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는알랭 드 보통의 처녀작이자,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책이었다. 처음에 별로 큰 기대를 가지고 읽지는 않았는데 읽는 동안 몇 번을 감탄을 했는지 모르겠다. 남녀 간의 사랑의 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그의 세심함과 인간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나 부러웠다. 한 작가의 어떤 책이 마음에 들면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저작을 찾아보는 습관으로 그의 다른 책을 찾아보았다. 상당히 많은 책이 있었지만 그중 『불안』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었다. 내가 만난 알랭 드 보통의 두번째 책은 바로 『불안』이었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가 매 장(chapter) 마다 소주제를 다루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 처럼 『불안』역시 불안이라는 것의 원인과 그 해결방법을 각 챕터마다 제시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각종 철학에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여행, 건축 등 일상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카드 작업을 통해 여러 주제들을 모아 두었다가 어떤 한 책의 맥락에 많게 카드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책을 내놓는 방식을 취한 것과 같은 형식으로 여러 저작들을 편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안』에서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원인과 그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역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불안의 원인으로는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이며, 불안의 해소 방법으로는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럼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 불안의 원인
(1.사랑결핍) 사람들은 태어날 때 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우리는 타인들의 칭찬이나 격려에 힘을 얻지만, 타인들이 자신을 배격하거나 무관심할 경우에는,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2. 속물근성)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자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은 타인들을 경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감과 열등감을 가진 이들은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느김을 심어주려고 기를 쓰는 경향이 있다. 또한 무시와 외면은 이러한 속물적인 세상에서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내려진다.
(3. 기대) 19세기 초에 서양의 서점에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책이 출간되면서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부유해질 수 있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또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는 항상 사회 고위층의 생활의 모습을 자주 노출시켜주었다. 결국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욕망 즉, 기대가 점점 높아져 결국 부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4. 능력주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움트는 가혹한 의견 중의 하나는, 사회적 위계는 단계마다 거기에 속한 사람의 자질을 엄격하게 반영한다고 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름뱅이가 실패할 조건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고 결국 자선, 복지, 재분배 장치, 단순한 동정의 필요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즉,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가난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선 수치라는 모욕이 덧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5. 불확실성) 1)변덕스러운 재능, 2)운, 3)고용주, 4)고용주의 이익, 5)세계경제 라는 요소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상당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빠지거나 안 좋은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 한다.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느냐는 대응여부는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 '사랑결핌',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에 의해 야기되는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살펴본다.
■ 불안의 해법
(1. 철학) 많은 철학자들은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에 따르라고 권한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2. 예술) 예술은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소설가의 경우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꾸고,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매슈 아널드는 예술의 정의를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실용과 동떨어진 예술에서 우리는 진정한 실용을 경험하게 된다.
(3. 정치)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작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늘 존재해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제도는 사실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 아무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변화가 몇 세대 만에 일어나곤 한다." 어쩌면 이 말이 정치가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만, 정치적 관심의 결과로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이런 관심이 없이는 그저 사람들의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규칙도 제대로 모른체.
(4. 기독교)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후는 삶 이후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마지막,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우리가 집착하는 지위와 부는 우주적인 관점과 천년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미미하다. 이런 깨달음은 자신이 초라해진다는 관점이 아닌 모두가 동일하구나 하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5. 보헤미아) 보헤미아들은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있게 살아가려면 자신들만의 가치 체계,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집단과 전통보다 개인이 우월하다고 강조하며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냈다. 가장 넓은, 가장 포괄적인 말로 보헤미아의 기여를 요약하자면 그들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 추구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존중하는 하위문화의 경계를 정하고 의미를 규정했는데, 이곳에서는 부르주아 주류가 과소평가하고 간과하는 가치들이 적절한 권위와 위엄을 부여받았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不安), 사전적의미로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이라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 중에 하나를 다섯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다섯가지 해법으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다양하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상황과 맥락속에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불안도 역시 마찬가지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원인을 위와 같이 제시했지만, 어쩌면 나는 다르게 접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원인과 해법은 어디에나 적용해도 될 정도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제목이 『불안』일 뿐이지 이 책은 다른 제목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져도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지만, 무언가 특별함이라던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보여주던 세심한 감각은 이 책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다음에는 『뉴스의 시대』를 읽을 예정이다.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보자. 처음 그의 책을 읽고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기대해본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불안의 원인>
1. 사랑결핍
P21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2. 속물근성
P29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자면,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 또는 무엇을 존중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지어 속물근성의 의미를 좁혀보는 것이 더 정확하게 살펴보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P34
속물근성을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으 ㅣ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P38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3. 기대
P56
설사 웃풍이 심하고 비위생적인 오두막에 살면서 크고 따뜻한 성에 사는 귀족의 지배에 시달린다 해도, 우리와 동등한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사는 것 을 본다면 우리의 조건은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괴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질투심이 생겨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한다 해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예 친구 몇 명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시달려 정신을 못 가누기 십상일 것이다.
P57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P72
19세기 초부터 서양의 서점들은 자수성가한 영웅들의 자서전이나 아직 자수성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겨냥한 조언집, 인격을 일괄적으로 개조할 수 있고 금세 엄청난 부와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훈담으로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또 의도와는 달리 그들을 슬프게 했다.
P76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의 발달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그들과 연관을 맺을 기회는 점점 많아졌다.
새로운 미디어는 그 내용만이 아니라, 거기에 덧붙여진 광고를 통해 청중의 마음에 갈망을 심었다.
P78
루소의 주장은 부에 대한 명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P80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4. 능력주의
P112
능력주의 사회의 비옥한 귀퉁이에서 움트는 더 가혹한 의견들에 따르면, 사회적 위계는 단계마다 거기에 속한 사람의 자질을 엄격하게 반영한다고 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름뱅이가 실패할 조건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고 결국 자선, 복지, 재분배 장치, 단순한 동정의 필요성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의 등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1958
"오늘날 사람들은 아무리 비천하다 해도 자신에게 모든 기회가 열려 있음을 안다.....
만일 되풀이하여 '바보'라는 낙인이 찍히면 허세를 부릴 수가 없다....
이제는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기회를 박탕당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에 말이다.
P114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5. 불확실성
P118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생계를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 뜻대로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위계 내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리를 얻거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1)변덕스러운 재능, 2)운, 3)고용주, 4)고용주의 이익, 5)세계경제
P135
고용의 이런 불안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돌아가 본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맨 처음에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질문에 대하여 당당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경제학자가 그리는 그래프의 상승과 하강에 달려 있으며,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달려 있으며, 운과 영감의 변덕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요구에는 변함이 없어, 유아 시절과 비교해봐도 줄어둔 것 없이 꾸준하고 집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요구와 세상의 불확실한 조건 사이의 불균형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끈질기게 들쑤시는 다섯 번째 이유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불안의 해법>
1. 철학
P154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ㅇ낳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P156
이 세상에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P157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소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염세주의 철학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려면 우리 지위를 단속하려는 미숙한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 사실 우리의 지위를 단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는 우리에 대하여 부정적적인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과 결투를 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논리에 기초하여 자신의 가치를 느껴야 하는데, 사실 이때 느끼는 만족감이 근거가 더 탄탄하다.
2. 예술
P163
아널드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다. "<데일리 텔리그래피>의 젊은 사자들"에게 예술이 아부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으ㅢ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ㅇ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P170
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
P179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P197
우리는 비극 작풍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실패에 평소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통해 실패의 유래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많이 아는 것은 곧 더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비극 작품은 아주 작은 단계들, 종종 아무 뜻도 없어 보이는 단계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주인공의 성공을 몰락과 연결시켜 나간다. 우리는 의도와 결과 사이의 비틀린 관계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문에서 단순히 실패의 이야기의 뼈대만 읽었을 경우라면 가지게 되었을 무고나심한 태도, 또는 적의에 찬 태도를 버리게 된다.
P218
만화도 다른 예술과 함께 매슈 아널드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즉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권력의 불의와 더불와 사회 체제에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망도 교정하려 한다. 만화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안타까운 인간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만화가들의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적 목표는 유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런 식으로 조롱할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정치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집단이 스스로 존엄을 얻고자 이전 체제에서 이익을 보던 사람들과 맞서 공동체의 명예 체제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집단은 투표함, 총, 파업, 때로는 책을 이용해 높은 지위를 누릴 정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공동체의 관념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p254
사회적 위계 때문에 아무리 기분이 상하거나 난처해지더라도 우리는 그런 위계가 너무 뿌리가 깊고 너무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 위계를 지탱하는 공동체나 신념들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이런 위계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여 체념을 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p257
조지 버나드 쇼는 <지적인 여자를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안내>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작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늘 존재해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제도는 사실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 아무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변화가 몇 세대 만에 일어나곤 한다.
p266
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 역시 자연스럽지도 않고 신이 주신 것처럼 보이지도 않게 된다. 그것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생산과 정치 조직의 변화에서 생겨난 것이며, 그 이후 유럽과 북미로 퍼져나갔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주입되어 있는 물질주의, 기업가 정신, 능력주의에 대한 열망은 체제의 키를 쥐고 있는 살마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그리고 다수는 이 체제에 의해 생계를 유지한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지위와 관련된 이상 때문에 생기는 불편이 기적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기후 위성으로 기상 상태의 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늘 문제를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용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 결과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욕심을 내보자면 이해는 사회의 이상들을 바꾸거나 그것과 씨름해보는 첫 단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죽마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을 아무런 회의 없이 무조건 숭배하고 존경하는 경향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세계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4. 기독교
p276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아마 나일 강변에서 술을 마시든, 책을 쓰든, 돈을 벌든,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죽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p293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p296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p297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 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 것일 수도 있다.
p306
기독교의 주장에 따르면 낯선 사람이란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와 같은 요구와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낯설다는 인상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p310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업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5. 보헤미아
p325
19세기 초 서구와 미국에서 새로운 집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박하게 옷을 입고, 도시의 싼 지역에 살았고, 책을 많이 읽었고, 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다수는 우울한 기질이었고, 사업이나 물질적 성공보다는 예술과 감정에 충실했고, 가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생활을 하기도 했고, 여자들은 단발이 유행하기 오래전에 단발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p337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 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p344
보헤미아는 거부당한 사람의 존엄과 우월을 강조하여, 예수의 추방과 십자가 처형이라는 기독교 이야기의 세속적인 짝을 만들어냈다. 보헤미안 시인은 기독교의 순례자처럼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ㅅ ㅜ있지만,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시 자체가 무시당하는 자의 우월성의 증거가 된다.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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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과 그 전통은 열등하다는 보헤미아의 믿음과 더불어 개인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으며 이와 더불어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났다.
랄프 에머슨의 에세이 <자립>에서도 비슷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에머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살고, 옷을 입고,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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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들이 부르주아지에게 충격을 줄수록 부르주아지는 충격에 무디어졌다. 그래서 20세기 보헤미안 운동이 증명하듯이 그들의 기괴한 행동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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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넓은, 가장 포괄적인 말로 보헤미아의 기여를 요약하자면 그들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 추구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존중하는 하위문화의 경계를 정하고 의미를 규정했는데, 이곳에서는 부르주아 주류가 과소평가하고 간과하는 가치들이 적절한 권위와 위엄을 부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