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서점에서 살짝 빛바래고 표지가 살짝 얼룩졌지만 '구본형'이라는 이름 하나로 선택한 책이었다.
이 책의 부제에는 '1시간에 읽는 구본형의 자아경영' 이라고 적혀 있다.
150 쪽 정도의 얇은 책이지만 한번 쯤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다는 차원에서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아내의 핸드폰을 보았다. 내가 '남의 편'으로 저장이 되어있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남의 편이라고 저장이 되어 있어? 이거 아니었잖아."
아내 曰, '요새 자기가 너무 예민하게 굴어서 속상해서 그렇게 저장했어."
나도 조금 느낀 부분이다. 최근에 이상하게 살짝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밖에서는 딱히 풀 때도 없고, 혼자 시간을 가지려 해도 쉽지 않고 하다보니 가장 편한 아내에게 싫은 소리, 짜증을 유난히 부렸던 거 같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역설적이게도 그러다보니 가장 소홀해진다.
이렇게 예민해진 시점에서 무언가 조금 나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차분하고 조용히 생각하기, 그러면서 풀리지 않은 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이게 내 방식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생각의 정리 시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고 우연찮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최근 몇 년 간은 정말 '책'에 흠뻑 취해 있었다.
책이라는 것은 보통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 이지만, 얼마 동안은 그것 자체가 나에게는 목적이 되어 버렸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회사에서는 '책'을 읽는 이미지로 서서히 자리잡히고, 싫지는 않지만 단지 그것으로 표현되는 내 모습이 싫어졌고, 내가 만들어낸 틀 속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아왔다.
이제는 다시 새롭게 생각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예전부터 느낀 것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여행', '독서'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고, 방안 구석에서 책을 읽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이제는 조금 더 다양하게 나를 풀어놓아보려 한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어보기도 하고, 낯설은 거리를 걸어다니며 그 낯설음에 어색해보기도 하며, 인생과 인생의 만남이라는 다른 사람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보고 싶다.
책을 통해 배우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지는 않게 할 것이다.
여전히 꾸준히 읽어나갈 테지만, 행동으로 바뀌지 않고 단순히 내 고집을 유지시키기 위한 책은 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렇게 차분히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조금씩 생각이 정리가 된다. 구본형 작가의 책은 이렇게 한 번씩 나를 돌아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찌보면 흔히들 말하는 자기개발서 같지만 작고하신 구본형 작가의 책에서는 그분의 철학이 느껴지고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불편하지 않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의 마지막으로 추석이 지난 다음 날 새벽 글을 마친다.
##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 때, 그리하여 한없이 처량하고 무기력해질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충고를 진심으로 따라보는 것도 좋다.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둘째,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겨라.
넷째, 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마라.
늙은이의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다섯째,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여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늙어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덟째,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 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다가 분노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아홉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의 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로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다.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좋은 인생 아닌가. 마지막 순간에 살 한 점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닳고 닳은 뼈와 질긴 가죽 하나 달랑 남기고, 새털처럼 가볍게, 바람에 날리듯,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으면 참 괜찮은 인생 아닌가. 먼 길을 가야 하는 저승사자도 그 그벼움에 짐을 덜어 고마울 것이다.
여기 깨끗한 유리잔이 있다.
반쯤 물이 채워져 있다.
이 물은 이미 누군가가 따라놓았다.
누군지 이름이 분명치는 않다.
때로는 '유전적 재능'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동안 받아온 교육'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혹은 '개인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물론 '부모나 귀인의 도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엇이라 불리든 인생의 반 정도를 채워놓은 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이미 내 인생의 반을 좌우했다.
<자신의 이중성을 칭찬하라>
# 이중성을 다룰 때 조심해야 할 몇가지 원칙
- 이중성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 다른 사람과 팀을 이루어야 한다.
: 파트너십의 기본 바탕은 신뢰다. 신뢰가 없으면 파트너십은 위험하다.
: 파트너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
: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변화의 시대에 경험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과 성공과 오만은 서로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이제 성공에서 바울 것은 없다고 믿어라. 미래는 늘 새롭게 쓰이는 것이다. 새로움이 미래의 특성이다.
미래를 선점하는 기회는 새로운 길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차지가 될 수 밖에 없다. 과거의 성공을 묻어라.
그래야 미래로 가는 길을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
# 가정과 일 중 양자 택일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이제는 그 이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
<창조저 괴짜가 돼라>
# 괴짜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다.
해답은 늘 적절한 질문이 가능했을 때 찾을 수 있다. 괴짜는 늘 먼저 질문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고는 절대 하늘을 날 수 없다.
# 괴짜들은 진보를 믿는다. 나아가 혁명을 믿는다.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풀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다.
# 경험과 지식을 새롭게 연결하라. 창의력이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자연은 이미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다. 창의력은 언뜻 봐서는 연결되지 않는 것들을 결합시키는 능력이다.
이것은 논리의 일반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상식의 궤멸 속에서 새로운 탄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 괴짜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공은 환경이 변하면 더 이상 현명한 교훈이 되지 못하지만 실패는 늘 새로운 답을 찾아가게 한다. 따라서 이들은 실패를 숨기고 싶은 것, 불쾌한 것,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 피하고 싶은 것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 괴짜는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만이 아니다. 괴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에서 괴짜가 탄생한다.
## 새로운 리더십의 원천은 명령과 통제가 아니라 격려와 지원이다.
<함께 춤추는 여인에게 배워라>
# 여성은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느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표정을 읽고 웅얼거림의 톤을 느끼고 울음 속에 묻어나는 아이의 요구를 알아낸다.
# 여자들은 단숨에 당신을 읽어낼 수 있다. 옷의 주름, 목소리의 울림, 발걸음 소리, 손가락의 움직임 속에 포함된 미세한 불안, 눈꺼풀의 미묘한 떨림, 혹은 입술에 일어난 가벼운 경련이 주는 긴장감의 정도를 한꺼번에 읽어낸다.
# 여성은 정신적으로 유연하다.
남성들이 추상적 개념이나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논리구조 속에 있다면 여자는 훨씬 더 유연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
더 많은 예외적인 예와 개인적 경험, 즉 전후좌우 관계를 둘어보기를 좋아한다.
## 여성의 사고 과정 (thinking process)이 남성과 다르다. 남자들은 한 번에 하나의 일에 몰두해 그 일을 처리하는 반면, 여자들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펼쳐놓고 한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고 tv나 라디오를 듣는다. 그리고 아이들이나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은 거미집 사고(web thinking)라고 불러 남성적 사고의 특징인 단계별 사고(step thinking)와 구별한다.
거미줄 사고의 가장 큰 장점은 전체를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정보를 한꺼번에 감지하고 해석해 본능적인 '감'을 가지게 해준다.
# 여성은 꿈을 꾼다. 상상력 역시 여성적 특성인 거미집 사고의 도움에 크게 의존한다. 상상력이란 머리 속에 깊이 저장된 정보를 다양한 방법으로 재결합해서 감정적 숨결을 넣어 소생시키는 것이다.
# 여성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성은 수평적 관계 지향적이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독단과 서열추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 이제 인간이 가장 중요한 기업 자산이다. 이때 구성원의 열정과 믿음, 애정과 헌신을 이끌어내려면 서로에게 중요한 거슬 공감해주는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 전문가는 명령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구성원 사이의 인간적인 네트워크를 원한다. 이때 수평적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재능이 중요하다. 여성은 수직적 지위가 주는 힘에 대한 매력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힘으로 인식한다. 수평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파트너십은 직원과 고객을 참여시켜 굳건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웃어라, 그리고 또 웃어라>
# 거리낌 없는 웃음은 세상 속에 자신을 내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벽을 허물고 자신을 열어 보이는 타인과의 긍정적 교류를 의미한다. 소설가이며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는 웃음을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을 털어놓은 소통의 상태'라고 정의했다. 그러므로 웃을 수 없다는 것은 자기 안에 격리되어 있다는 것이며, 폐쇄된 자아의 여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다. 일상의 기분을 고양시키고 활력을 불어넣는다. 창조성을 높여준다. 기억하자. 행복은 행복한 사람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없는 행복한 사회란 없다. 당연히 행복한 직원이 없는 행복한 고객도 없다.
## 농담같은 몇가지 법칙
코박의 수수께기 - 잘못 돌린 전화번호는 통화중이 없다.
호로위츠의 법칙 - 라디오를 틀면 좋아하는 곡의 마지막이 흐른다.
존과 마르타의 미용실 법칙 - 내일 머리를 자르려고 마음먹고 있으면 누가 꼭 머리 모양이 좋다고 말한다.
프랭크의 전화 법칙 - 펜이 있으면 메모지가 없고, 메모지가 있으면 펜이 없다. 둘 다 있으면 적을 내용이 없다.
편지의 법칙 - 그럴듯한 문구는 편지를 봉한 후에 생각난다.
미퀘트의 목수 법칙 - 찾지 못했던 공구는 새 것을 구입하면 나타난다.
## 당신은 어떤 상사가 되고 싶은가? 잘 웃는 웃음은 신선하고 상큼하다. 웃음에 관대해져라. 그러니 어깨에 힘주고 목소리를 낮추지 마라. 무능함의 표본이다.
<쓸데 없는 약속을 버려라>
#이탈리아의 작가 조지오 망가넬리는 "우리는 무익한 것에서 생명을 얻고 유익한 일을 하면서 탈진한다. 유익한 일로 말미암아 파멸하고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불행은 조용히 혼자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역설적으로 가장 한가로운 사람은 시간을 절대로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은 시간을 그대로 놓아둔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선물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조각조각 분해도니 시각의 조각을 먼저 어딘가에 배타적으로 묶어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 시간과 친해지는 방법은 쓸데없이 약속하지 않는 것이다.
# 약속 장소를 내 취향으로 잡아라
# 벨이 울릴 때마다 전화기를 들지 말라.
# 기다림을 배워라.
-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다림은 죽은 시간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특별하고 매력적인 시간이다. 모든 농부는 자연스럽게 익은 사과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름 태양을 흠뻑 담은 달콤한 과일은 모두 기다림이 선사한 것이다. 기다림은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러운 창조적 해동이다. 기다림은 맛을 깊게 한다.
## 직장의 구성원들이 서로 넉넉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관리자들이 도와주어야 한다. 서로의 시간을 아껴줘야 한다.
## 직원들에게 쓸데 없는 일을 시키지 마라.
##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에 집중하라.
혁명의 시대에는 있는 것을 개선하는 점진적 진보에 바탕을 둔 효율성보다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성이 중요하다.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 그것이 시간을 친구로 만드는 법이다.
## 이제 회사의 목적에 맞추어 개인을 무개성적인 자원으로 마음대로 배분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개인의 요구와 정체성이 회사의 목적에 맞게 균형 잡힌 인사 정책을 누가 먼저 만들어내는 가가 인재의 계발과 유지의 성패를 좌우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스물네 권의 책을 읽어라>
# 잘못 고른 책에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니 끝까지 다 봐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덮어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두어 페이지 다시 훑어보고 그래도 마음을 휘감지 못하면 버려라. 쓰레기는 공간을 차지한다. 마음의 공간을 비우지 못하면 좋은 것이 들어와 머물 수 없다. 그러므로 쓰레기는 버리는 것이 좋다.
# 천천히 읽어라. 책은 음식과 같다. 천천히 씹으면 그 맛이 오래가지만 대강 씹어 삼키면 끝내 그 맛을 알 수 없다. 공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라고 말했다.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다시 읽는 것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다. 명심하라. 생각할 것이 없는 책은 책이 아니다. 그대의 시간을 죽이고 돈을 죽인다. 가장 나쁜 투자다.
## 좋은 책을 읽는 때는 반드시 그 속에 들어가 한바탕 맹렬히 뒤섞여야 한다. 마치 앞뒤의 글이 막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 투철해져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공부할 양은 적게 하고 공력은 많이 기울여야 한다. 물을 잘 주는 농부는 채소와 과일 하나하나에 물을 준다. 물을 잘 주지 못하는 농부는 급하게 바쁘게 일을 처리한다. 물지게의 물을 지고 와서 농장의 모든 채소에 한꺼번에 물을 준다. 남들은 그가 농장을 가꾸는 것으로 볼 테지만 작물은 충분히 적셔진 적이 없다. 우리의 정신도 이와 같다.
# 글을 볼 때 이해한 곳에서 다시 읽어나가면 더욱 오묘해진다. 작가의 언어는 꽃밭과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두 좋게 보이지만, 분명하게 좋은 것은 가까이 다가가서 봐야 보인다. 공부는 자세히 보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에 지름길은 없다. 지름길은 사람을 속이는 깊은 구덩이다. 껍질을 벗겨야 살이 보이고 살을 한 겹 다시 벗겨내야 비로소 뼈가 보인다. 뼈를 깎아내야 비로소 골수가 보인다.
# 사람들은 책을 볼 때 먼저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저자의 말을 끌어다가 자신의 생각을 맞추어넣는다. 이것은 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생각을 미루어 넓히는 것이다. 한 걸음 물러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을 지어 내지 말고 저자의 말을 앞에 놓고 그들의 생각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는 것이다. 자싡의 생각을 저자의 뜻에 꿰어맞추지 말고 저자의 뜻을 붙잡으려 해야 한다. 저자의 생각을 알면 크게 진보할 수 있다. 이것이 자기를 없애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다.
# 향기를 선사하는 책은 다 읽고 버리는 책이 아니다. 평생을 곁에 두고 봐야 한다. 좋은 책이란 마음이 떨어진 낙엽처럼 바스러질 때, 혹은 바람에 날려 어디로 날아갔는지조차 알지 못할 때 몇 페이지 펼쳐보면 청량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책은 채기라기보다는 향기다.
<놀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
#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자유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아주 가느다란 실줄기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칼 만하임과 달라이 라마 같은 이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생명과 자유에 대한 개개인의 치열한 내적 성찰과 변화없이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어렵고 먼 길이지만 유일한 길이다.
# 평화는 무엇보다 모든 생명체들이 그들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평화는 자기 자신을 찾아 돌아가는 조용하지만 확고한 인내와 확신이다. 평화는 한 번도 갈길을 의심하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 같다.
#걷는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육체가 허용하는 적절한 속도로 걸을 때 우리의 정신은 편안하다. 가장 생각하기 좋은 속도다.
#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경제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느림을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난한 시대로의 퇴보, 하이퍼 계급 안에서 유행하는 자기 콘트롤의 미학' 이라고 말한다.
#커다란 톱닙퀴에 물린 작은 톱니바퀴에게 느림이란 없다. 느림은 큰 톱니바퀴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효율성이라는 덫에 걸린 사람들에게 느림이란 가당찮은 것이다. 오직 톱니바퀴에서 풀려나 자신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느림은 창조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휴가조차도 전투적으로 보내야 하는, 짧은 휴가밖에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느림은 너무도 멀리 있다.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도 느림의 혜택을 즐길 수 있기 하는 거의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다. 이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방법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자세가 중요하다. 작은 습관을 만들어서 그 습관이 일상의 일부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자. 새로 만들어낸 습관이란 변화 속에서 그 변화를 지속하게 하는 관성이니까
#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함으로 절정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지만, 지도를 펴놓고 계획을 잡는 것, 그리고 기차를 타고, 혹은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배낭을 메고 걷는 것 역시 여행의 진미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혹은 일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순간 우리는 가벼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라.
#산은 운동도 피크닉의 대상도 아니다. 산은 산 그대로다. 거대하고 육중한 생명 그 자체, 바로 자연인 것이다. 산게 가는 것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이 되는 것이다. 오솔길을 돌아 그 푸른 숲 속으로 들며 푸르름의 일부가 되어 묻히는 것이 산에 드는 법이다. 돌아오는 길에 몸과 마음에 그 푸른 산 내음을 조금 담아가지고 속세로 나오는 것이 바로 산행이다. 다친 늑대가 호젓한 곳에서 상처를 치료하듯, 우리도 바스러진 마음을 들고 들어가 잠시 호젓한 곳에서 그 푸르름으로 적셔 나오는 것이 바로 산인 것이다.
# 어디를 걷든 걸을 때는 걱정거리를 놓아두고 가라. 고민은 책상과 서류 위에, 돈을 내라는 고지서는 탁상 어디엔가 놓아두고 밖으로 나와 걸어라. 며칠 안에 질 것이지만 오늘 피어 있는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자신을 움츠리지 않는다. 감사하라, 그대가 이 세상에 있음에 대해. 오늘 세상을 등져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날임을 또한 생각하라.
<아빠 앞에 '부자' '가난한' 이라는 말을 달지 말라>
#1998년 발행된 미국의 비영리 부문에 관한 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는 1백만 개가 넘는 제3부문의 조직이 있으며, 연간 예산은 6천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미국 노동인구의 7%가 이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1995년에 9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일주일에 평균 네 시간 이상을 여기서 자원봉사를 했으며, 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2천억 달러를 넘어선다고 한다. 미국의 경제적 번영은 인생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제3부문의 강한 문화공동체가 만들어낸 사회적 신뢰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마크 트웨인이 탁월한 것은 바로 그 미국의 핵심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었던 점에 있다. 그의 말을 빌려보자.
"어떤 사람은 지위를 숭배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영웅을 숭배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권력을 좇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을 숭배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인 사실 하나는 한결같이 모두 돈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우선 불신의 정체를 이해하라. 불신감은 삶에 실망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불이익을 당해본 사람이 터득하게 된 일종의 지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세네카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기만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인생과 인생이 만나는 것이다.
<남김없이 쓰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소모하는 것이다. 긴 여행 끝에 평평한 등을 가진 낙타처럼 모두 쓰고 가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늙고 추레한 껍데기 밖에 없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 40km가 넘는 긴 마라톤 경기의 결승점을 통과한 선수에게 아직도 뛸 힘이 남아 있다면 경기에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쓰고 남겨놓은 것 없이 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주세페 베르디는 1813년에 태어났는데, 여든한 살이 된 1893년에 마지막 오페라인 <팔스타프>를 작곡했다. 이미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 나이에 아직도 힘든 오페라를 작곡하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가 베르디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평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한 번 더 도전해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베르디는 팔스타프에게 또 다른 생명을 주었다. 인생에 대한 열정과 활기로 가득 찬 오페라 <팔스타프>를 만들어낸 것이다. 열여덟 살의 드러커는 이 강렬한 오페라가 어떻게 여든 살 노인의 작품일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가 그도 베르디처럼 살게 되었다. 베르디나 드러커는 바로 팔스타프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기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타다 꺼진 불꽃처럼 하루를 살지만 늘 아쉬움이 남게 된다는 것은 이해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태어난 대로 생긴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자신을 바꾸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장 비효과적인 방법이다. 성공의 가능성이 별로 없다.
#화가 장욱진의 말을 기억하라.
"나는 내 뜻과 같지 않게 사는 것은 질색이다. 나를 잃어버리고 남을 살아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자기 마음대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참된 자기 것을 가질 수 있기에."
#생긴 대로 산다는 것은 게으르게 산다는 뜻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라. 자신을 계발한다는 것은 자기의 강점을 발견하고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고난 재능도 그대로 방치하면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쓸 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이것은 유한한 자원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법이 아니다. 약점을 보완하면 기껏해야 평균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강점을 강화하면 특정 분야에서 비범한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ㅓ.
# 가지고 있는 자원의 70~90% 정도는 자신의 강점에 선택적으로 집중 투자해야 한다.
#자신이 잘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 이것은 강점의 계발과 더불어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방법이다. 이것은 자기 스타일에 맞게 배우고 자기의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가치고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라.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배우자에게 약간의 재산을 남겨두는 것은 위안이 된다. 피곤한 몸을 쉬며 아이들을 키웠던 오래된 집 한 채 정도 남기는 것은 좋다. 그리고 약간의 저축을 남기는 것도 좋다. 그보다 더 많이 남기기 위해 부산을 떨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하고 싶은 일에 인생을 다 걸고 살다 죽으면 된다. 그리하여 초라하고 노쇠한, 아까울 것 없는 껍질을 벗고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별빛 하나로 밤하늘에 달리면 된다.
##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 때, 그리하여 한없이 처량하고 무기력해질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충고를 진심으로 따라보는 것도 좋다.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둘째,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겨라.
넷째, 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마라.
늙은이의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다섯째,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여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늙어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덟째,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 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다가 분노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아홉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의 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로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다.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좋은 인생 아닌가. 마지막 순간에 살 한 점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닳고 닳은 뼈와 질긴 가죽 하나 달랑 남기고, 새털처럼 가볍게, 바람에 날리듯,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으면 참 괜찮은 인생 아닌가. 먼 길을 가야 하는 저승사자도 그 그벼움에 짐을 덜어 고마울 것이다.
오랜만에 그래픽 노블을 한 편 읽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읽어오던 그런 만화책과는 사뭇 다르다.
300쪽에 달하는 분량, 만화치고는 너무나 많은 글, 두꺼운 하드커버에 빨강, 검정, 회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책 표지에 냉소적이면서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듯한 쥐 두 마리가 등장하는 책이다. 그리고 다루는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들의 모습과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지를 보여준 끔찍한 아우슈비츠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아트 슈피겔만(Art Spielgelman)의 『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계속 맴돌았다. 하나는 책의 형식적인 측면과 그래픽 노블이라는 점, 역시 만화치고는 글의 양이 상당했던 스페인내전을 다룬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이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은 작가 자신이 겪은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을 읽고 한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인간이란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쥐』는 『이것이 인간인가』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내용의 유사성과 느껴지는 잔혹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나역시 그런 인간이라는 불안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쥐』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이 실제 아우슈비츠를 경험하고 살아나온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독특한 점은 유태인들은 '쥐'라는 동물로 표현하고 있으며, 독일군들은 고양이,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돼지로 표현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작가는 왜 유태인을 쥐로 묘사했던 것일까? 책의 중간에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안타까운 글이 있다.
아우슈비츠에 관련해서는 책 뿐만 아니라 많은 영상들을 접할 수 있는데, 많이 접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접할 때 마다 너무 끔찍하고 무섭고 두렵고 안타깝다. 어떻게 신문기사에 저렇게 끔찍하게 기사가 올라올 수 있는가.
그리고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게 아닌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통해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수많은 고민에 빠뜨려 버린다.
민주적인 선거로 뽑힌 히틀러에 의해서 어쩌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공장이 만들어 진다. 히틀러가 유태인 뿐만 아니라 나치스와 히틀러에 반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어떻게 수십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죽일 수가 있었을까? 단지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는 점, 아니면 당시 대공황에 빠져있던 상황에 유태인들의 자본을 빼앗기 위해서인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이것은 설명할 수 없다.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 들어온 포로들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된다.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육체적으로 일할 힘이 없으면 바로 그들에게 심판당한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스실에는 별도의 금니용해실이라는 곳도 있다. 그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이들이 이빨에 붙어있는 금딱지를 얻어내려고 금니용해실을 만들었다. 정말 끔찍하고 역겹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장면이 두 부분이 있다.
하나는 인터뷰의 대상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의 창고에는 쌓여만 갈 뿐 버리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들과 길을 걸어가면서 버려진 전기줄을 마치 횡재를 한 듯이 줍는 모습이었다. 왜 아버지는 그런 습관이 몸에 베었을까?
아우슈비츠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다. 하루에 한조각 나오는 빵도 만약을 대비해서 반을 잘라서 보관해둔다. 그곳에서는 어떤 물건이라도 소중하다. 철사 한 조각, 버려진 끈 등 모든 것이 그들의 생사를 갈라 놓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트 슈피겔만은 작품 속에서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하지만, 그가 그 장면을 삽입했던 것으로도 그 역시 아버지의 그 습관에 대해서 뼈저리게 아파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한 장면은 포로수용소에 일반 포로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독일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포로들 중에 한 사람이이었다. 조금의 혜택을 받고 이들은 나치스 보다 더 심하게 동료들을 대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그들 역시 가스실로 간다는 점이다. 사람은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동물이다. 모든 상황에 이런 사람들은 꼭 존재한다. 예전에 소작농을 괴롭히던 사람은 마름들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누구보다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이들은 일본인이 아닌 같은 조선인이었다. 이럴 때마다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실제 상황이 닥치는 과연 나는 어떨까? 하지만 확실한 자신감이 없기에 나 자신에게 묻는 것 조차 두려울 때도 많이 있다.
한 동안 이야기에 빠져서 소설책만 읽어왔다. 이제는 조금 다른 장르의 책을 읽을 때가 온 듯 하다.
그래서 이번에 선택한 장르는 바로 '과학'이다. '과학'에 관련해서는 거의 지식이 전무해서 어느 정도 필요성도 느낀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예전에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이 떠올랐다.
바로 196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의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다.
이 책은 리처드 파인만이 쓴 책이지만 과학에 대해서 논한 책이라기 보다는 파인만의 회고록이다. 그런데 물리학자의 회고록이 너무나 유쾌하다. 1,2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번에 읽은 1권에서는 어린시절과 MIT대학생활, 프린스턴대학에서의 대학원 생활,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리학자의 회고록이기에 중간중간 물리학이나 생물학 관련해서도 다루지만 이 책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해도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데는 성공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에 관련한 책을 읽기를 원하지만 부담스러워 하는 초심자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파인만의 천재성에 감탄하기도 하고, 동시에 이렇게 그의 유쾌한 모습에 저절로 끌리게 된다. 이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과학자는 아닌 듯 하다. 분명 옆에 있으면 끌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에서 다루어지는 부분 중에 파인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라디오를 고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그마한 창고에 자기만의 실험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기도 하고, 자기 나름의 이런저런 실험을 한다. 벌써부터 평범하지 않다. 어렸지만 그의 라디오 수리 실력이 알려져서 사람들에게 수리 요청이 들어온다. 그 중 한 곳의 라디오는 처음에 라디오를 켰을 때 소음이 나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파인만은 생각만으로 왜 그런 원인이 발생했는지 걸어다니면서 생각만을 하다가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고 바로 수리를 한다. 그래서 생각만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p25) 나는 한 번 의문나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덮어둘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친구가 <그만 둬,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라고 말했다면 나는 너무 약이 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까지 손을 댔으면 끝장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알아낸 뒤에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끝내 원인을 찾아서 그 라디오를 고치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태도가 나중에 그를 노벨물리학상까지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일하는 분야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되면 그것으로 그치는 경향이 크다. 그 일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끝까지 파고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원리를 알고 근본적인 문제 발생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어느 정도만 이해되면 이 정도면 됐어하고 혼자 멈추어버린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다른 재미있는 부분은 금고를 여는 장면인데, 파인만은 누군가에게 자물쇠를 여는 법을 배우고 나서, 나중에는 스스로 금고를 여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맨하튼 프로젝트의 중요한 문서들이 있는 금고들도 손쉽게 풀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동료의 어떤 문서가 필요하면 파인만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럴때마다 파인만은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혼자 들어가서 금방 열어두고 잡지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 뒤 동료들에게 어렵게 풀었다는 듯한 행동을 한다.
리처드 파인먼,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p202) 대령은 공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메모를 보냈다. <파인만씨가 방문했을 때, 사무실에 들어왔거나, 근처에 있었거나, 사무실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메모가 전달 되었다. <금고 번호를 바꾸시오!>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핵실험에 처음 성공했을 때 동료 밥 윌슨과의 대화도 인상적이었다.
궁금하기도 했다. 핵을 만든 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그들도 알고 있었을까?
(p187)시험이 끝나고, 로스앨러모스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모두들 파티를 했고, 우리 모두 뛰어다녔다. 나는 지프 끝에 앉아서 드럼을 쳤다. 그러나 한 사람은 앉아서 울상을 하고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밥 윌슨이었다.
내가 말했다. 「왜 울상이지?」
「우리가 만든 것은 흉악한 거야」
「하지만 당신이 시작했잖아. 당신이 우리를 끌어들여 놓고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시작했고, 열심히 한 덕분에 성공했고, 이것은 즐거운 일이고,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냥 멈춘 것이다. 밥 윌슨은 그 순간까지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얼마 뒤에 나는 코넬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문명으로 돌아왔다. 그 때 내 첫인상은 아주 이상했다. 지금은 이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강렬했다. 예를 들어, 뉴욕의 레스토랑에 앉아서 창 밖의 건물을 보면서 생각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의 파괴 반경이 얼마였던가. 여기에서 34번가까지 얼마나 멀지? 이런 건물들이,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릴 텐데>
어쩌면 파인만과 같은 과학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연구와 실험에 충실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 원자폭탄이라는 것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축하하며 그들은 파티를 하고 드럼을 쳤다. 그런데 얼마 후 그것은 사망자 21만명을 포함해 인명피해가 70만명으로 추정되는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멍에를 남겼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핵전쟁의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다.
이 책은 파인만의 회고록이기에 이런 원자 폭탄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잠시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가치 판단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나중에나 깨달았을 것이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물리학자가 쓴 책인데 이렇게 재미있게 쓸 줄 몰랐다. 지루함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파인만은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런데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실험해보고 관찰해보고 궁금한 것은 악착같이 해결해나갔다. 퇴근 길에 이 책의 마지막을 읽었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줄 돋보기를 두 개 샀다. 아이들에게 밖에서 돋보기로 개미를 찾아보자고 했다. 왠지 아이들에게는 파인만씨 처럼 호기심을 길러주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파인만씨는 '과학'에 물꼬를 틀어주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두 작품 모두 우리 내면에 대해서 깊숙히 들어가서 뱉어낸
작품이었던 것 같다.
『크눌프』는 이전에 읽은 두 작품 보다는 읽기 편하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그렇게 무겁게만은 다가오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보다는 밝은 느낌의 주인공 크눌프 때문인지도
모른다.
헤세는 '크눌프'라는 작품 속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크눌프'를 헤르만 헤세가 자신을 본떠서 만든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헤세가 애정을 간직한 인물, '크눌프'에 나 역시 두껍지 않은 책을 읽는 동안에 좋아하게 됐다.
이런 인물을 가슴 속에 하나, 둘
심어두고 가끔 한 번 꺼내 보는 것도 삶을 사는 재미가 아닐까.
'크눌프'는 어쩌면 나와는 다른 성격의 인물이기에 가슴 속에 더
심어두고 싶은지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 보면 예술은 우리들의 삶의 균형감각을
맞추어준다고 한다.
우울하고힘든 사람들은
더 침잠해지기를 원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아름답고 경쾌한 미술작품을 통해 위로받는다.
형식적인 틀에 얽매인 사람은 자유롭게 표현하는 작품에 매료된다.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산부들이 평소에 먹지도 않거나 심지어 싫어했던 음식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몸 속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서 우리 몸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크놀프'를 가슴 속에 담아두고 싶은 이유는 나와는 다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크눌프'에 대해서,
그가 부럽고 동시에 내 부족함을 대신 채워줄 수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질감 뿐만 아니라, 그와
나는 비슷하다는 동질감 또한 갖게 되니 애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는 '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 이라는 서로 이어지는 듯 하지만 단편적인 작품 세 편으로 구성된다.
이 작품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쓰여졌지만,
'크눌프'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라는 공통점으로 1915년에
한 권으로 묶여졌다.
<초봄>은 크눌프라는 '자유로운
영혼' 크놀프에 대해 여실없이 보여준다.
크눌프는 어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행을 하며 떠돌아 다닌다.
세련된 매너와 여행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경험으로 펼쳐지는 입담으로 사람들은
그가 그들의 집에 방문해주기를 원한다.
'자유롭다'라는 의미에는 때로는
'무절제하다', '버릇없다', '문란하다' 와 같은 곁가지들이 따라 붙는데,
'크눌프'는어떤
게진정한 자유인지알고 있다. 친구의아내가자신에게
호감을 가지자재치있게 넘어간다.
하지만자신이 애정을
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표현한다.
어떻게 보면 이 친구는 한마디로
'Gentle and Cool' 이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크눌프가 그렇게 의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며
영혼이기에 그가 밉지 않다.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한 때 크눌프와 친구였던 이가
기억하는 크눌프에 대한 이야기다.
(p76)크놀프가 말했다.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 저것 불어댈 뿐이지. 작품 속에서 크눌프가 하는 말은 친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며, 그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는 말한다.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 같다' 라고.
나 역시 크눌프의 말로 회상한다.
<종말>은 '크눌프'의 마지막을 담고 있다.
크눌프의 몸은 점점 아파 온다. 그리고마치 숙명처럼 고향으로 돌아 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고향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삶의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끊임없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눈다.
크눌프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한다. 무엇인가 잘못된 삶을 살지 않았나 자책한다.
그때 하느님이 말한다. 「이제 그만 만족하거라.』
크눌프의 마음은 점점 편안해지는 것 같다.
(p134)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파란 표지의 중앙에 마르고 잿빛 머리를 한 노인이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검정색 슬리퍼를 신고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끌고 간다. 그 아래에는 제목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라고 적혀 있다. 2013년 7월에 출간된 이 책은 작년 한 해 동안 서점계를 강타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인 요나스 요나슨은 이번 책이 데뷔작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대박을 친 것이다.
다들 너무나 좋아하고 항상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에 작년 한 해 동안에 이 책은 내 읽을 거리에는 배제되어 왔다. 왠지 그냥 남들이 너무 많이 읽는 건 읽기 싫어하는 잘못된 독서방식과 책을 읽어가면서 생겨난 편견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험한 걸로 봐서 이렇게 장기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들은 분명 이유가 있다. 과연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을까 궁금하다. 사실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같이 책을 읽는 이의 적극적인 추천때문이었다.
그렇게 500쪽에 달하는 하늘색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읽고 있는데 내용이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중간 중간에 이런 요소들이 조금씩 숨어있었다면 아마 나는 이 책에 큰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가는 스케일이 다르다. 어이가 없고 황당함을 내가 생각하고 예상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혼자 실소를 터뜨리며 읽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이야기는 두 개의 줄기로 진행된다. 하나는 자신의 100세 생일에 양로원 창문을 넘어 탈출한 노인 '알란' 이 우연히 어느 갱단의 돈가방을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나머지 하나는 알란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수많은 사건을 통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주로 폭탄전문가로서 살아가는 예상을 초월해버리는 또 다른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던 장면을 한 장면을 꼽자면, '알란 일당'이 검사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었다. 100세 노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말하는 부분과 삶의 경험으로 교묘하게 정신을 혼란시키는 알란의 모습과 그의 일당들이 중간중간에 증언하는 모습은 유쾌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미국의 트루먼과 존슨 대통령, 러시아의 스탈린, 스페인의 프랑코,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는 장면은 작품을 흥미롭게 만든다. 어이가 없는 게 우선인 것은 사실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재미있고 유쾌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보통 책을 읽을 때 연필을 손에 쥐고 읽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처음에 (p47)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이 부분을 줄을 친 후에 연필을 내려놓았다.
이 책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나눈다면,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유쾌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으로 기억될 거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사적인 사건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 이 전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협상국(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운 전쟁이다.
▷ 러시아 혁명 (1917년 10월)
-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 스페인 내전 (1936~1939)
- 스페인에서 일어난 내전. 1936년 2월의 총선거에서 스페인에 인민전선 내각이 성립되자 이것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이 인속하는 군부가 반란을 일으켜 치열한 내전이 일어났다. 독일과 이탈리아 양국이 반정부군 측을 강력하게 지원한 것에 반하여 인민전선 정부군 측을 원조한 것은 소련뿐이었으며 영국과 프랑스 등은 불간섭 정책을 취하였다. 그 때문에 전국은 점차 정부군 측에 불리하게 되어 1939년 3월 수도 마드리드가 함락되어 내전은 프랑코 장군의 반정부군 측의 승리로 끝났다.
▷ 제2차 세계대전 (1941~1945)
-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서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이다.
▷ 중국 내전과 모택동의 승리 (1949)
- 19세기 말 중국 왕정은 무능하고 부패한데다가 제국주의적인 서양 열강들의 중국대륙 진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은 의화단 사건 이후 거듭된 혁명의 진통을 거친 다음 그들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인 중화민국의 탄생을 보게되었다. 이 공화국은 초대 지도자 손문(쑨원)이 일찍이 사망하고 난 다음 1927년에 국민당 장개석이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곧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 사이가 결렬되면서 중국은 양대 세력 간에 20년이 넘도록 내전을 겪고 1949년 10월 1일 북경에서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강력한 공산정권을 탄생시켰다.
▷ 한국전쟁 (1950.06.25~1953.07.27)
-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국에서의 전쟁
▷ 68혁명 (1968.05)
- 프랑스 칸대학과 파리대학 낭테르 분교의 학생 시위가 정부의 탄압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분개한 각지역의 청년근로자들이 합세하였다. 총 400만 명이 파업과 공장 점거, 대규모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소외, 유럽공동체 하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후 미국, 독일, 일본 등 국제적으로 번져나갔다.
이상하게 이번에는 책을 읽고 나서 남기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저런 문장을 끄적이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음을 알아간다.
어쩌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번 다 읽고 나서 작품의 해설과 같은 책을 다룬 팟캐스트를 두시간 가량 들었는데, '이런~! 완전히 잘 못 읽고 있었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중요한 부분을 놓쳐버리고 말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읽고 난 후에 계속 걸리는 게 많았다. 아직까지 소설을 깊이있게 읽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늦지 않게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된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 이렇게 읽고 난 후에 나를 더 고민에 빠뜨려버렸고, 글을 남기는 것 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소설은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소록도의 병원에 새롭게 부임한 병원장인 현역 대령 조백헌과 섬 사람들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작품 속에도 기자가 등장하듯이 실제 어떤 한 기자가 기사로 쓴 것을 이청준 작가가 보고 나서 이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 속 주인공인 조백헌 대령의 실제 모델인 '조창원 원장' 을 만나 본격적으로 글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새로 부임한 조백헌 원장, 한센인을 대표하는 황 장로, 조백헌 원장과 대척점에 서 있는 보건과장 상욱이 있다. 황 장로의 어린 시절, 한센병을 걸리게 되는 이야기 부분은 어떻게 보면 작품 속에서 가장 자극적인 부분이고 극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이것도 실제 황 장로의 실제모델의 실화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거기에 허구를 덧씌운다고 하지만 어쩌면 실제 현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극적인 소설보다 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나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소록도의 한센병 병원의 병원장으로 온 현역 대령인 조백헌 원장은 소록도를 한센인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섬사람들은 이미 수십년 동안 경험해 온 비슷한 병원장이라 생각하고 조원장과의 의지에 맞추어 행동하지는 않는다. 조백헌 원장은 발가락도 몇 개씩 떨어져나간 한센병 환자들로 구성된 축구팀을 만들고 도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조원장은 간척사업을 시작하고 후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쓸 구상을 합니다. 하지만 간척사업을 하면서 소록도 주민들과의 갈등을 겪고, 간척되어져가는 땅을 원하는 섬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 결국 병원장에서 해임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후에 다시 일반인의 신분으로 소록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한센병 환자와 일반인들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윤혜원, 서미연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작품을 마치는데...
작품 속에서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는 가장 큰 점은 조백헌 원장이 소록도를 한센병 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와 보건과장 이상욱이 생각하는 결국 그것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런 일을 추진하는 조백헌 원장을 위한 것일 뿐, 소록도의 환자들에게 천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조백헌 원장은 황 장로와 이상욱을 통해서 자신은 정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진정성있게 섬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후에 원장의 신분이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섬으로 들어와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이게 정말 그들 간의 갈등의 화해, 한센인과 일반인들과의 경계의 허물어짐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혼 장면으로 모든 것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설을 읽고 나서, 그리고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다룬 부분을 들으면서 이게 그런 의미가 아님을 알았다.
나는 너무 글자 그대로 일차원적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조백헌 원장의 수많은 노력은 어쩌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자기는 아니라 하고 다른 사람도 아닐 거라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을 한 것인지 모른다. 작품 속에서 동상을 세운다는 개념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도 모르게 스스로 동상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은 축사를 연습하는 조백헌 원장의 이야기를 결혼을 취재하러 온 기자와 이상욱 보건과장이 엿듣는 장면이다. 조백헌이 진심으로 일반인과 한센인들의 화해라 생각하는 결혼식 축사를 준비하는데 자신은 이미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도 축사 연습을 할 뿐이었다. 결국은 스스로에게 취해있지 않았나 모르겠다. 작품은 축사 준비로 끝난다. 과연 결혼식의 주인공은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게 궁금할 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심장함을 느낀다. 이미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제목 속에는 '우리들의 천국'이 되지 못함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백헌 원장이 축사 연습을 엿듣는 장면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p494) 긴장하고 있던 상욱의 얼굴 위에 비로소 희미한 미소가 한 가닥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태는 아직 그 상욱의 웃음의 뜻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그는 조 원장의 그 너무도 직선적이고 순정적인 생각에 다소의 감동을 받은 듯 싶기도 했고, 어찌보면 오히려 씁쓸한 비웃음을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처음 읽었을 때는 순정적인 생각에 감동만을 받은 채 책을 덮었다. 하지만 나중에 뒤돌아봐서 생각하니 상욱의 쓸쓸한 비웃음이 유난히 선명나게 기억에 남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인상적인 첫 구절이다. 2년 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넘어가지 못했다. 읽고 나서 해설에 매달리고 내가 잘못읽었나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마도 더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다. 이번에는 소설의 이야기 중심으로 읽고 그리고 여러 사람과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읽어서인지 이해의 폭이 조금은 나아졌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아 죽이고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는 이야기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뫼르소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보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때 냉담했다는 사실, 장례 다음날 해수욕을 하고 여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희극영화를 본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뫼르소에게 비판의 날을 세우고 결국 그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뫼르소는 이해하지 못한다. 왜 내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과 상관없는 다른 것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고 나를 심판하는지 의아해했다. 재판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인데 왜 자신은 거기서 배제되어지는 의아해한다. 사형선고를 받을 때도 자기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같은 사람의 생명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세상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p130)아무리 해도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마련해준 재판과 판결의 언도가 내려진 순간부터 어쩔 수 없게 된 그 결말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국민)이란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하여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 같은 결정으로부터 많은 준엄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되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준엄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서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부조리'와 '실존주의'다.
이 책을 읽을 때 소설을 그냥 이야기 중심이 아닌 그 속에 내재된 의미를 찾아야된다는 생각에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부조리'와 '실존주의'에 대해서 이해하고 난 후에 접한 이야기는 조금 더 풍성해진 느낌이 있다.
옮긴이(이휘영)에 따르면 부조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176) 카뮈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합리의 욕망이 있는 까닭에 세계의 뜻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세계는 인간이 알아볼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 인간이 가진 '합리의 욕망'과 세계의 '몰합리'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것, 이러한 이율배반으로부터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카뮈의 부조리이며, 인간이 피하지 못할 숙명,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졸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습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상생활의 쳇바퀴를 돌며, 인생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문제 삼지않는다. 그처럼 졸고 있으면 존재자의 의식일 수 없으므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와 직면하여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 '반항' 이다.
소설을 있는 이야기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유없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는 것, 사람을 죽인 후에도 그렇게 큰 죄책감이 없었다는 점은 싸이코패스와 유사하다. 카뮈는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를 조금 더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본질 속에 매몰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본질이 상실되면 나 조차 상실하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부터 '실존주의'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의자라고 한다면 의자의 본질은 '앉을 수 있는 것' 이다. 만약 나무로 만든 의자가 다리가 뿌러져서 앉을 수 없다면 의자의 본질은 상실한 것이고 이것은 곧 의자 자체의 상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고정된 본질이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실존으로 존재한다. 본질로 규정되어 지는 자기를 둘러싼 억압과 규정에서 자유로워지고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은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부조리와 실존주의가 책을 읽고 나서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된 이 책의 내포된 의미였다면,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인간본연의 모습도 존재한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 해변가에서의 아랍인 살해, 재판 과정 중에서도 담담하고 어떻게 보면 무관심했다. 하지만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는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른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의지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p134)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마다 그 새벽을 기다리며 지낸 셈이다. 나는 언제나 갑자기 놀라는 것을 싫어했다. 무슨 일이든 생길 때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마침내 낮에 좀 자두었다가 밤에는 끝끝내 새벽빛이 천장 유리창 위에 훤히 밝아오기를 기다리게끔 되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보통 그 일을 하러 오는 때라고 알고 있던 그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 나의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 그렇게도 조그만 소리를 들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발 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으니 어지간히 운수가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하늘이 빛을 디며 새로운 하루가 나의 감방으로 새어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서 내 심장이 터지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문으로 달려가서 판자에 귀를 대고 얼빠진 듯이 기다리노라면 나중에는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거칠기가 마치 허덕이는 개의 숨결과도 같아서 깜짝 놀라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결국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나는 24시간을 벌었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을 29살의 나이에 발표했는데, 어떻게 이런 작품을 그 나이에 발표했을 수가 있을까라는 놀라움과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가장 부조리하게 여겼던 교통사고로 4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느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하나의 작품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다음은 『이방인』의 이해를 한 층 더 돕는다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카뮈를 다시 접해보려 한다.
p9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온 것이다.
p53
문을 닫는 소리가 나더니 영감이 자기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리고는 벽을 통해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왜 그때 어머니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는 일찌감치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 저녁도 먹지 않고 자버렸던 것이다.
p56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마리가 정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이고 나는 승낙했을 뿐이다. 그때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며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 다만 그것만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리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어떤지를 생각해보는 듯하였으나, 나는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잠시 또 묵묵히 있다가 그녀는, 나는 이상스러운 사람이어서 아마 그 때문에 자기가 나를 사랑할 테지만,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에 내가 싫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p57
"내가 무슨 볼일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p75
뜨거운 햇볕에 뺨이 불타듯 달아올랐고 땀방울이 눈썹에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날처럼 특히 머리가 아프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피부 밑에서 지끈 거리고 있었다. 그 햇볕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옮겨본댔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걸음, 다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를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 반사되자 마치 번쩍거리는 길쭉한 칼날이 내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터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어벼렸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에서 뻗쳐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뜨거운 칼날은 나의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쳤다. 바로 그때였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다는 답답하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하늘은 활짝 열리며 불을 쏟아놓는 듯하였다. 나의 온몸이 긴장하여 권총을 힘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권총 자루의 미끈한 배를 만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다. 내가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벼렸음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쓰러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인 듯했다.
p85
그는 여전히 좀 피곤한 표정으로 내가 한 일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각을 하고 나서 정말 후회라기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귀찮음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날은 그것으로 그치고 이야기는 더 진행을 보지 못했다.
p92
형무소에 수감되어 처음에 가장 괴로웠던 일은 내가 자유로운 사람의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가령 바닷가로 가서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솟곤 했다. 발 밑의 풀에 부딪히는 첫 물결 소리, 물 속으로 몸을 담글 때의 촉감, 그리하여 느끼는 해방감, 그러한 것들을 상상할 때, 갑자기 나는 감옥의 벽이 그 얼마나 답답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를 느꼈다. 그런 상황이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 다음에는 죄수로서의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매일 안뜰에서 하는 산책 시간, 아니면 변호사의 방문을 기다렸다. 나머지 시간은 그럭저럭 보낼 수 잇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만약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가 살게 되어 머리 위 하늘에 피는 꽃을 바라보는 것밖에 다른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차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주치는 구름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마치 여기서 변호사의 야릇한 넥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듯이 또 저 바깥 세상에서 마리의 육체를 껴안을 것을 기다리며 토요일까지 참고 지냈듯이, 그런데 결국 생각해보면 나느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이건 어머니의 생각이었는데 어머니는 늘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법이라고 했다.
p94
"그러나 당신네들은 감옥에 가두는 것은 그 때문이라오."하고 그는 말했다.
"아니, 그 때문이라니?"
"아무렴, 자유라는 것, 그것을 당신네들에게서 빼앗는 거란 말이오."
나는 한번도 그런 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참 그렇긴 해. 그렇지 않다면 징벌이라는 게 어디 있겠소?"
"그렇고 말고, 당신은 참 이해를 잘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해요. 그렇지만 결국 그네들도 스스로 괴로움을 덜게 된답니다.
p96
그처럼 잠을 자고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3면 기사를 읽는 동안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시간은 흘렀다. 감옥에 있으면 시간 관념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얘기를 읽은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러한 것이 나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고 동시에 짧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지내기는 물론 길었지만, 너무나 길게 늘어나서 하루하루 넘쳐 서로 겹치고 마는 것이었다. 세월은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나에게는 의미를 잃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들어온 지 다섯 달이 지났다는 말을 어느 날 간수로부터 들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믿었으나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로서는 언제나 같은 날이 내 감방으로 밀려오고 언제나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간수가 가버린 뒤에 나는 쇠로 만든 밥그릇에 비친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 모습은 아무리 마주보며 웃으려고 해도 무뚝뚝한 채로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흔들고 빙그레 웃었으나 비쳐진 얼굴은 여전히 무뚝뚝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나로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형무소 모든 층의 여기저기로부터 저녁의 소리가 정적의 행렬을 지어 올라오는 그런 시간이었다.나는 천장으로 뚫린 창문으로 다가가서 마지막 빛 속에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으나 그야 놀라울 것도 없었다. 나는 그때 사실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여러 달 만에 처음으로 나는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나는 그것이 오래 전부터 나의 귀에 울리고 있었던 소리임을 알아차리고 그 동안 내가 줄곧 혼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정말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형무소 안의 저녁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상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
p102
"우리들은 당신의 사건을 좀 부풀려서 보도했답니다. 여름철은 신문사로선 불경기죠. 기삿거리가 도리 만한 것이라곤 당신 사건하고 부모 살해 사건밖에 없었어요." 하고 그는 덧붙였다.
p108
그 목소리가 하도 억세고, 나를 향한 눈초리가 하도 의기양양해서 나는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p109
성의껏 최선을 다했으나 그만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셀레스트는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눈은 번쩍이고 입술은 떨리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자신이 좀 더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몸짓도 하지 않았으나 한 사람의 인간을 껴안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 것은 그때가 생전 처음이었다.
p113
"배심원 여러분, 이 사람은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그 다음 날에 해수욕을 하고 부정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희극 영화를 보면서 시시덕거린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p115
검사는 배심원들에게로 돌아서며 말했다.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 날 가장 수치스러운 정사에 골몰한 그 사람은 대수롭지도 않은 이유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치정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고 살인을 한 것입니다."
p118
피고석에 앉아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있는 일이다.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 변론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마 나의 범죄에 대해서보다는 나라는 인간 자체에 관해서 더 많이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양쪽의 변론이 그다지 차이가 있었을까? 변호사는 팔을 쳐들고 범죄를 인정하되 변명을 붙였고, 검사는 손가락질을 하며 유죄를 고발하여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좀 난처한 일이 하나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때로는 나도 내 의견을 한마디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는 "가만 있어요. 그래야 일이 잘 됩니다." 하고 말했다.
이를테면 사건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다루어진 셈이었다. 나를 참여시키지도 않고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p119
내가 옳게 이해한 것이라면, 검사의 생각의 요점은 내가 범죄를 미리 계획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으며, 그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그것을 나는 이중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명백한 사실에 비추어서, 둘째로는 이 범죄적 영혼의 음흉한 심리 상태에 비추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검사는 어머니가 죽은 뒤의 사실들을 요약하였다. 내가 냉담했다는 것, 어머니의 나이를 몰랐다는 것, 이튿날 여자와 함께 해수욕을 하러 갔다는 것, 페르낭델의 영화를 보러 가고, 끝으로 마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퍽 시간이 걸렸다. 그가 '정부'란 말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리였을 따름이다. 그리고 검사는 레몽의 이야기를 했다. 사건을 보는 그의 방법은 여간 명석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는 그럴듯했다. 나는 레몽과 합의하여 그의 정부를 꾀어다가 '품행이 좋지 못한' 사나이의 흉악한 손아귀에 넘기려고 편지를 썼다는 것이고, 바닷가에서는 내가 레몽의 적들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다. 레몽이 다쳤던 까닭에 내가 레몽에게 권총을 달라고 하여 혼자서 그것을 사용할 생각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계획대로 아랍인을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조금 더 기다려서 '일이 잘 되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네 방의 탄환을 태연하게, 말하자면 확실하고도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쏘았다는 것이다.
p121
그리고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는데,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는 했다. 나는 나의 행동을 그다지 뉘우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노발대발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웠다.나는 그에게 다정스럽게, 애정을 기울여, 내가 정말로 무엇을 뉘우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항상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일, 오늘의 일, 또는 내일의 일에 마음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나의 처지로서는 누구에게도 그런 투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다정스러운 태도를 취하거나 선의를 가질 권리가 없는 것이었다. 검사가 다시 나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으므로 나는 귀를 기울였다.
p122
"이 법정은 내일 가장 가증스러운 범죄, 부모를 살해한 범행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잔혹한 범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 사회의 율법이 엄중한 처단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범행이 일으키는 전율감은 나의 무감각함에 대하여 느끼는 전율감보다는 차라리 덜하다는 것을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다고 지껄였다. 또 그의 말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사람은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 새회로부터 추방되어야 한 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전자는 후자의 행위를 준비하는 것이며, 말하자면 그러한 행위를 예고하고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p123
"저는 피고에 대하여 사형을 요구합니다. 사형을 요구하면서도 제 마음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짧지 않은 재직 기간 중 나는 여러 번 사형을 요구한 일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이 괴로운 의무가 신성한 지상명령이란 의식과 흉악함 외에는 아무것도 읽어볼 수 없는 한 사람의 얼굴을 앞에 놓고 느끼는 전율감에 의해 되갚음을 받아 마음이 명랑해진 적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p124
나는 빠른 어조로 말을 좀 얼버무리며 나 자신이 우습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는 웃음이 일었다. 나의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곧이어 그는 발언권을 얻었으나 시간도 늦고 자기의 진술은 여러 시간을 요할 것이므로 오후로 미루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정은 이에 동의했다.
p125
그러한 장광설들, 여러날 동안 나의 영혼에 관해 이야기한 그 한 없이 긴 시간때문에 나는 모든 것이 빛깔 없는 물처럼 되어 버려 그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p130
아무리 해도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마련해준 재판과 판결의 언도가 내려진 순간부터 어쩔 수 없게 된 그 결말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국민)이란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하여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 같은 결정으로부터 많은 준엄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되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준엄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134
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마다 그 새벽을 기다리며 지낸 셈이다. 나는 언제나 갑자기 놀라는 것을 싫어했다. 무슨 일이든 생길 때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마침내 낮에 좀 자두었다가 밤에는 끝끝내 새벽빛이 천장 유리창 위에 훤히 밝아오기를 기다리게끔 되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보통 그 일을 하러 오는 때라고 알고 있던 그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 나의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 그렇게도 조그만 소리를 들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발 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으니 어지간히 운수가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하늘이 빛을 디며 새로운 하루가 나의 감방으로 새어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서 내 심장이 터지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문으로 달려가서 판자에 귀를 대고 얼빠진 듯이 기다리노라면 나중에는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거칠기가 마치 허덕이는 개의 숨결과도 같아서 깜짝 놀라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결국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나는 24시간을 벌었다.
p137
죽었다면 마리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뒤에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릴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란 결국 무슨 생각에든지 나중에는 익숙해지고 마는 법이다.
p146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생각했다. 만년에 왜 어머니가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보려 했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주변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서 어머니는 해방감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마음이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주기라도 한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 찬 밤하늘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는알랭 드 보통의 처녀작이자,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책이었다. 처음에 별로 큰 기대를 가지고 읽지는 않았는데 읽는 동안 몇 번을 감탄을 했는지 모르겠다. 남녀 간의 사랑의 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그의 세심함과 인간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나 부러웠다. 한 작가의 어떤 책이 마음에 들면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저작을 찾아보는 습관으로 그의 다른 책을 찾아보았다. 상당히 많은 책이 있었지만 그중 『불안』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었다. 내가 만난 알랭 드 보통의 두번째 책은 바로 『불안』이었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가 매 장(chapter) 마다 소주제를 다루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 처럼 『불안』역시 불안이라는 것의 원인과 그 해결방법을 각 챕터마다 제시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각종 철학에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여행, 건축 등 일상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카드 작업을 통해 여러 주제들을 모아 두었다가 어떤 한 책의 맥락에 많게 카드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책을 내놓는 방식을 취한 것과 같은 형식으로 여러 저작들을 편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안』에서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원인과 그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역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불안의 원인으로는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이며, 불안의 해소 방법으로는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럼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 불안의 원인
(1.사랑결핍) 사람들은 태어날 때 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우리는 타인들의 칭찬이나 격려에 힘을 얻지만, 타인들이 자신을 배격하거나 무관심할 경우에는,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2. 속물근성)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자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은 타인들을 경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감과 열등감을 가진 이들은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느김을 심어주려고 기를 쓰는 경향이 있다. 또한 무시와 외면은 이러한 속물적인 세상에서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내려진다.
(3. 기대) 19세기 초에 서양의 서점에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책이 출간되면서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부유해질 수 있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또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는 항상 사회 고위층의 생활의 모습을 자주 노출시켜주었다. 결국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욕망 즉, 기대가 점점 높아져 결국 부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4. 능력주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움트는 가혹한 의견 중의 하나는, 사회적 위계는 단계마다 거기에 속한 사람의 자질을 엄격하게 반영한다고 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름뱅이가 실패할 조건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고 결국 자선, 복지, 재분배 장치, 단순한 동정의 필요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즉,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가난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선 수치라는 모욕이 덧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5. 불확실성) 1)변덕스러운 재능, 2)운, 3)고용주, 4)고용주의 이익, 5)세계경제 라는 요소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상당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빠지거나 안 좋은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 한다.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느냐는 대응여부는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 '사랑결핌',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에 의해 야기되는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살펴본다.
■ 불안의 해법
(1. 철학) 많은 철학자들은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에 따르라고 권한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2. 예술) 예술은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소설가의 경우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꾸고,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매슈 아널드는 예술의 정의를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실용과 동떨어진 예술에서 우리는 진정한 실용을 경험하게 된다.
(3. 정치)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작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늘 존재해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제도는 사실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 아무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변화가 몇 세대 만에 일어나곤 한다." 어쩌면 이 말이 정치가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만, 정치적 관심의 결과로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이런 관심이 없이는 그저 사람들의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규칙도 제대로 모른체.
(4. 기독교)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후는 삶 이후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마지막,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우리가 집착하는 지위와 부는 우주적인 관점과 천년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미미하다. 이런 깨달음은 자신이 초라해진다는 관점이 아닌 모두가 동일하구나 하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5. 보헤미아) 보헤미아들은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있게 살아가려면 자신들만의 가치 체계,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집단과 전통보다 개인이 우월하다고 강조하며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냈다. 가장 넓은, 가장 포괄적인 말로 보헤미아의 기여를 요약하자면 그들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 추구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존중하는 하위문화의 경계를 정하고 의미를 규정했는데, 이곳에서는 부르주아 주류가 과소평가하고 간과하는 가치들이 적절한 권위와 위엄을 부여받았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不安), 사전적의미로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이라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 중에 하나를 다섯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다섯가지 해법으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다양하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상황과 맥락속에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불안도 역시 마찬가지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원인을 위와 같이 제시했지만, 어쩌면 나는 다르게 접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원인과 해법은 어디에나 적용해도 될 정도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제목이 『불안』일 뿐이지 이 책은 다른 제목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져도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지만, 무언가 특별함이라던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보여주던 세심한 감각은 이 책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다음에는 『뉴스의 시대』를 읽을 예정이다.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보자. 처음 그의 책을 읽고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기대해본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불안의 원인>
1. 사랑결핍
P21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2. 속물근성
P29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자면,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 또는 무엇을 존중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지어 속물근성의 의미를 좁혀보는 것이 더 정확하게 살펴보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P34
속물근성을 이해하려다 보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으 ㅣ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P38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3. 기대
P56
설사 웃풍이 심하고 비위생적인 오두막에 살면서 크고 따뜻한 성에 사는 귀족의 지배에 시달린다 해도, 우리와 동등한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사는 것 을 본다면 우리의 조건은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괴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질투심이 생겨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쾌적한 집에 살며 편안한 일자리로 출퇴근한다 해도 경솔하게 동창회에 나갔다가 예 친구 몇 명이 아주 매력적인 일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우리 집보다 더 큰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이리 불행하냐는 생각에 시달려 정신을 못 가누기 십상일 것이다.
P57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P72
19세기 초부터 서양의 서점들은 자수성가한 영웅들의 자서전이나 아직 자수성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겨냥한 조언집, 인격을 일괄적으로 개조할 수 있고 금세 엄청난 부와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훈담으로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또 의도와는 달리 그들을 슬프게 했다.
P76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의 발달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그들과 연관을 맺을 기회는 점점 많아졌다.
새로운 미디어는 그 내용만이 아니라, 거기에 덧붙여진 광고를 통해 청중의 마음에 갈망을 심었다.
P78
루소의 주장은 부에 대한 명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P80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4. 능력주의
P112
능력주의 사회의 비옥한 귀퉁이에서 움트는 더 가혹한 의견들에 따르면, 사회적 위계는 단계마다 거기에 속한 사람의 자질을 엄격하게 반영한다고 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름뱅이가 실패할 조건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고 결국 자선, 복지, 재분배 장치, 단순한 동정의 필요성은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의 등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1958
"오늘날 사람들은 아무리 비천하다 해도 자신에게 모든 기회가 열려 있음을 안다.....
만일 되풀이하여 '바보'라는 낙인이 찍히면 허세를 부릴 수가 없다....
이제는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기회를 박탕당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에 말이다.
P114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5. 불확실성
P118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생계를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 뜻대로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위계 내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리를 얻거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1)변덕스러운 재능, 2)운, 3)고용주, 4)고용주의 이익, 5)세계경제
P135
고용의 이런 불안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돌아가 본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맨 처음에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질문에 대하여 당당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경제학자가 그리는 그래프의 상승과 하강에 달려 있으며,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달려 있으며, 운과 영감의 변덕에 달려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요구에는 변함이 없어, 유아 시절과 비교해봐도 줄어둔 것 없이 꾸준하고 집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요구와 세상의 불확실한 조건 사이의 불균형은 지위에 대한 불안을 끈질기게 들쑤시는 다섯 번째 이유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불안의 해법>
1. 철학
P154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ㅇ낳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P156
이 세상에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P157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소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염세주의 철학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려면 우리 지위를 단속하려는 미숙한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 사실 우리의 지위를 단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는 우리에 대하여 부정적적인 의견을 가진 모든 사람과 결투를 하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논리에 기초하여 자신의 가치를 느껴야 하는데, 사실 이때 느끼는 만족감이 근거가 더 탄탄하다.
2. 예술
P163
아널드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다. "<데일리 텔리그래피>의 젊은 사자들"에게 예술이 아부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으ㅢ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ㅇ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P170
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
P179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P197
우리는 비극 작풍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실패에 평소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통해 실패의 유래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많이 아는 것은 곧 더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비극 작품은 아주 작은 단계들, 종종 아무 뜻도 없어 보이는 단계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주인공의 성공을 몰락과 연결시켜 나간다. 우리는 의도와 결과 사이의 비틀린 관계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신문에서 단순히 실패의 이야기의 뼈대만 읽었을 경우라면 가지게 되었을 무고나심한 태도, 또는 적의에 찬 태도를 버리게 된다.
P218
만화도 다른 예술과 함께 매슈 아널드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즉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권력의 불의와 더불와 사회 체제에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망도 교정하려 한다. 만화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안타까운 인간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만화가들의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적 목표는 유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런 식으로 조롱할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정치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집단이 스스로 존엄을 얻고자 이전 체제에서 이익을 보던 사람들과 맞서 공동체의 명예 체제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집단은 투표함, 총, 파업, 때로는 책을 이용해 높은 지위를 누릴 정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대한 공동체의 관념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p254
사회적 위계 때문에 아무리 기분이 상하거나 난처해지더라도 우리는 그런 위계가 너무 뿌리가 깊고 너무 견고하게 자리를 잡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 위계를 지탱하는 공동체나 신념들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이런 위계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여 체념을 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p257
조지 버나드 쇼는 <지적인 여자를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안내>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작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늘 존재해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제도는 사실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 아무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변화가 몇 세대 만에 일어나곤 한다.
p266
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 역시 자연스럽지도 않고 신이 주신 것처럼 보이지도 않게 된다. 그것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생산과 정치 조직의 변화에서 생겨난 것이며, 그 이후 유럽과 북미로 퍼져나갔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주입되어 있는 물질주의, 기업가 정신, 능력주의에 대한 열망은 체제의 키를 쥐고 있는 살마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그리고 다수는 이 체제에 의해 생계를 유지한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지위와 관련된 이상 때문에 생기는 불편이 기적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기후 위성으로 기상 상태의 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늘 문제를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용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 결과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욕심을 내보자면 이해는 사회의 이상들을 바꾸거나 그것과 씨름해보는 첫 단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죽마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을 아무런 회의 없이 무조건 숭배하고 존경하는 경향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세계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4. 기독교
p276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아마 나일 강변에서 술을 마시든, 책을 쓰든, 돈을 벌든,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죽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p293
우리는 우리의 이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p296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p297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 실제로 또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 것일 수도 있다.
p306
기독교의 주장에 따르면 낯선 사람이란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와 같은 요구와 약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낯설다는 인상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p310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업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5. 보헤미아
p325
19세기 초 서구와 미국에서 새로운 집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박하게 옷을 입고, 도시의 싼 지역에 살았고, 책을 많이 읽었고, 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다수는 우울한 기질이었고, 사업이나 물질적 성공보다는 예술과 감정에 충실했고, 가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생활을 하기도 했고, 여자들은 단발이 유행하기 오래전에 단발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p337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 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p344
보헤미아는 거부당한 사람의 존엄과 우월을 강조하여, 예수의 추방과 십자가 처형이라는 기독교 이야기의 세속적인 짝을 만들어냈다. 보헤미안 시인은 기독교의 순례자처럼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ㅅ ㅜ있지만,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시 자체가 무시당하는 자의 우월성의 증거가 된다.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p345
집단과 그 전통은 열등하다는 보헤미아의 믿음과 더불어 개인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으며 이와 더불어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났다.
랄프 에머슨의 에세이 <자립>에서도 비슷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인간은 모름지기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 에머슨의 말에 따르면, 어떻게 살고, 옷을 입고, 먹고,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념에 맞추다 보면 얼굴에 서서히 "우둔한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모든 고귀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에머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제 순응이니 조화니 하는 이야기는 더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그런 말들을 관보에 실어 조롱하도록 하자.
p347
보헤미안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들이 부르주아지에게 충격을 줄수록 부르주아지는 충격에 무디어졌다. 그래서 20세기 보헤미안 운동이 증명하듯이 그들의 기괴한 행동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p354
가장 넓은, 가장 포괄적인 말로 보헤미아의 기여를 요약하자면 그들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 추구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존중하는 하위문화의 경계를 정하고 의미를 규정했는데, 이곳에서는 부르주아 주류가 과소평가하고 간과하는 가치들이 적절한 권위와 위엄을 부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