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읽고 난 다음 문득 든 생각이다.
최근에는 한참 알베르 카뮈에 빠져 있는데 『시지프 신화』의 까만 잉크를 읽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다른 블로그들을 찾아보았다. 누군가는 오전 중에 이 책을 읽고 세 번이나 눈물을 참았다고 한다. 지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눈물을 쏟을 것 같으니 결과는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 안타까움을 충분히 달래준 이가 '밀란 쿤데라'이다. 책 날개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라는 짧은 소개 글이 적혀 있다. ' 아! 멋지지 않은가!' 어쩌면 그냥 '밀란 쿤데라 지음' 이라고 적혀 있었어도 충분한 작가 소개가 아니었을까. 알베르 카뮈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알아보려고 하는 중인데, 이런! 갑자기 밀란 쿤데라가 이렇게 궁금해져 버리니 큰일이 나 버렸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책 제목은 기가 막히게 지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2년 전인가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 만남이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길지 않은 소설인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혼자 쇼파에 앉아 환호를 지를 정도였다. 그 때 기분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쿤데라에게 제대로 당했네!' 이다.
『정체성』은 샹탈과 장마르크 두 연인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노르망디 해변가의 작은 도시의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샹탈이 먼저 도착하고, 하루가 지나 장마르크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샹탈은 해변가 근처로 산책을 하던 중 기분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장마르크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장마르크는 걱정스레 그 이유를 물어보는데, 샹탈은 그 이유가 아닌데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요.' 그리고 이 말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간다.
『정체성』의 정체성은 무언가 깊이 농축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길지 않지만 그 속에 이야기가 한 순간도 질리지 않게 꽉 들어 차 있다.
동시에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인 두 주인공 샹탈과 장마르크의 사유가 깊이 새겨나온다.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세계관이며 동시에 우리들에게도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내면의 감정을 쿤데라는 깊이 들여다 본다.
샹탈, 그녀는 일상 속에 있지만 자유를 갈망한다. 그리고 그 속에...
아들의 무덤 앞에 섰다. 그녀는 거기에 가면 항상 그에게 말을 했고 그날도 자신을 해명하고 정당화할 필요성을 느낀 듯 아들에게 얘기했다.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의 나처럼 될 수 없었을 거야. 그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잖니.아기를 갖고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를 경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를 내보낸 곳이 바로 이 세계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계에 집착하는 것은 아기 때문이며, 아기 때문에 세계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 소란스러움, 그 소요에 기꺼이 참여하며 이 세계가 저지르는 바로잡을 수 없는 바보짓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란다. 너의 죽음을 통해 너는 너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내게서 앗아 갔지만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자유로워졌단다. 내가 감히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암울한 생각이 너에게 어떤 저주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깨달았단다. 너의 죽음이 하나의 선물, 내가 결국 받아들이고 만 끔찍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p68)
그녀는 장마르크와 만나기 전에 한 남자와 결혼을 했었고,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을 먼저 가슴에 묻게 되었고, 지금의 샹탈이 되었다. 그녀도 알고 있다. 아들이 만약 살아있었더라면 아마도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누구나 결국 하나의 삶 만을 살 수 밖에 없다. 다른 삶은 정말 '만약' 이라는 세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모습들은 감춰진 채 살아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 대목을 읽는데 이것만으로도 샹탈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샹탈은 유모차를 밀고 동시에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안고 가는 아빠를 유혹하는 상상을 해 본다. 부인이 쇼윈도 앞에 멈춰선 틈을 타 남편 귀에 약속 시간을 속삭여 보는 것이다. 그는 어떤 행동을 할까? (중략) 샹탈은 이런 발상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유쾌해졌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남자들이 결코 더 이상 나에게는 한눈을 팔지 않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 (p19)
그녀 앞의 남자는 거만하게 젊었고 그녀의 불쌍한 육체를 거만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불쌍한 육체를! 젊은 남자의 시선을 받으니 자신의 육체가 그 시선 아래 환한 세상에서 빠른 속도로 늙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p114)
그녀는 자신이 장미의 향이 되어 남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보다 어린 장마르크와 살면서 그녀 자신의 여성성에 대해서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이름 모를 이의 편지를 받으면서 다시 여자로서 설레이기도 하지만 분노에 차기도 한다.
장마르크, 존재와 관계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
장마르크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존재와 관계에 대한 인식이 존재한다.
"다 용서했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지난번 그를 더 이상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 느꼈던 이상한 감정을 당신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지. 나는 그때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런 내가 흡족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그의 죽음이 이런 감정을 전혀 바꿔놓지 못하는 거야." (p53)
장마르크는 자기가 세계와 맺고 있는 유일한 감정적 관계가 그녀라고 생각했다. 죄수들, 박해받는 자들, 굶주린 자들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그들의 고통에 개인적으로 절실하게 감동받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그는 안다. 샹탈이 그들 입장이 되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내란 중 강간당한 여자들이 있다고? 그는 강간당한 샹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를 무관심에서 해방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다. 그가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라는 매개를 통해서일 뿐이다. (p98)
장마르크는 한 친구와 어떤 이유로 관계를 접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잘못을 스스로 용서했지만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친구에 대한 애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형식적인 어쩌면 그보다 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세상에서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어쩌면 샹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두 사람의 관계에서 나이가 더 적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과의 관계의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을 생각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언젠가는 이방인 혹은 떠돌이로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학업을 포기한 것은 실패가 아니었어. 그때 내가 포기한 것, 그것은 야심이었어. 나는 어느 날 돌연 야심 없는 남자가 되었던 거고 그 바람에 나는 이 세계의 변두리에 놓인 거였어. 더욱 끔찍한 일은, 내가 그 외 다른 곳에는 있고 싶지 않았다는 거지. 거기에서 떠나고 싶지 않으니 다른 어떤 위협도 무섭지 않았어. 그러나 아무런 야심도 없이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복달하지 않으면 당신은 몰락의 문지방에 턱하니 걸터앉게 되는 거야. 나는 거기에 정착했고 사실 아주 편했지. 정착하긴 했지만 그곳은 어쩔수 없이 추락 직전의 문턱이었어. (p95)
그는 무척 피곤했고 틀림없이 이런 식으로 시작된느 것이다. 어느 날 벤치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가 해가 떨어지면 잠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느 날 떠돌이 틈에 끼이게 되어 그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p163)
거리에서 구걸하는 어떤 한 남자를 보면서 그는 그 사람이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자신이 비슷한 길로 갈 때의 느낌을 기억하기에 어쩌면 더 연민이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추락 직전의 문턱에서 벗어나야 함을 또한 알기에 벤치에 누우려 했다가 허리를 세우고 다시 앉았는지도 모른다.
정체성 그리고 장자의 호접몽
어쩌면 이런 두 인물 간의 갈등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조금 뜬금 없긴 하지만, 아마도 책을 읽고 나면 생각날지도 모르기에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며 다시 한 번 감상에 젖어 본다.
내가 지난 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날아다녔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나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버렸더니 나는 나비가 아니고 내가 아닌가?
그래서 생각하기를 아까 꿈에서 나비가 되었을 때는 내가 나비인지도 몰랐는데,
꿈에서 깨어보니 분명 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샹탈은 생각했다. 남자들이 아빠화되었다고. 그들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빠일 뿐이며 그것은 아버지의 권위가 없는 아버지를 의미한다. 샹탈은 유모차를 밀고 동시에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안고 가는 아빠를 유혹하는 상상을 해 본다. 부인이 쇼윈도 앞에 멈춰 선 틈을 타 남편 귀에 약속 시간을 속삭여 보는 것이다. 그는 어떤 행동을 할까? 아기를 주렁주렁 단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한 남자가 여전히 낯선 여자에게 한 눈을 팔 수 있을까? 등과 배에 매달린 아기가 짐꾼의 행동에 짜증을 내며 악을 쓰지나 않을까? 샹탈은 이런 발상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유쾌해졌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남자들이 결코 더 이상 나에게는 한눈을 팔지 않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19)
그는 회환에 잠겨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빨랐던 그들 사랑의 초기 시절을 생각했다. 그녀를 정복할 필요도 없었다. 첫 번째 순간, 그녀는 정복되었다. 그녀를 돌아본다고, 무엇 때문에? 처음부터 그녀는 그의 곁에, 코앞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처음부터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다. 그들 사랑의 기반에는 이런 불평등이 깔려 있었다. 정당화될 수 없는 불평등, 부당한 불평등. 그녀는 연상의 여자였기 때문에 약했던 것이다. (46)
향수? 바로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향수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눈앞에 있는 사람의 부재로 괴로워할 수 있을까? (장마르크에겐 이에 대한 해답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는 미래의 한 자락,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존재하는 미래를 엿본다면 그가 곁에 있어도 향수를 느낄 수 있다고.) (48)
"다 용서했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지난번 그를 더 이상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 느꼈던 이상한 감정을 당신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지. 나는 그때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런 내가 흡족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그의 죽음이 이런 감정을 전혀 바꿔놓지 못하는 거야." (53)
"만약 당신이 증오의 대상이 되고, 누명을 쓰고 사람들의 먹이가 된다면 당신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두 가지 반응을 기대할 수 있어. 어떤 사람들은 당신을 뜯어먹으려는 부류에 합류하러 갈 것이고 다른 쪽은 점잖게 못 들은 척할 거야. 물론 당신은 그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을 테지. 점잖고 조심스러운 이러한 두 번째 범주가 당신 친구야. 현대적 의미에서 친구지. 장마르크, 이런 사실을 나는 진작에 알았지." (57)
시사회가 끝나자 를르와가 결론을 내렸다. "엄마의 침, 이것이야말로 루바쇼프 제품의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끌어모으려고 하는 대중을 연결하는 접착제입니다." 그리고 샹탈은 그녀의 오랜 은유를 수정했다. 남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것은 비물질적이며 시적인 장미 향이 아니다. 일군의 박테리아와 더불어 정부의 입에서 그의 애인의 입으로, 애인 입에서 그의 부인 입으로, 부인 입에서 아기 입으로, 아기 입에서 아줌마 입으로, 레스토랑 웨이트리스인 아줌마 입에서 그녀가 침을 뱉은 수프를 마신 고객의 입으로, 이렇듯 우리 각자가 우리를 하나의 타액 공동체, 축축하고 통일된 유일한 인류로 만들어 주는 침의 바다 속에 빠져 살듯 물질적이고 산문적인 침이 자신의 꿈이라고 정정했다. (62)
하이든의 머리 이야기 알아? 어떤 미친 학자가 뇌를 뒤져서 음악적 천재성이 어느 부위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아직도 따뜻한 시체의 머리를 잘랐대. 아인슈타인 이야기는 알아? 그는 치밀하게 유언장을 써서 자신을 화장하도록 했대. 사람들은 그의 말에 따랐지만 충실하고 헌신적인 그의 제자가 스승이 바라보는 눈길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했지. 화장하기 전에 그는 시체에서 눈알을 뽑아 알코올 병에 넣어 자기가 죽는 순간까지 그 눈이 자기를 바라보도록 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육체가 그들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은 화장터의 불밖에 없다고 한 거야. 그것만이 유일한 절대적 죽음이지. 나는 다른 죽음은 원치 않아. 장마르크. 나는 절대적 죽음을 원해 (66)
다음 날, 그녀는 공동묘지로 가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그러했듯) 아들의 무덤 앞에 섰다. 그녀는 거기에 가면 항상 그에게 말을 했고 그날도 자신을 해명하고 정당화할 필요성을 느낀 듯 아들에게 얘기했다.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의 나처럼 될 수 없었을 거야. 그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잖니.아기를 갖고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를 경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를 내보낸 곳이 바로 이 세계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계에 집착하는 것은 아기 때문이며, 아기 때문에 세계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 소란스러움, 그 소요에 기꺼이 참여하며 이 세계가 저지르는 바로잡을 수 없는 바보짓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란다. 너의 죽음을 통해 너는 너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내게서 앗아 갔지만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자유로워졌단다. 내가 감히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암울한 생각이 너에게 어떤 저주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깨달았단다. 너의 죽음이 하나의 선물, 내가 결국 받아들이고 만 끔찍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68)
눈, 영혼의 창, 아름다운 얼굴의 중심, 한 개인의 정체성이 집결되는 점. 그러나 동시에 일정량의 소금기가 있는 특수 세제로 끊임없이 닦고 적시어 유지 보수해야만 하는 시각 도구. 인간이 소유한 가장 위대한 경이로움인 시선은, 규칙적이며 기계적인 세척 운동으로 유지된다. 윈도 브러시로 닦아 내는 자동차 앞 유리처럼. 요새는 십 초 간격으로, 그러니까 눈꺼풀의 리듬과 거의 같은 간격으로 윈도 브러시의 작동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72)
조물주가 그의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던 중 우연히 인간 형상 육체를 주물렀고 우리는 모두 어느새 그 형상의 영혼 노릇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십 초마다, 이십 초마다 닦아 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눈을 달아 대충 주물럭거려 만든 육체의 영혼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운명인가! 우리 앞에 있는 타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 자신의 주인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의 육체는 거기에 거주하는영혼의 충실한 표현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을 믿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깜박이는 눈꺼풀의 움직임을 잊어야만 한다. 우리가 태어난 곳인 엉터리 아틀리에를 잊어야만 한다. 망각의 계약에 복종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이 계약을 강요한 자는 바로 조물주 자신이다. (73)
남자가 직업을 선택하는 그 마술적 순간을 그는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을 고치기에 인생이 너무 짧다는 사실을 잘 알
았던 그는 어떤 직업에도 선뜻 호감이 가지 않아 무척 고민했다. (75)
장마르크가 샹탈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하는 건 아니야. 사랑이 무관심으로 바뀐 것도 아닐 거야. 두 인간이 나눈 말의 양에 따라 그들의 애정을 저울질할 수는 없거든. 단지 저들 머리가 텅 비었을 뿐이야. 아무 할 말도 없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상 말하기를 거부하는 걸 거야. (88)
"세상에서 외따로 떨어져 사랑하는 두 존재, 그건 아주 아름답지.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아무리 경멸할 만한 것일지라도 그들에겐 이 세계가 필요해.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침묵할 수도 있을 텐데."
"옆자리에 앉은 저 두 사람처럼?" 하고 장마르크가 웃었다.
"아니야, 어떤 사랑도 침묵에 배겨 날 순 없어." (92)
장마르크는 다시 오래전부터 품었던 생각을 말했다. "언젠가는 말을 걸 거야, 저기 카페에 가서 차나 한잔합시다, 당신은 나의 분신입니다. 당신은 내가 오로지 우연 덕분에 벗어난 운명을 겪고 있는 겁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 당신은 그런 운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없잖아."
"대학을 떠날 때 열차가 모두 끊겼다는 것을 깨닫던 그 순간은 결코 잊지 못해."
"그래, 나도 알아."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샹탈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조그만 실패를 어떻게 행인이 한 푼 쥐어주길 기대하는 한 남자의 진짜 불행과 비교할 수 있어?"
"학업을 포기한 것은 실패가 아니었어. 그때 내가 포기한 것, 그것은 야심이었어. 나는 어느 날 돌연 야심 없는 남자가 되었던 거고 그 바람에 나는 이 세계의 변두리에 놓인 거였어. 더욱 끔찍한 일은, 내가 그 외 다른 곳에는 있고 싶지 않았다는 거지. 거기에서 떠나고 싶지 않으니 다른 어떤 위협도 무섭지 않았어. 그러나 아무런 야심도 없이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복달하지 않으면 당신은 몰락의 문지방에 턱하니 걸터앉게 되는 거야. 나는 거기에 정착했고 사실 아주 편했지. 정착하긴 했지만 그곳은 어쩔수 없이 추락 직전의 문턱이었어. 따라서 나는 지금 이토록 흡족하게 앉아 있는 이 레스토랑의 주인 곁이 아니라 그 거지 곁에 있는거야. 과장이 아니야. (95)
장마르크는 은밀한 즐거움으로 갑자기 환한 표정을 짓는 샹탈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음미하는 것에 만족한 그는 그 이유를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샹탈은 자신의 희극적 상상에 몰입했고, 반면 장마르크는 자기가 세계와 맺고 있는 유일한 감정적 관계가 그녀라고 생각했다. 죄수들, 박해받는 자들, 굶주린 자들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 그들의 고통에 개인적으로 절실하게 감동받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그는 안다. 샹탈이 그들 입장이 되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내란 중 강간당한 여자들이 있다고? 그는 강간당한 샹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를 무관심에서 해방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다. 그가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라는 매개를 통해서일 뿐이다. (98)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착각을 했다는 생각." (99)
하지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답은 오직 한 가지뿐. 그는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왜 함정에 빠뜨릴까?
그녀로부터 홀가분하게 벗어나기 위해. 사실 그가 더 어렸고 그녀는 늙었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숨겨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늙었고 그것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는 그녀를 떠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당신은 늙고 나는 젊다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예의 바르고 점잖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확신이 선다면, 그의 오랜 친구 F를 그의 삶에서 배제할 때와 마찬가지로 쉽사리 냉정하게 그녀를 떠날 것이다. 이상하게도 경쾨해나 이 냉정함이 항상 그녀를 두렵게 했다. 그녀의 두려움이 선견지명이었음을 이제 그년는 깨달았다. (105)
그는 그녀가 전보다 더 즐겁게 옷을 입고 더 쾌활해진 것을 보고 행복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성공에 분했다. 예전에는 그가 부탁을 해도 그녀는 빨간 진주 목걸이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 말에는 복종하는 것이다. (108)
그녀 앞의 남자는 거만하게 젊었고 그녀의 불쌍한 육체를 거만하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불쌍한 육체를! 젊은 남자의 시선을 받으니 자신의 육체가 그 시선 아래 환한 세상에서 빠른 속도로 늙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114)
아마도 그녀가 가장 약하고 자기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라고. 사실 누가 더 강한가? 두 사람 모두 사랑의 영토 위에 있을 때 강한 사람은 사실 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사랑의 영토가 그들 발밑에서 사라진다면 강한 자는 그녀고 약한 자는 그다. (136)
우리 시대에는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인물이지만 클레브 공주, 베르나르뎅 드 생피에르의 비르지니, 아빌라의 성녀 테레즈,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를 누비며 땀 흘려 선행을 베푸는 테레사 수녀 같은 인물이 밤에는 차마 말하기도 창피한 어리석은 악의 시궁창 같은 꿈을 꾸고 낮에는 덕망있는 처녀로 변하는 상상을 하면 샹탈은 기분이 좋았다. (137)
하지만 그녀가 이 편지를 쓴 사람이 그라는 것을 짐작했다면 무슨 이유로 그녀는 그것을 그토록 적대적으로 받아들였을까? 왜 그렇게 잔인했을까? 그녀는 모든 것을 짐작해 놓고 왜 그 속임수의 이유는 짐작하지 못했을까? 그녀는 그의 어떤 면을 의심하는 걸까? 이런 모든 의문에 대해 그는 오직 하나의 확신만 가질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생각은 전혀 반대되는 방향을 취했고 그 두 방향은 더 이상 만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엿다. (141)
그녀는 모든 남자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장미의 은유에 대해 생각했고 지금까지는 사랑의 감옥에서 살았지만 이제부터 장미의 신화에 기꺼이 복종하고 그 도취적 향기에 스스로 녹아들리라고 생각했다. (154)
를르와 탓에 샹탈의 환상이 끊어졌다. "자유라? 당신은 참혹한 현실을 겪으면서 당신은 불행할 수도 있고, 혹은 행복할 수도 있지.당신의 자유란 바로 그 선택에 있는 거야. 다수의 용광로 속에 당신의 개별성을 용해하면서 패배감을 맛보느냐, 아니면 황홀경에 빠지느냐는 당신 자유야. 우리 선택은 바로 황홀경이지, 부인." (157)
그는 무척 피곤했고 틀림없이 이런 식으로 시작된느 것이다. 어느 날 벤치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가 해가 떨어지면 잠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느 날 떠돌이 틈에 끼이게 되어 그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163)
"샹탈! 샹탈! 샹탈!"
그는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는 그녀 몸을 품에 껴안았다.
"잠을 깨! 현실이 아니야"
(중략)
그리고 그는 생각해 본다. 누가 꿈을 꾸었는가? 누가 이야기를 꿈꾸었는가? 누가 상상해 냈을까? 그녀가? 그가? 두 사람 모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현실 속 삶이 이런 뻔뻔한 환상으로 변형되었을까?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