난 '순수한 물질' 그 자체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위험한 독단이자, 결국 무신론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버클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물질' 이라는 개념을 철학에서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버클리의 핵심 주장: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버클리 철학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버클리의 관념론입니다. 즉,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두 종류 뿐입니다.

  • 정신: 생각하고, 의심하고, 지각하는 능동적인 존재(나, 당신, 그리고 신)
  • 관념: 정신에 의해 지각되는 수동적인 감각 데이터(색깔, 소리, 맛, 모양 등)

버클리에게 '사과'란 빨갛고, 달콤하고, 동그란 관념들의 '다발'이지, 그 관념들 너머에 있는 정체불명의 물질 덩어리가 아닙니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말은 곧, 어떤 정신이 그것을 지각하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서 최고의 반론이 등장합니다.

"그럼 내가 방을 나가서 아무도 내 책상을 보고 있지 않으면, 그 책상을 사라지는가? 숲속에서 나무가 쓰러질 때 듣는 이가 아무도 없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 질문에 버클리는 아주 명쾌하고도 독창적인 답변을 내놓습니다.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있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지각하는 절대적인 정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절대적인 정신이 바로 '신(God)' 입니다. 내 책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신이 항상 그것을 지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숲속의 나무가 쓰러질 때 소리가 나는 이유도 신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클리에게 신은 종교적 믿음의 대상을 넘어, 세계의 존재와 항상성을 보증하는 철학적 필수 장치였던 것입니다.

 

버클리의 기묘한 철학, 오늘날 우리에게 왜 중요할까?

수백 년 전 아일랜드 주교의 이 기묘한 사상이 21세기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요?

  • 가상현실과 시뮬레이션 우주론의 선구자: 버클리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모든 것은 거대한 정신(신)의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사실 거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는 현대의 '시뮬레이션 가설'과 놀랍도록 구조가 유사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철학적 원조라고 할 수 있죠. 또한 우리의 지각이 곧 현실을 구성한다는 아이디어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철학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 '객관적 실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 우리는 뉴스, 데이터, 통계 등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접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버클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결국 주관적인 지각을 통과한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그의 철학은 '날것 그대로의 실재'란 무엇인지,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의 기반은 얼마나 탄탄한지 근본적으로 되묻게 만듭니다.
  • 사용자 경험(UX)의 원조 철학: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말은 오늘날 IT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의 핵심 원리인 사용자 경험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용자가 인식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기능이나 데이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버클리는 이처럼 경험과 주고나의 중요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철학자였습니다.

버클리의 철학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의 모습을 한 번쯤 의심하게 만드는 강력한 지적 자극제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난 지금,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이 세계가 정말 당신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100% 확신할 수 있으신가요?


[근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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