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 홍세화가 이 당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저자 홍세화는 1972년 대학교 재학 시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다가 1977-1979년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했습니다.. 1979년 다니던 무역지사의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합니다.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2002년에 귀국하게 됩니다.
이 책은 저자 홍세화가 당시 택시운전을 하게 된 계기와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은 경험과 생각 등을 엮어낸 수필입니다. 망명 생활 동안의 그의 내면적인 고뇌가 드러나며 그 속에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똘레랑스] 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똘레랑스]란 무엇일까요? 저자 홍세화가 왜 그토록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부러워했을까요?
p349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입니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회가 '정(情)'이 흐르는 사회라면 프랑스 사회는 똘레랑스가 흐르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정'의 뜻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 쉽지 않듯이,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를 한마디의 우리말로 옮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의 사회적 의미는 애매한 반면, 똘레랑스의 사회적 의미는 명확하답니다. 우리의 '정'은 감성의 표현인 것에 비하여 똘레랑스는 이성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입니다.' 프랑스 사전에는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그가 부러워하고 원했던 사회는 바로 차이를 인정하는 똘레랑스의 프랑스 문화였습니다. 차이를 '틀리다'의 개념이 아닌 서로 '다르다'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에 대한 갈증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우리나라가 군사정권의 시대였기에 그 갈증은 목이 타들어가도록 심했을 것입니다.
20~30년이 지난 우리 사회는 그 차이를 여전히 '틀리다'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만 '틀리다'라는 것은 사람들이 없애거나 고쳐야할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갈등은 이렇게 시작하는 법입니다. 의견과 사상의 차이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인식이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결국 의견과 사상이 문제의 대상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틀림'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그 '틀림'이라는 이식으로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장과 사상의 논쟁의 시시비비는 따질지 몰라도 그것으로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똘레랑스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p138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 주의 주장 또는 사상을 일단 그의 것으로 존중하여 받아들인 다음, 논쟁을 하여 설득하려고 노력하는데 비하여 우리는 나의 잣대로 상대를 보고 그 잣대에 어긋나면 바로 미워하고 증오한다. 이 글을 끝까지 읽는 독자는 곧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 같은 독선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져리게 느끼고 있던 나조차 그 함정에 빠져 베르트랑을 미워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트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한다.
이렇게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선, 즉 설득하는 사회에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축출하지 않으며 깔보지 않는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 않고 대신 까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말이 많고 말의 수사법이 중요시 했다."
우리는 정(情)이 통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은 어쩌면 우리들이 속한 집단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정이 타인과 타집단에 관통한다면 그것이 감성의 똘레랑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근현대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차이라는 것은 '틀림'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왔고 어쩌면 내면 깊숙히 무의식 속에 아로 새겨져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잃거나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역사는 자연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나와 우리를 위해 타인과 타집단을 인정하지 않게된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그런 아로 새겨진 가슴 아픈 인식을 조금씩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우리 사회로 똘레랑스가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가슴의 생채기가 조금씩 치료되고 사회의 상처가 아물었으면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집단이 바로 세계적 예술가들이다. 이들이 가진 창조력과 그 방법론에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글에서 다루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배병우는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과 특유의 근면성으로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의 창조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독창성 확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경험과 사고, 환경과 시대를 기반으로 끝없이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경험과 한국 문화와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 스스로에 대한 통찰은 그에게 남다른 독창성을 만들어줬다.
2) 탐구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 통찰력을 선사한다. 오직 소나무를 찍기위해 수종과 생태계를 연결하고 직접 찾아 다닌 열정은 독일의 병든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깊은 통찰력을 선사했다.
3) 안주하지 않는 자기혁신에서 새로움이 창출된다. 소나무 사진으로 최고가 됐지만 이제 '바람'을 프레임으로 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끝없는 자기 혁신과 매일 새벽 나무를 찍으러 나가는 근면성이 창조의 근원이다.
스티브잡스가 자신이 다루는 디지털 기기에 몰입하고 놀라운 근면성으로 '애플 그 자체'가 됐듯 배병우는 스스로 '소나무'가 되는 합일 상태에 도달했다. 최고의 창조 비즈니스맨과 최고의 예술가는 이렇게 서로 통하는 법이다.
# 최근 솓아져 나오는 창조성의 베스트 프랙티스에 관한 도식화되고 단순화된 정리들은 오히려 독자들을 오도할 위험이 크다. 창조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방법을 찾고, 창조성의 원천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대안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각 상황에서 독자 각자에게 상대적으로 가장 적합한 창조성 모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 소나무라는 일생일대의 창작 대상을 만난 배병우는 소나무의 모든 면을 이해하기 위해 맹렬히 몰두했다. 전국의 소나무 숲을 다 돌아다녔다. 1984~1985년경 소나무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후, 처음 일 년 동안에만 10만km 정도를 답사했다.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소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전문 서적, 신문, 잡지 등의 모든 소나무 관련 기사를 스크랩했고 조선시대에 소나무를 그린 회화 작품을 모두 찾아봤다.
끝없는 발로 뛰는 답사, 글로 보는 공부, 그리고 엄청난 작업량은 그에게 한국적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빛으로 그린 수묵화'라는 배병우만의 고유의 사진 언어를 허락했다.
# 그가 독일의 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이 숲에서 좀 떨어져 홀로 서 있는 오랜 고송이 건강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배병우는 "나무가 외로워서 그렇다" 고 대답했다. 배병우는 "나무가 외로워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예전에는 그 나무가 있던 곳까지가 숲이어서 친구나무들이 옆에 있어 외롭지 않았으나 도시개발로 숲이 뒤로 밀려 다 사라지고 그 나무만 홀로 남아 친구가 없어 외로워서 아프다는 것이다. 독일 현지인들이 예술가의 독특한 통찰력에 큰 감동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 그는 한국 미술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자신만의 틀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기술적으로 사진을 잘 찍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생각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즉 본질이 있어야 표현도 따라온다는 것이 배병우의 신념이다.
$ 탁월한 창조적 역량을 가진 인재들이 모두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충분한 자양분이 보장돼야 탁월한 재능이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배병우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예술 분야의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특히 해외 기업들처럼 한국의 기업들도 예술품 구매나 투자에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그는 진정한 창조적 예술에는 정점이나 전성기란 없으며 예술가의 전체 일생을 관통해서 끊임없이 창조가 시도돼야 한다고 믿는다.
# 배병우의 '풍경(Windscape)'은 우리 조상들이 지경이 아닌 풍경이라고 부른 정신으로 되돌아가 이를 뒤집어보려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시도다. 바람을 찍겠다는 것이다. 2013년 초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평론가들과 사진전에서 극찬을 받은 배병우의 풍경 시리즈에서는 수먄 위로 바람이 불어 물이 부서지는 순간, 들판 위 풀들이 바람에 스러지는 순간을 담는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지만 배병우의 사진 속에서는 바람이 보인다. 특히 그의 풍경 작품집에 실린 풀잎이 바람에 누웠다 일어나는 사진은 그의 처이모부였던 고 김수영 시인의 절창 '풀'의 본질을 그대로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 최근 유행처럼 양산되고 있는 창조성에 관한 자기계발서나 경영경제 서적들에서는 흔히 열심히 노력하는 근면성이 핵심 관건이던 20세기적 산업사회와 달리 21세기 창조사회의 핵심은 기발한 상상력이므로 근면한 노력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심지어 예상 못한 우연한 발견을 통해 창조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근면보다는 여유 있는 생활이 중요하고 심지어 어느 정도 게으르기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가 인터뷰한 세계적 예술가 그 누구도 극도로 치열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창조적 기업가라는 스티브 잡스가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워커홀릭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배병우는 가장 극단적 예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책의 위에 쓰여진 '구본형의 자기경영 1954-2013' 이다.
구본형은 변화경영전문가로 저서와 인터넷 매체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는 위의 부제가 의미하듯이 2013년에 폐암으로 삶을 정리하였다.
이 책은 구본형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구본형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604편의 원고 가운데 대표작 60편을 선별하여 제자들이 묶은 것이다. 원고 속에는 그가 삶을 대하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
책에 대한 편견을 가져서는 안되지만 언젠가부터는 자기계발서는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생긴 듯 하다. 그의 책은 많은 부분이 자기계발에 관련된 것이라 잠시 읽기를 망설이기는 했다. 하지만 컬럼 하나를 읽어보니 자기계발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수필과 같은 느낄이 들어서 그 망설임은 해소 되었다.
(논외로 '자기계발' 이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 한다. 나쁜 말이 아님은 확실하지만 무언가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단어이다. 무엇인가 상업적인 느낌이 들고 경쟁해야 할 것 같고 따뜻하기 보다는 냉정할 것 같은 단어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이라는 표현이 싫다. )
컬럼들을 읽어내려가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하나하나 표시해두고 정리해두었다. 시간 날 때 한 번씩 보려고 한다. 삶에 대한 방향성을 잘 모르거나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일 때 조금은 생각을 거리를 던져주기를 바랄 뿐이다.
책이라는 것은 똑같을지라도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는 유치란 글귀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큰 요동일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요새 복잡한 감정을 살짝 잔잔하게 만들어준 그런 책이었다.
혼자 조용히 정리해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익숙함 속의 낯설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환절기 출근 시간의 싸늘함을 살짝 올라오는 닭살로 느껴본다. 단순히 걷지 말고 엄지발가락이 밀고 다시 발바닥을 땅에 닿게 하는 그 은근한 압력을 느껴본다. 평소에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고 익숙한 길이라도 거기에 서있는 나무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 나무는 어떤 나무인지 한 번 쯤 확인해보는 것이다. 주위의 자연과 환경을 몸으로 느끼고 내 신체의 부분부분의 움직임에 주목해보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한 여자의 동반자로서, 자녀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한다. 무엇보다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계속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추억임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생각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집중하고 사소하고 소중한 습관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러한 습관들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를 예전에 만났다면 단순한 자기계발이었을 것이지만, 지금 만났기에 '치유'의 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복잡했던 머리가 다소 정리된 기분이다. 차분해지자.
P33
질문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익숙해 신기할 것이 없는 것을 낯설게 보는 훈련으로부터 온다. 나는 이것을 '시인의 시선'이라고 부른다. 수십 번 수백 번 보았지만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산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 제대로 보는 순간 우리는 느닷없이 재미있는 세상으로 인도된다.
P36
나이 들어 깨달은 것은 삶이란 눈물, 콧물, 웃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자각이다. 아주 가까이서 그놈을 지켜보고 만져보고 말 시켜보고 핥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듯이 아주 낯선 얼굴로, 오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쳐다보아야 한다. 낯선 여인이 신비하듯, 낯선 삶이 흥미진진하다.
P54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작가 카잔차키스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조르바는 살구나무 묘목을 심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가 왜 묘목을 심고 있느내고 물었다. 노인이 대답한다.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삽니다."
그러자 조르바가 말한다.
"나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삽니다."
P97
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일에 써야 한다. 두 시간 이상 투입할 수 있으면 더 좋다. 그러나 그 이하로 줄이면 곤란하다. 시작해서 6개월 이내에 스스로 변화를 감지하고 확신을 가지려면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은 써야 한다.
P134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 있는데 1년에 한 번은 가족 모두와 함께 꽤 긴 여행을 다녀온다.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그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다른 비용은 모두 검소하게 쓰지만 가족 여행은 꼭 한다. 가족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많은 기쁨을 공유할 때, 서로를 위한 기쁨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지론은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게 되면, 가족 여행조차 함께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나는 십여 년 정도는 기쁨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쁨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늘 돈과 시간의 덫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멋진 것을 위해 조금씩 돈을 모아가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영화도 같이 보고, 음악도 함께 하고, 먼저 서로 잘 놀아 기쁨을 나누면 웃음이 많아진다. 웃음이 많은 곳, 그곳이 가장 좋은 휴식처다.
P177
어느 날, 중요한 각성이 찾아왔는데, 직장에서의 생활이 내가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간단한 사실이 그것이다. 이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삶의 3분의 2가 속절없이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이 전율하듯 온몸을 타고 흘렀다.
P208
나는 나를 탐구한다. 나는 매일의 사건들을 애지중지한다. 그래서 이렇게 보고 저렇게도 보면서 나와 나의 삶을 탐구한다. 나를 내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재미있다. 제3의 관찰자가 되어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슬픔과 고독조차도 풍요로운 은총으로 선물처럼 내 생활 속에 쏟아져 들어오고, 불쾌한 일과 황당한 사건조차 웃음의 소스가 된다.
유머란 나와 나에게 닥친 사건을 분리시켜 인지함으로써 웃어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유머를 즐기는 사람이다. 삶에 대해 웃어주자. 웃음으로 나를 탐구하자.
<30대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
1.철학사를 뒤적여 가장 매력적인 철학자 한 ‘분’을 골라라. 그 ‘분’에 관한 두 권을 정독해 그 ‘놈’으로
만들어라. 철학은 땅으로 내려와야 하고, 좋은 스승은 반드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함께할 수 있다. (철학과 윤리)
2.회사 명함 말고, 3년 뒤의 개인 명함을 만들어라. 우리는 이것을 꿈의 명함이라 부른다. 서른이 끝나기 전에 이 꿈을
성취하라. (꿈과 비전)
3.일주일에 두 번은 네 시간만 자라. 그리해 그대의
‘뼈가 아직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 (시간)
4.차 한 대를 사서 적어도 5년 전에는 바꾸지
마라. 10년을 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똥차가 바로
지금의 당신이다. 투자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늘어나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이다. (투자)
5.주식 세 가지를 골라 계속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고 예측해보라. 돈을 걸든 걸지 않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예측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연습이라는 점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
6.10년 뒤에 살 집을 모색해 두어라. 실제로 돌아다니며 적어도 50개 동네와 200채의 집을 가보고 두세 군데를 찍어라.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은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구체적인 장기적 목표)
7.취미 하나를 가져라. 유행과 관계없이 가장 자기다운
취미를 하나를 골라 일주일에 두 번은 즐기도록 하라. (활력을 얻는 소스)
<40대에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
1.자신의 철학을 가다듬어라. 차용한 철학으로는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길을 갈 수 없다.
2.사표를 써라. 직장에서 중역이 되든 나와서 창업을
하든 일단 사표는 써야 한다. 떠남이 목표일 때가 있다. 이때가
그 때다. 떠나지 못하면 모욕을 당할 것이다. 조직의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라.
3.하루의 시간을 완전히 개편하라. 새벽에 일어나고
일찍 자라. 일주일이면 새벽에 일어나도록 바이오 클록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습관이 되려면 반드시 일찍 자야 한다.
4.하루에 두 시간은 자신의 전문성을 위해 투자하라.
R&D없이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상한 논리다.
5.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어라. 아내와 남편에게 가장 매력적인 애인이 되어라. 밖에서 성공하고 안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가정을
얻는 것보다 좋은 투자는 없다.
6.오랫동안 마음에 그리던 집을 사라. 거기서 깨어나고
생각하고 즐기고 잠드는 아름다운 공간을 가족에게 선물하라.
7.취미 속에서 평생 직업의 힌트와 싹을 키워라.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만이 ‘굿 투 그레이트’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끊임없는 실험과 학습이 이 시기의 키워드다.
<50대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
1.자신의 철학을 이웃과 조직에 나누어주어라. 철학이란
삶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다.
2.나의 인생에 감동한 세 명에서 다섯 명의 후배를 만들어라.
실천과 모범이야말로 강력한 설득력이다.
3.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로부터 하루를 시작하라. 만일
저녁에도 그 일을 하지 못했다면 그 일을 마치고 자라. 최고의 수면제다.
4.하루에 한 번 작은 즐거운 일 하나를 만들어라. 언제
어디서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있게 마련이다. 편지, 꽃, 전화, 만남, 선물, 이메일 등. 이 방법을 터득하면,
자신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 하나를 얻은 것이다.
5.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산에 가라. 이날은 꼭
배우자와 진한 사랑을 나누면 좋다. 산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그 정기를 받는 것은 한국에서 태어난 혜택이다.
6.자신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라. 인생이 다 지난
다음에 쓰면 뭘 하겠는가. 쓰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반성이
따르고, 더 좋은 일이 발견될 것이다. 50은 바로 그런
일들을 찾아 빠짐없이 유유히 즐기는 때다.
7.한 달에 한 번은 가장 좋을 때 한국의 산하를 구석구석 뒤지고, 1년에 한 번은 다른 나라를 돌아보고, 매일 30분 이상씩 천천히 걷는 거리의 산책을 즐겨라. 인생은 길과 거리에
수많은 교훈을 남겨둔다.
책에 대한 책이다. 작가 목수정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읽은 많은 책 중에서 자신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책들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단순히 책의 소개만이 아니다. 그 속에서 그녀의 짙은 고민과 깊은 성찰이 느껴진다.
그녀의 고민과 성찰을 이해하려면 그녀가 지금껏 밟아온 삶을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책의 겉표지 바로 뒤에 작가에 대한 소개에 그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30대에 국경을 넘어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거기서 68세대이며 예술가인 프랑스 남자를 만났다. 스물두 살이 많은 그와 사랑하고, 비혼으로 아이를 낳았다. 프랑스에 머물며 사회주의가 유효적절하게 작동하는 사회를 그리게 되었다. 2003년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왔다. 국립발레단을 거쳐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하다 다시 파리로 갔다. 그사이 월경(越境)은 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화두가 되었다. 목수정에게 월경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일인 동시에, 사회제도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금기의 벽을 부수는 자기혁명이다. 문명이란 미명하에 야성을 옯아매는 허례허식을 거부하고, 새로 디딘 땅 끝에서 확장된 자아를 발견하기를, 그래서 더 많이 관용하고 더 뜨겁게 포용하길 주문한다.'
기존의 틀에 안주하기 보다는 월경하듯 뛰어넘는 그녀의 태도가 책의 소개에 두껍게 스며들었다.. 아니면 그런 책들에 의해 그녀가 그렇게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책, 어찌보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해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스쳐가기에 유혹이 너무나 큰 책이다. 왜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할까?
<월경독서>의 중간중간에 작가는 책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이렇게 풀어 놓는다.
p192
어찌 보면, 책읽기는 나에게 질문들과 만나는 과정이었다. 난 언제나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에게 끌렸고, 질문들을 찾아다녔다. 삶을 신선하게 가꾸어가기 위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답보다 질문이라 믿으며, 답은 결국 내가 문제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찾아지고 마는 것이다. 김우창은 이 생각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무의식 속에서 생각은 혼자 움직여 길을 찾는다."고, 그러나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나름 해답을 얻고 나서 더 이상 질문을 품지 않는다면? 그건 지루함을 짓이기며 살아내야 하는 삶을 의미일 터.
p64
"소설가는 자신의 생이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다시 그 작가들이 지은 책들을 벽돌 삼아 자신의 집을 짓는다. 그리고 우리가 읽은 하나하나의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벽돌이라면 그 벽돌들이 잘 붙어서 하나의 집이 되도록 해주는 시멘트는 우리가 삶에서 직접 마주하는 경험들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가 책을 읽기 전이나 후에 겪은 실제적 경험들을 통해 공명할 때, 비로소 견고한 내 정신세계의 한 벽돌로 굳건히 자리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내 현실의 삶 속에서 공명을 하지 못하는 책들은 곧 잊히고, 벽돌은 허물어진다.
예전에 이 책과 같이 책에 대한 책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는 카프카의 이런 표현을 보여준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장그르니에의 <섬>에 대한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존재한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마한 책을 열어 본 후, 겨우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까지 한 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되는 저 남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이래도 왜 책을 읽어야한다고 다시 질문해야하는가?
삶을 살아가는 질문을 찾기 위해서, 책과 경험이 공명할 때 쌓아지는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 책을 열어보고 꼭 껴안은 채 달려가는 그 설레임을 위해서 우리는 책을 일거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월경독서>를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들이 생기고 삶에 대한 질문을 찾기 위해 조금 더 고민해보려 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나는 조금 더 잘 만들어진 사람이고 싶다. 책에 의해서...
내가 읽은 글들을 통해 느끼게 되는 감정과 가치관, 내가 입으로 표현하는 말, 몸으로 반응하는 행동이 서로 다투지 않았으면 한다.
공부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 책의 겉표지에에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부하는 인간, 호모아카데미쿠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고시원, 각자의 집, 회사에서 다들 공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왜 공부를 끊임없이 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지 평생하는 공부를 의미있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근본적인 질문과 그에 따른 자기 성찰이 한 번 쯤은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아무런 목적 의식없이 부모의 강요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삶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 그저 입시만을 위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3년 동안 아침부터 자율학습에 정규 수업, 저녁 보충 수업, 야간 자율 학습을 거쳐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제가 어떤 것을 좋아해서 어떤 학과를 가야하는지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수능시험 점수에 맞춰서 갈 수 있는 학교에 갔습니다. 학과보다는 좋은 학교를 가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학과에는 상관없이 좋은 학교 보내는 것만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그 당시의 학생들이 그랬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가시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보지는 않았기에 그 당시의 시간이 저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무엇인가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 더 행복하고 뒤를 돌아 보았을 때 그럴 수는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후회를 남기고 싶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덜 후회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봅니다. 저의 두 아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강요가 아닌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체화할 수 있는 공부를 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은 느낌입니다.
이 책은 이미 큰 화제를 이루었던 KBS 1TV의 기획방송 <공부하는 인간>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공부하는 인간>은 각 문화권마다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공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여러 사례와 실험을 통해서 각 문화권의 공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몇 차례 언급한 교육열이 높은 나라 우리나라 한국, 표준과 평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일본, 우리나라에 구구단이 아닌 십구단으로 유명한 암기의 나라 인도가 동양 문화권으로 등장합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대입 시험에 유일하게 철학이 포함된 나라 프랑스, 전 세계인구의 0.2%밖에 되지 않지만 노벨상의 23%를 차지하는 민족인 유대인의 교육 방식을 소개합니다.
동양권과 서양권의 학생들의 공부의 목적은 차이점을 보입니다. 동양의 학생들에게 왜 공부를 하고 성공하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그들은 "그동안 보살펴준 부모와 가족들에게 보답하고, 자신들의 나라에 이바지하고 싶다." 라고 표현합니다. 반면에, 서양 학생들은 "자신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위해서 공부를 합니다." 라는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p290
'집단,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은 남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해도 이를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교만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타인과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 사회에서는 개인의 만족과 행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자신을 무조건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높다. 그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의 공부방식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암기하는 동양, 질문하는 서양' 입니다.
암기와 질문 서로 다른 방식을 중요시 한 공부의 방식은 그들 문화권에서 오래동안 자리잡혀온 전통의 다르기에 자연스럽게 생격났습니다.
296
유교 문화권에서 지식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지식, 세상에 있는 지식을 최대한 습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개인적인 견해로 사물을 바라보거나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했죠. 그런 학습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전투 능력'과 '논쟁 능력'을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삼을 만큼 질문을 매개로 한 토론과 논쟁의 공부 방식을 지향했다. 지식은 세상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을 했고, 이를 찾는 것이 공부의 목표였던 것이다.
동양, 서양의 어떤 방식이 '더 좋다. 좋지 않다.' 그런 개념의 접근이 아닙니다. 이런 접근 역시 절충과 타협을 중요시하는 동양문화의 영향 탓일 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방식을 어느 정도 융합하고 개인 별, 집단 별로 특성에 따라 선택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인간> 이 책 역시 처음의 접근 이유는 바로 유대인들의 공부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저는 '암기하는 동양'의 문화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장단점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단기간의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단연 암기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으로 부터의 주입식 교육 역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식 습득에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동양, 서양 이렇게 구분이 가능하지만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기준으로 명확히 나눌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양 쪽에 대해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고 왜? 라는 의문으로 주저없이 질문하는 방식으로 맹목적이 아닌 사고하는 공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머리속에만 기억하는 공부가 아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자극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방법일 것입니다.
사고하라! 토론하라! 그리고 질문하고 분석하라!"
MIT 미디어랩의 한 한생이 한 말을 마지막으로 공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겠다.
"저 혼자 일방적으로 배우고 소유한 지식은 결국 제 것이 되지 못해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자기 것이 디죠. 이것은 어떤 학자가 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푸른 유리를 푸르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리가 여러 가지 색을 통과시킬 때 다른 색은 전부 흡수하고 푸른색만 내뱉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유리가 푸르다고 한느 것이죠. 지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자기가 진짜 갖고 있고 이해한 지식은 우리가 흡수하고 소비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를 투과시켜서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어떤 것이 내 자녀들이 받기를 원하는 교육인가? 마지막으로 다시 질문해 본다.
- 중국의 수험생들이다. 우리나라 역시 고3수험생들이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 잘못된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마음 편하지 않은 사진이다.
- 토론식 수업의 상징이자 대명사가 된 '하크니스 테이블' :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상대의 얼굴을 보며 토론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질문과 의견, 아이디어가 동등하게 오갈 수 있다.
- 해리포터에도 등장한 옥스퍼드 대학교의 식당이다.
옥스퍼드대는 매일 저녁 모든 학생들이 함께 모여 식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 이유는 나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과 지적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옆에 앉은 학생이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경제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96
니스벳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이유를 몇 가지 거론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동양인은 서양인과 달리 개인을 넘어 가족, 사회, 국가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103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동, 서양의 자기소개 방식이 다른 이유는 그들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양 문화는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기소개를 할 때도 '나는 성실하다','나는 음악을 좋아한다'와 같이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 위주로 설명하고, 동양 문화는 '집단,관계성' 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학교에 다니고, 가족은 몇 명이고, 친구나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떠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와 같은 사회적 관계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려 한다고 했다.
106
공부의 목적 또한 개인을 넘어 가족, 공동체로 확장된다. 동양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높은 학업성취를 이루는 이유는 공동체를 위한 공부의 목적이 아주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08
IQ보다 자제력이 두 배 더 학업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지금 당장 자신의 욕구를 참으면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강한 동기부여를 받아 자제력을 보인 학생이 머리가 똑똑한 학생보다 우수한 성적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강한 동기를 가진 학생일수록 일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며, 좌절을 잘 견디고, 스트레스에 성숙하게 대처하기 때문이다.
113
특히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노력에 대한 신념은 이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중국은 개인이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요, 개인적 또는 환경적인 장애가 있어서도 아니며, 오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116
브라이언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처럼 학생들을 수준별로 나누지 않고 모두 같은 교실에서 동등한 수업을 하는 것이 곧 동양인들이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보다 노력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증거라고 했다.
서양인들은 이처럼 지적 성취가 노력과 의지에 달렸다기보다는 타고난 재능, 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양인들보다 노력을 게을리할 수 밖에 없고, 당연히 학업성취 면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9
미국 버클리대학교 수학과 앨런 쇤펠트 교수는 "성공은 보통 사람이 30초 만에 포기하는 것을 22분간 붙잡고 늘어질 수 있는 끈기와 지구력, 그리고 의지의 산물" 이라고 했다. 이 말은 어떤 목표를 이루는 데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보다 그 일에 접근하는 태도, 즉 노력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력이 어떤 경쟁에서 성공을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동양인들이 갖고 있는 노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공부를 열심히,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134
서양인은 긍정적인 피드백에, 동양인은 부정적인 피드백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이네 교수는 이런 동/서양의 극명한 차이가 두 문화가 갖고 있는 '능력에 대한 가치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137
동양인은 비판이나 지적을 불쾌하게 여기는 서양인과 달리 이를 수용하는 데 익숙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더 향상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즉, 동양인들은 긍정적인 피드백보다 부정적인 피드백에 강한 동기부여를 받기 때문에 성적이 나빠도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더욱 매진하고, 그만큼 높은 학업성취를 이룬다는 것이다.
140
"우리나라는 남들보다 잘하면 위너, 못하면 루저예요."
즉, 동양인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표준에 한 번 탈락하면 영원한 실패자로 낙인찍힌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표준, 평균에 속하기 위해 애를 썼다. 동양인들이 이처럼 표준, 평균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는 것은 동양인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44
동양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체면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내가 못하는 부분, 즉 단점에 더 치중하고 단점이 될 수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죠. 동양인들에게 단점이 되는 곳은 더 노력해서 향상시켜야 할 부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동양인들은 성적이 좋을 때보다 나쁠 때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잘하는 과목보다 못하는 과목에 집중해서 성적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학업성취도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45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다.
"천재와 일반인의 차이는 학문에 대한 태도에 있다. 일반인은 자신의 출세와 의식주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공부하지만, 천재는 학문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기에 공부한다."
147
"제게 공부한 세상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저 사실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실들이 서로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 알게 되는 작업이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하려 해도 공부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게 해주니까요."
148
그들은 공부도 여타 다른 일들처럼 흥미와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이 이룬 학업성취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고 여긴다.
163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역대 노벨상 중 23%를 휩쓴 그 기적적인 성취에 감탄하게 된다.
172
<구약성서>에 의하면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고, 그 이후 이 솔로몬의 성전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20년에 동방박사로부터 유대의 왕이 될 예수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그 아기 예수를 죽이라 명한 헤롯왕(기원전 73 ~ 기원전 4)이 이 성전을 재건했지만, 예수가 죽은 뒤 로마 제국에 의해 다시 성전을 비롯해 예루살렘이 파괴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무려 11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도륙을 당하니, 기록에 따르면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피가 강을 이루어 목까지 차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비국을 지켜번 성전의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188
유럽에 기독교 문명이 뿌리를 내리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유대인은 예수를 살해한 사악한 민족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하게 되었고, 그 죄목 아래 유대인들은 수많은 비난과 박해에 시달렸다. 당시 유럽인들이 갖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 벌어진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슬람교도들의 지배 아래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한 십자군은 자신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이슬람교도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가장 먼저 학살했다. 그것도 모든 유대인들을 죽였으니,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반 유대인 정서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다.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유대인 600만 명이 나치의 손에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대학살이 벌어질 때도 유럽인들은 이를 외면했다. 구원, 사랑, 관용, 평화 등을 중시하는 기독교 정신을 지향했던 유럽인들이 이런 나치의 만행을 묵과한 것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던 반유대인 정서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의 원인을 히틀러와 몇몇 나치주의자의 선동만으로만 보지 않는다. 유럽에 팽배했던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1
"유대인들이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1948년까지 국가가 없었으며 여러나라에서 추방당햇죠. 이때 이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식과 기술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교육은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필요한 생존 도구였습니다. 교육을 받으면 지식과 기술은 자기 것이 되고, 이것은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자산이니까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투자를 한 것입니다.
192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난을 당했습니다. 여러 국가에서 추방을 당했고 홀로코스트를 당하기도 했죠. 유대인에게는 교육만이 새로운 곳에 재정착해서 발전,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나라처럼 졸업장, 성적표와 같은 학력을 증명하는 문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이마저도 유명무실해졌을 때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단순히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최악의 상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 쌓기 교육과 창의성 교육에 몰두한다.
199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떤 내용은 암기한 뒤 2시간을 자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2배나 기억하는 양이 많고, 8시간을 자면 잠을 자지 않는 경우보다 5배 이상 많은 양의 기억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자녀에게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라고 강요한 부모들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었을 때일수록 자녀가 충분히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당장은 불안하겠지만 잠을 자는 동안 뇌가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상태로 재정비되므로 그것이 자녀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200
동양인과 유대인의 공부는 서로 유사한 듯해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두 집단 모두 자녀교육에는 헌신적이지미나 동양인들은 강력한 통제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정하고 이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도록 지시하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의 교육을 한다. 반면 유대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지시하기보다는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애초에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은 지시하지 않는다.
202
릴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릴리가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또한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매일 거르지 않고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릴리와 함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느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릴리의 부모는 릴리가 어릴 때는 잠들기 전에 꼭 책을 읽어주었고, 오랜 기간 릴리의 학습을 직접 지도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권장하고 아이가 질문할 때 마다 열심히 응대를 해주었다. 또한 릴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었으며, 릴리와 함께 휴일을 보내고, 여행이나 현장학습을 갔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부모가 공부를 중시하고 높은 교육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일방적으로 자녀가 이루엉야 할 목표를 세워두고 학원 수업, 과외 등을 시키며 공부를 강요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부모들보다 교육열이 더 뜨거운지도 모른다.
227
"수업 중에 생긴 의문은 바로바로 질문하고 토론해야 해요. 뒤로 미루면 이 의문을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질문은 전후 맥락, 상황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뒤로 미루면 자기가 왜 그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고, 선생님도 학생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어요. 또 질문이 떠오를 때 바로 묻지 않으면 이 의문이 계속 머리에 남아 수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날 때 곧바로 해야 해요. '이건 좀 바보같은 질문인가?'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이 떠오르면 그냥 하는 거지, 거기에 의미나 목적은 중요하지 않아요."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이아야말로 이사라엘 유대인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계획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 문화의 일부라고 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아주 얼리 때부터 부모나 교사에게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합니다. '진실ㄹ의 향한 질문'과 '가르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유대인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죠. 그래서 유대인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합니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윗세대, 권위자, 지식인에게 도전하고 논쟁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런 지식 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논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주입식, 단순 암기식 교육이 잘 통하지 않죠.
231
우리가 만난 릴리의 아버지도 유대인 공부방식의 근원을 유대교라고 보았다. 그는 공부에 있어 '왜?'라고 질문하는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설ㄹ령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리가 있더라도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왜?' 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세상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왜?' 라고 질문하며 사고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상상력과 탐구심이 곧 '왜?'라는 질문에서 비롯되고, 이것이 창의적인 생각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공부 철학은 유대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유대교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직접 탐구하면서 '왜?'라고 생각하고, 문제에 직접 맞닥뜨려 학습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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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500년 쓰여진 <탈무드>는 총63권에 이르는 방대한 유대교 율법서로, 오랜 세월 <토라>를 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라서 <탈무드>는 일종의 '<토라>해석집'인 셈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모든 내용이 토론과 논쟁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특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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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이 소를 숭배하는 것도 사라스바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목생활을 했던 고대 인도인들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식량원이었고, 고기뿐만 아니라 배설물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귀한 존재였다. 고대 인도 사회의 흰두교는 제사를 중시했는데, 이 때 최고의 제물로 쓰인 동물이 바로 소 였다.
제사장 자리를 독점하던 브라만들은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많은 소를 제물로 바쳤다. 어느 동물보다 소가 필요했던 인도 사람들은 이런 브라만들에게 불만을 품었다. 여기에 때마침 살생을 금기하는 불교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에 힌두교의 브라만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종교생활에서 살생 금기를 하나의 실천 계율로 택했고, 암소를 성스러운 영물로 신격화하여 함부로 살생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248
고대 브라만들은 자신들의 완벽한 가치를 담은 베다 경전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외우는'방식으로 학습했다. 이러한 고대 브라만의 전통적인 학습 방식이 지금의 인도 교육에 고스란히 전수되었다. 현재 인도 교육의 핵심은 '암송과 암기'다. 우리는 인도의 여러 학교를 통해 인도 사회가 고대 브라만의 학습방식에 기반을 둔 암송과 암기의 공부를 지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250
"암기 이전에 이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일단 암기하려는 내용을 이해해야 해요. 이해하지 못하면 암기의 효과도 떨어집니다."
"외워서 암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뜻조차 모르면서 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255
일본은 개인이 공동체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족을 비롯한 어떤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즉, 일본인들은 집단에 동조하고 타인과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성향으로 인해 그만큼 집단과의 친밀도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선배, 윗사람에게 무리한 부탁을 할 수 있고, 반대로 부모나 선배, 윗사람도 자신이나 후배, 부하직원에게 무리한 요구나 지시를 할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은 개인과 집단의 완벽한 융합을 지향하는 사회이다 보니 수직적 상호의존관계, 즉 '아마에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가미카제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몽고군 함대가 일본 규슈 섬 남쪽을 침입하려 할 때 이들의 상륙을 막은 태풍에서 비롯된 말이다. 일본인들은 예상치 않은 태풍이 몽고군의 침입을 저지하는 것을 보고 이 바람을 '가미카제(신이 일으킨 바람)' 라 불렀고, 필리핀에 상륙한 연합군을 공격할 특공대에 이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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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에게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고 강조하면서 젊은이들을 선동했고, 아마에 심리에 의한 강한 집단의식을 가진 일본 젊은이들은 머지않아 맞이할 죽음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공격에 나섰다. 또한 가미카제 출격을 거부하는 사람은 천황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반역자로 취급받으며 가장 먼저 출정 대상자로 뽑혀 나갔다.
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활약으로 연합군의 30척 이상의 군함과 350척의 전함에 피해를 입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평균연령 20세의 젊은이 5,000여 명이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2,483대의 전투가기가 투입된 가미카제 공격에 성공한 전투기는 244대뿐이고 연합군의 항공모함은 침몰시키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공격이었다고 볼 수 없다.
258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잘 알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트는 선생님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이끌어줄 수 있는 좋은 두구가 되죠. 왜냐하면 노트 필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니까요. 대부분의 경우 노트를 보면 아이들이 어떤 점이 부족한지,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줘야 하는 선생님에게도 노트는 매우 중요하죠."
일본 학생들이 필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열심히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노트가 과거에 내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공부했으며, 또 어떤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등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철저하게 자기가 보기 좋도록 정리해놓기 때문에 원하는 내용이나 중요한 내용을 바로 찾을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여 필기를 함으로써 배운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일본 학생들은 노트 필기에 공을 들였다.
264
일본인들에게 노트는 곧 그들이 지향하는 공부 스타일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집약체이자, 주어진 지식을 최대한 빨리 익히고 습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도구다. 그러므로 일본 사회에서 기록 문화, 필기 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265
일본의 집착 문화를 가장 잘 엿볼 있는 것은 '마니아 문화'와 '오타쿠 문화'다. 많은 사람들이 '마니아'와 '오타쿠'를 같은 말로 착각하는데, 둘은 의미가 다르다.
마니아가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대상에 순수한 호기심을 갖고 파고드는 수집가적 기질이 강한 사람이라면, '당신, 댁'이라는 뜻을 가진 오타쿠는 이보다 한 단 계 더 나아가 그 대상을 완벽하게 알기위해 관련 사항까지 모조리 연구, 마니아의 전문가적인 시각을 초월하여 비평가적인 시각까지 지닌 사람을 이른다.
마니아와 오타쿠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사회에서 마니아와 오타쿠, 특히 오타쿠를 보는 시선이 결코 곱지 않지만, 자신들이 심취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을 능가하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마니아와 오타쿠들은 한편으론 일본 사회가 발전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도 많다.
마니아와 오타쿠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아낌없이 투자하는 대상은 실로 다양하다. 컴퓨터, 게임, 애완동물, 자동차, 전쟁용품, 히트상품, 문신, 가라오케, 스티커, 콘서트, 불꽃놀이, 티셔츠, 미니스커트, 인형, 맥주, 우표, 나비, 점술, 뷰티 등 마니아와 오타쿠들의 관심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일본의 명문대에서도 마니아와 오타쿠 문화를 엿볼 수 잇는 동아리들이 많다. 도쿄대에는 오리가미를 연구하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오리가미 동아리'를 비롯해 전국의 우동가게에서 파는 우동을 비롯해 편의점에서 파는 야키우동을 모두 시식 후 비교, 분석하는 것은 물론 학교 축제 때 직접 개발한 야키우동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우동부', 대회 출전을 목표로 로봇을 제작하고 공부하는 '로보테크', 경주용 자동차를 만드는 '포뮬러팩토리', 일본의 신화, 신사, 사원등을 연구하는 '신사,신도 연구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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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집착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장인을 존경하는 전통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설사 비천한 직업일지라도 조상이나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그 일에 치열하게 몰두하고 기량을 연마하는 장인정신을 높이 사는 전통이 있다. 일본인들이 2대, 3대, 4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것도 이러한 전통때문이다.
특유의 집착문화로 인해 경이로운 필기 문화를 이루어낸 일본,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일본의 필기 문화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필기식 공부는 스스로 답을 찾지 않고 주어진 지식을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수동적인 학습자세를 형성함으로써 일본인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억제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271
프랑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입시험 때 철학 시험을 보는 나라로, 바칼로레아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 철학 시험을 봐야 한다. 그러다보니 프랑스의 고3수험생들은 철학 시험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문제는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명백한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의 경계를 규정할 수 있는가?','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락되는가?' 와 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어떤 텍스트를 일방적으로 외워서는 답할 수 없다. 따라서 철학 시험에 대비하려면 많은 사람들고 ㅏ다양한 주제를 갖고 끊임없이 토론하며 사고으 ㅣ폭을 넓혀야 한다. 피에르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토론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니 피에르에게 이 노천카페는 바칼로레아의 '철학시험'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공부방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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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철학 선생님을 찾아 수업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처음 생각에 머물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철학은 자신의 생각에만 갇히지 않고 그 생각을 넘어서도록 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죠. 즉, 철학은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학문이기 때문에 결과보다 논증이 더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다' 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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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고3 철학 수업은 학생들을 세뇌시키는 목적이 아닙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모두 같은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대답이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습니다. 일관된 '예' 나 '아니오'가 아니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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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공부'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생각의 교류를 통해 사고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철학이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왜 프랑스 교육의 본질이 철학 교육이고, 프랑스인들이 철학 교육을 중시하는지 잘 알 수 있다.
279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과 교류하는 방법을 익히고, 이런 방법으로 모든 것을 배워나간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프랑스 교육과 이스라엘 유대인의 교육은 서로 닮은 듯하지만 다르다. 프랑스의 교육도, 이스라엘의 교육도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갖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학습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프랑스 교육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적극적인 '협력'의 공부라면 이스라엘의 교육은 진실을 향한 '도전'의 공부다.
281
사람과 사람의 만남, 생각과 생각의 만남, 즉 성공적인 교류를 지향하는 공부방식이 오늘날의 프랑스를 만들었다. 서로 의견을 소통하지 않고 더 나은 사고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인들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수준의 문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수준 높은 교류의 공부는 '살롱 문화'와 관련이 깊다. 흔히 살롱하면 술집, 다방등을 떠올리는데, 프랑스 문화에서 살롱은 단순한 사교장이나 오락장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에게 살롱은 사교의 장이자 대화의 장, 지적 토론의 장, 계층과 계층 간의 이해의 장이었다.
살롱은 남녀노소, 신분과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다. 정치가, 귀족, 성직자, 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 관리, 법률가, 상인, 학생, 군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로에 출입했는데, 대부분은 교양과 재치를 겸비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살롱에 들어오면 신분이나 지위,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한 관계 속에 누구나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살롱의 운영자가 대부분 여성이었기 때문에 대화와 토론의 주제가 여주인의 취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도 있었다. 살롱은 원래 무료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프랑스 여성들이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적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해 탄생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창기의 살롱은 매우 여성적인 성격을 띠엇다. 주로 중세 무용담이 섞인 연애담, 달콤한 소설, 문학작품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8세기 후반부터 점차 철학을 비롯해 정치, 사회 등 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벌어지면서 지성인들의 지적 교류의 장으로 변모했다.
살롱은 18세기 계몽사상을 비롯한 새로운 사상이 태어나는 산실이자 이를 전파하는 중개소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형성하는 분수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살롱은 프랑스 문화사와 지성사,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이 크다.
살롱은 성별이나 지위, 출신성분보다는 '재치, 언어 구사력, 바른 예절'을 미덕으로 삼는 비공식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모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생각과 사상을 교환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시선, 표정, 억양, 음색 등을 다양하고 실감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건전하고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더 효과적으로 상대와 지적 교류를 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공간 덕분에 프랑스는 화려한 토론 문화를 꽃 피울수 있었다. 이는 프랑스가 다른 서양 문화권의 나라들보다 수준 높은 교류의 공부가 발달한 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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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간형은 남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고 타인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해도 이를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표현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교만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타인과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 사회에서는 개인의 만족과 행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자신을 무조건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는 경향이 높다. 그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티븐 하이네 교수가 동,서양인들을 대상으로 긍정적, 부정적 피드백에 따른 동기부여 실험을 했을 당시, 동양인들은 저조한 성적의 원인을 자신의 노력과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서양인들을 시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291
릴리의 아버지는 항상 딸이 끊임없이 질문을 하도록 이끌었다. 릴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왜요?'라고 반문하는 게임을 즐겼는데, 이는 릴리의 아버지가 딸에게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다.
게임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릴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물으면 아버지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 릴리는 이 대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왜요?'라고 물었다. 릴리는 아버지가 그녀의 물음에 짜증을 낼 정도로 이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릴리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면 금방 잊어버리고, 세상을 알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 탐구심이 사라진다. 고 생각했다. 그는 유대 문화가 사물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것에서 번성했다고 믿고 있다.
295
배움을 무엇보다 중시한 유교는 지식에 대한 시각도 남달랐다. 지식이 세상 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자신보다 먼저 공부해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이를테면 스승이 가르치는 지식을 최대한 많이 습득하도록 장려했지만, 가르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의문을 제기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즉, 동양의 유고 문화는 잘모로는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을 벌이기보다 이것을 이해할 때까지 자신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96
유교 문화권에서 지식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지식, 세상에 있는 지식을 최대한 습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개인적인 견해로 사물을 바라보거나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암기했죠. 그런 학습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전투 능력'과 '논쟁 능력'을 남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삼을 만큼 질문을 매개로 한 토론과 논쟁의 공부 방식을 지향했다. 지식은 세상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을 했고, 이를 찾는 것이 공부의 목표였던 것이다. 다시 스티븐 하이네 교수의 설명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대표적인 학자인 소크라테스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을 한 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 것이었죠. 소크라테스가 이런 교육방식을 택했던 이유는 학생들 안에 이미 지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98
동양 사회에서 '나'라는 자아는 사회적 맥락 속에 놓여 있는,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동양인들은 개인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적고, 그만큼 개인의 가치에도 주목하지 않는다. 때문에 개인의 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식도 자기 내부가 아니라 세상 밖에 존재한다고 믿고, 이 지식을 최대한 많이 습득함으로써 더 나은 자기 자신의 변화를 꾀했다.
반면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 문화는 모든 사고, 행위의 기준이 자기 내부에 있다. 개인의 정체성도 동양처럼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 감정, 성격, 특기, 취미 등 개인의 본질적인 특성에 근거해 인식한다. 서양 문화에서 '나'는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 구별되는 최소의 독립적인 단위이자 모든 것의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성취, 성공의 목적이 개인의 만족, 행복, 발전 등에 있고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일치하지 않을 때 우선 순위를 자기 자신에게 둔다. 설령 그 사람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301
동양 문화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려 할 때 관찰 대상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 한다. 즉, 동양 문화는 '1인칭'이 아닌 '2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이렇듯 관찰 대상과 자아가 합일 상태가 '되는 것'을 지향하는 동양 문화는 자연계의 작은 부분을 통해 온 우주의 이치와 진리를 엿볼 수 있다는 독특한 우주관을 갖고 있다. 이는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 있고 전체 안에 부분이 들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동양 사회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유교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라고 강조하고, 온 우주의 진리도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어떤 대상과 자아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상태'인 물아일체를 지향하는 동양 문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의 온 우주의 이치와 진리를 담고 있는 하나의 소우주이기 때문이다. 동양 문화가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갈고닦는 수행을 통해 진리 탐구를 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명 서양 문화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려 할 때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접근하다. 서양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관찰하는 사람, 즉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서양 문화에서는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수많은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관찰하고 발견한 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반박하는 토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양 문화가 토론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고, 토론과 논쟁을 많이 할수록 진리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상과 하나가 됨으로써 이해하려는 동양 문화와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이해하려는 서양 문화는 진리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낳았다. 이런 차이는 전혀 다른 공부방식을 지향하게 만들었으니 ,결국 동-서양의 공부방식은 두 사회의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311
동양 사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중국 사회는 문화적 동질성이 높고, 90% 이상이 같은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긴밀한 상호 협조가 필요한 벼농사를 지었다. 때문에 사회적 결속력이 강하고, 공동체와 조화롭게 지내는 것에 큰 가치를 두었다. 이런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다른 사람과의 불협화음을 없애고 서로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반면 서양 사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사회는 주로 소규모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공동체와 얼마나 잘 지내느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해안가 근처에 위치하여 다른 종족이나 문화와 접하고 갈등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중요한 만큼 이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론과 논쟁이 발달했다. 자신의 생각이 진실이 되게 하려면 자신의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과 논쟁을 벌여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314
동양 문화권에서 성장한 학생들과 서양 문화권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동일한 문제를 주고 한 번은 말을 하면서 풀게 하고, 또 한 번은 침묵하며 풀게 했다. 그 결과 동양 학생들은 말을 하면서 문제를 풀 때보다 아무 말 없이 풀 때 좋은 결과가 나왔고 서양 학생들은 정반대였다. 동양인들에게는 말이 사고력을 저해하는 작용을 했고, 서양인에게는 말이 사고력을 촉진하는 작용을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언어가 동양 문화권에서는 단순한 의미 전달을 위한 수단인 반면 서양 문화권에서는 생각의 도구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서양인들은 동양인들과 달리 사고 작용과 언어 작용이 동시에 일어난다. 즉, 서양인들에게 사고는 곧 언어인 셈이다.
316
따라서 어떤 공부방식이 옳다 그르다는 논할 수 없고, 각각 경쟁력과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동양의 암기를 통한 공부는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높은 학업성취를 이룰 수 있지만, 비판적 사고 없이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에 창의성이나 상상력 등이 결여되기 쉽다. 반면 서양의 질문을 통한 공부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과 논쟁을 벌이기 때문에 창의성, 상상력 등을 향상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암기의 공부만큼 빠른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한 가지 공부방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에 맞도록 공부방식에 변화를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리 장점이 많은 공부방식이라도 상황이나 환경에 맞지 않으면 좋은 공부법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의 공부방식이 여러모로 적절한지 파악한 다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공부해야 만족할 만한 학업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자.
323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토론식 수업은 일명 '하크니스 테이블'이라고 불리는 큰 원형 탁자에서 이루어진다. 하크니스 테이블은 미국의 석유재벌이자 자선 사업가인 에드워드 하크니스의 이름 딴 명칭으로 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원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수업방식은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931년 에드워드 하크니스가 이 학교에 찾아와 새로운 방식의 교육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학교 관계자들은 여러 아이디어를 냈고, 그 가운데 뽑힌 것이 큰 원형 탁자에서 교사와 12명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수업을 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식이 채택된 이유는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상대의 얼굴을 보며 토론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질문과 의견, 아이디어가 동등하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하크니스는 약속대로 거액의 돈을 기부했다.
드라마틴하게 수업방식을 바꾼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덕분에 평범한 학교에서 세계 최고의 명문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 학교의 수업방식을 도입하면서 하크니스 테이블은 토론식 수업의 상징이자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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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크니스 토론을 하려면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해요. 준비를 하지 않으면 수업시간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나는 이 텍스트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의견을 내놓을게 없다고 하면 수업이 진전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전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수업 시간에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하면서 각자의 호기심을 풀고 만족감을 느낍니다."
"사고하라! 토론하라! 그리고 질문하고 분석하라!"
"한국식 교육이 확실히 효율적이긴 해요. 선생님이 앞에서 무조건 설명을 해주시니까 지식 습득도 훨씬 빠르고, 노트에 받아 적기만 하면 나중에 집에 가서 혼자 공부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배움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자기 스스로 단계를 밟아가면서 여기서는 10분간 고민을 하고, 또 여기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어 질문을 해서 도움을 받는 과정들을 거쳐야 그 지식이 진짜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같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 방식으로 습득한 지식이 오래 기억되고 저의 일부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옥스포드 대학..
"저는 면접을 여러 차례 보았어요. 저는 정치학, 경제학, 철학을 전공하려 했고, 각 전공마다 면접이 있었으니까요. 정치학과 경제학 면접은 특별한 게 없었는데, 철학 면접은 흥미롭고 좀 어려웠죠. 총 두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하나는 '영국에는 7명당 1대 꼴로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윤리적 관점에서 옳지 않다고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였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을 복제할 수 있다면 하겠는가?' 였습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제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고, 면접관들은 수시로 제 주장을 반박하는 질문을 했죠. 그래서 제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려고 노력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의 어원인 '유니버시타스(universitas)'의 의미가 '배우고 가르치는 자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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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교습 방식은 질문을 매개로 토론과 논쟁을 벌여 답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진리를 깨우치게 한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에서 기인하며. 옥스퍼드대에는 창립 때부터 교수와 학생 사이의 토론 문화, 발표 문화가 있었고, 그것이 수세기를 거쳐 지금의 개인 교습을 ㅗ발전해왔다. 그는 이런 특별한 공부방식을 통해 옥스퍼드대가 세계 최고의 지성을 길러내는 대학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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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는 매일 저녁 모든 학생들이 함께 모여 식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 이유는 나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과 지적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 옆에 앉은 학생이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경제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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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미디어랩
"독자적으로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생각을 교환하며 발전시키죠. 생각을 교환하고 피드백을 받지 않고서는 어려워요 우리 팀 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팀과의 교류가 없었다면 우리 팀 프로젝트의 반 이상은 시작도 못했을 겁니다."
"저 혼자 일방적으로 배우고 소유한 지식은 결국 제 것이 되지 못해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자기 것이 디죠. 이것은 어떤 학자가 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푸른 유리를 푸르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리가 여러 가지 색을 통과시킬 때 다른 색은 전부 흡수하고 푸른색만 내뱉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유리가 푸르다고 한느 것이죠. 지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자기가 진짜 갖고 있고 이해한 지식은 우리가 흡수하고 소비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를 투과시켜서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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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대학 학장
"사회의 진보는 사상을 가진 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그 사상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발전해갑니다. 저는 사고, 학업활동, 학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두뇌에 쌓이는 개인적인 지식은 쉽게 휘발되지만, 여러 사람의 두뇌가 생산하는 사고, 사상은 공유할수록 고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습 형태란 일정 부분 개인적으로 학습하면서 그런 개인이 모여 그들이 성취한 것을 토론하는 활동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대학은 학생들이 각자 배운 것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도 잘 알려지고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이 많이 있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집에도 책꽂이를 뒤적여 보면 그의 작품 <상실의 시대>가 꽂혀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서재에는 그의 책이 <상실의 시대>,<1Q84 1,2,3 권><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렇게 5권이 있다. <상실의 시대>는 예전에 누나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 같다. 그 책이 돌고 돌아 어느 덧 내 방 서재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나 역시 이 책이 워낙 유명해서 몇 번이고 읽어보려 시도했지만 여러 번 실패하고 여전히 지금도 읽지 못하고 있다. 아마 저런 류의 책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책은 워낙 많은 팬을 가지고 있기에 책이 나오면 벌써 서평들이 수 십, 수 백개가 금새 쌓인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 나는 이 책이 내가 접한 하루키의 두번째 책이다. <!Q84> 이후 두번째 작품이다. 그러기에 하루키가 어떤 작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1Q84>와 비교했을 때 유사한 점이 많이 보였다.
하루키의 취향을 잘은 모르겠으나 음악이 나오고, 성적인 장면이 등장하고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와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방식 같은 것이 내가 읽은 두 작품에서 비슷한 형식을 보이는 것 같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읽으면서 1Q84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는 독자가 스스로 호흡을 끊지 못하도록 강한 구성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나 역시 이 책을 잡자마자 읽어버렸다. 그 궁금증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쓰쿠루의 친구들이 왜 그와 갑자기 연락을 끊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한 장 한 장 넘겼다. 이게 그의 힘이다.
지난 번에 라디오에서 하루키의 첫 문장은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다. 라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몇 권 안되는 하루키의 책의 첫 문장을 살펴 보았다.
<상실의 시대>
그때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보잉 747기의 한 좌석에 앉아 있었다.
<1Q84>
택시 라디오에서는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책을 읽을 때 처음 시작부터 나로 하여금 어떤 실마리를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로 하여금 이 길, 저 길을 한 번씩 살펴보라는 듯이 기회를 주는 듯 하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나의 지난 생채기를 다시 돌아본다.
누군가 만약 나에게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 다면..
이제 상처 입기 쉬운 순진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자립한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
이 대목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왠지 이 구절이 나에게 들어왔다.
하루키의 글이 재미있어진다. 왠지 그의 책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할 것 같다.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꿈속에서 그는 한 여성을 무엇보다 간절히 갈구했다.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녀는 그냥 존재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녀는 육체와 마음을 분리할 수 있다.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어느 쪽이든 하나만 원한다면 당신에게 내줄 수 있다고 그녀는 쓰쿠루에게 말한다. 육체냐 마음이나. 그렇지만 두 가지를 모두 손에 넣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만 해. 다른 하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어야 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쓰쿠루가 원하는 것은 그녀의 모든 것이다. 어느 반쪽을 누군가 다른 남자에게 내줄 수는 없다. 그것은 그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럴 바엔 어느 쪽도 필요 없어. 그는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세상에는 현악 사중주곡을 만드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상추나 토마토를 재배하는 인간도 있어. 역을 만드는 인간도 몇 명 정도는 필요하지.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 만드는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정도는 아니야. 그저 한정된 대상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야."
"실례일지는 몰라도 한정된 관심을 가질 대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라도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성취 아닌가요."
"사고란 수염 같은 것이다. 성장하기 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가 한 말 같은데." 쓰쿠루가 말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볼테르입니다."
그녀의 집 거실에 있던 야마하의 그랜드 피아노, 시로의 꼼꼼한 성격에 맞게 늘 조율이 잘되어 있었다. 티 하나 없이 맑게 윤기를 띤 표면에는 손가락 자국도 없었다. 창으로 비쳐 드는 오후의 햇살. 정원의 사이프러스가 늘어뜨리는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레이스 커튼. 테이블 위의 찻잔. 뒤로 단정하게 묶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과 악보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길, 건반 위에 놓인 열 개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 페달을 밝는 두 발은 평상시 시로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 될 만큼 힘차면서도 적확했다. 그리고 종아리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처럼 하얗고 매끈했다. 연주를 부탁하면 그녀는 곧잘 그 곡을 쳤다.[르 말 뒤 페이]. 전원 풍경이 마음에 불러일이키는 영문 모를 슬픔. 향수 또는 멜랑콜리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 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돼요.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이중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예요."
바그너의 반지
이제 상처 입기 쉬운 순진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자립한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
거의 1분 간격으로 다가와서는 수많은 사람을 토해 내고 또한 수많은 사람을 황급히 삼키고 사라져가는 녹색 차량의 동체들을 바라보며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기억을 감출 수는 있어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어."
쓰쿠루의 가슴이 상처를 남겼고, 그 생채기는 지금도 남아 있다.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 법이죠."
두 사람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언어는 거기서 아무런 힘도 없었다. 움직임을 멈춰 버린 무용수들처럼 그들은 오로지 고요 속에서 끌어안은 채 시간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마도 미래가 어느 정도 뒤섞인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몸 사이에는 어떤 틈도 없었고, 그녀의 따스한 숨결은 규칙적인 간격으로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쓰쿠루는 눈을 감고 음악의 울림에 몸을 맡긴체 에리의 심장이 새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방파제에 묶인 작은 보트가 탁,탁, 울리는 소리와 겹쳤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목판인쇄 기술과 금속세공 기술, 와인프레스 기술을 적절하게 섞어서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위대한 혁신을 이뤄냈다.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사실 시카고의 도축장 시스템을 모방한 것이다. 다만 도축장에서는 작업자들이 손으로 소를 밀었지만 포드의 공장에서는 동력기를 달아 자동으로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게 했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일본의 밥솥 제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애플 노트북의 전원 어댑터인 맥세이프를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서 브룩이 1562년에 쓴 '로메우스와 줄리에트의 비극적 역사'라는 3020행의 짧은 서사시를 각색하고 살을 입혀 불후의 명작으로 만든 것이다. 혁신은 모방에서 출발한다. 다만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자신이 새롭게 해석한 것을 반영시켜야 한다. 구텐베르크도 이미 개발된 기술들의 원리를 새로운 맥락에서 잘 조합하고 해석해서 인쇄 효윻을 대폭 향상 시킨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를 창조하려고 머리를 짜낼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알 수 있는 것에 창조적 아이디어의 원천이 숨어있다. 창조형 모방의 원리를 이해하면 혁신은 한결 친근하게 우리 곁에 다가온다. 따라서 모방과 창조를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이다. 창조는 모방에서 출발한다. 모방없이 창조는 불가능하다. 이미 누군가가가 만들어놓은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러니 모방과 창조는 사실상 같은 활동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려시대 때 직지심체요절을 만들기 위해 이미 쿠텐베르크보다 먼저 금속활자 기술이 개발됐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역사를 바?꾸지 못했는데 쿠텐베르그의 금속활자는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와인 프레스의 모방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인쇄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용한 금속활자는 활자 위에 먹물을 묻히고 종이를 댄 다음 솜방망이로 탁탁 두드려 찍어내는 형태였기 때문에 단기간에 대량생산을 하기에는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기술은 와인 프레스의 모방을 통해 유성잉크를 ㅜ이에서 아래로 압착해 훨씬 빠르게 인쇄물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와인 프레스가 압착하는 대상이 포도가 아니라 종이와 잉크로 바뀌었던게 역사를 바꾼 원동력이 된 셈이다.
쿠텐베르크는 과거에 없던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 아니다. 이미 개발된 기술들의 '원리'를 '새로운 맥락'에서 잘 조합하고 모방해 인쇄 효율을 대폭 향상시킨 기술을 개발해 냈다. 그는 새로운 창의적 기술을 개발했다기보다 목판 인쇄와 금속 세공 기술, 와인 프레스 기술을 적절히 조합해 인쇄라는 새로운 맥락에서 조합하면서 위대한 혁신을 이뤄냈다고 볼 수 있다.
포드의 조력자였던 윌리엄 클랜은 시카고의 도축장에서 생산 효율성을 극도로 향상시킨 컨베이어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는 이 기술을 자동차 생산 과정에 도입하면 마찬가지로 놀라운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를 전해들은 포드는 6개월 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공장을 가동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도축장에서는 작업자들이 손으로 소를 밀었는데 포드의 공장에서는 동력기를 달아 자동으로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인다는 것뿐이었ㄷ. 실제로 분업으로 일하는 방식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결국 산업사회의 혁명을 가져온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도 도축장의 '온고를 자동차 생산의 지신한 더분에 만들어 진 것이다.
모방은 베끼기가 아니 온고이다. 모방의 첫째 정의인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에서 본받음이라는 것이 본질이 아닐까? 베끼기가 아닌 본받음은 자신만의 창조를 요구한다.
프로세스란 쉽게 생각하면, 여러분이 흔히 윈도우즈에서 실행 중인 파워포인트, MP3 플레이어, 아래아 한글 등 이러한한 개개의 프로그램을 일컫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프로세스가 하드디스크상에 있는 이러한 프로그램 이미지가 아니라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일컫는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프로세스란 하나의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단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죠. 우선 실행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코드와 데이터가 있는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이미지는 하드디스크와 같은 보조기억장체에 있는데,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위해선 이러한 이미지가 주기억 장치, 즉 메모리로 로드되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똑같은 파워 포인트 이미지를 두 번 실행하면, 하드디스상에 있는 파워 포인트라는 프로그램 이미지는 하나뿐이지만, 실제 메모리상에는 두 개의 파워 포인트 이미지가 로드되어 있고, 각각의 이미지는 서로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서로 다른 내용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결국 파워포인트라는 이미지로부터 두 개의 독립적인 프로세스가 생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각각의 프로세스는 비록 같은 이미지에서 실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서로 독립적인 로드 과정을 거쳐서 메모리에 적재되고 또 서로 다른 메모리 공간에 배치되어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메모리를 할당받아 사용합니다.
이를 좀 더 일반적으로 표현하자면, 프로세스란 프로그램이 수행되기 위한 자원(Resource) 소유의 단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원이라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메모리죠. 각 프로세스는 하나의 독립된 프로그램으로서 동작하기 위해 자신만의 메모리를 확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