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본형 작가의『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를 읽었다.

중고서점에서 살짝 빛바래고 표지가 살짝 얼룩졌지만 '구본형'이라는 이름 하나로 선택한 책이었다.

이 책의 부제에는 '1시간에 읽는 구본형의 자아경영' 이라고 적혀 있다.

150 쪽 정도의 얇은 책이지만 한번 쯤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다는 차원에서는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아내의 핸드폰을 보았다. 내가 '남의 편'으로 저장이 되어있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남의 편이라고 저장이 되어 있어? 이거 아니었잖아."

아내 曰, '요새 자기가 너무 예민하게 굴어서 속상해서 그렇게 저장했어."

나도 조금 느낀 부분이다. 최근에 이상하게 살짝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밖에서는 딱히 풀 때도 없고, 혼자 시간을 가지려 해도 쉽지 않고 하다보니 가장 편한 아내에게 싫은 소리, 짜증을 유난히 부렸던 거 같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데 역설적이게도 그러다보니 가장 소홀해진다. 


이렇게 예민해진 시점에서 무언가 조금 나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조금 차분하고 조용히 생각하기, 그러면서 풀리지 않은 일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았다.

이게 내 방식이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생각의 정리 시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고 우연찮게 나를 위로해주었다.


최근 몇 년 간은 정말 '책'에 흠뻑 취해 있었다.

책이라는 것은 보통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 이지만, 얼마 동안은 그것 자체가 나에게는 목적이 되어 버렸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회사에서는 '책'을 읽는 이미지로 서서히 자리잡히고, 싫지는 않지만 단지 그것으로 표현되는 내 모습이 싫어졌고, 내가 만들어낸 틀 속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아왔다.


이제는 다시 새롭게 생각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예전부터 느낀 것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여행', '독서'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가고, 방안 구석에서 책을 읽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이제는 조금 더 다양하게 나를 풀어놓아보려 한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어보기도 하고, 낯설은 거리를 걸어다니며 그 낯설음에 어색해보기도 하며, 인생과 인생의 만남이라는 다른 사람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보고 싶다.

책을 통해 배우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지는 않게 할 것이다. 

여전히 꾸준히 읽어나갈 테지만, 행동으로 바뀌지 않고 단순히 내 고집을 유지시키기 위한 책은 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렇게 차분히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조금씩 생각이 정리가 된다. 구본형 작가의 책은 이렇게 한 번씩 나를 돌아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찌보면 흔히들 말하는 자기개발서 같지만 작고하신 구본형 작가의 책에서는 그분의 철학이 느껴지고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불편하지 않다.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의 마지막으로 추석이 지난 다음 날 새벽 글을 마친다.


##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될 때, 그리하여 한없이 처량하고 무기력해질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충고를 진심으로 따라보는 것도 좋다.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둘째,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겨라.

넷째, 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마라.
늙은이의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다섯째,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여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늙어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덟째,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 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다가 분노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아홉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의 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로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다.


감사하며 살 수 있다면 좋은 인생 아닌가. 마지막 순간에 살 한 점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닳고 닳은 뼈와 질긴 가죽 하나 달랑 남기고, 새털처럼 가볍게, 바람에 날리듯,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으면 참 괜찮은 인생 아닌가. 먼 길을 가야 하는 저승사자도 그 그벼움에 짐을 덜어 고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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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래픽 노블을 한 편 읽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읽어오던 그런 만화책과는 사뭇 다르다.

300쪽에 달하는 분량, 만화치고는 너무나 많은 글, 두꺼운 하드커버에 빨강, 검정, 회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책 표지에 냉소적이면서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듯한 쥐 두 마리가 등장하는 책이다. 그리고 다루는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들의 모습과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지를 보여준 끔찍한 아우슈비츠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아트 슈피겔만(Art Spielgelman)의 『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계속 맴돌았다. 하나는 책의 형식적인 측면과 그래픽 노블이라는 점, 역시 만화치고는 글의 양이 상당했던 스페인내전을 다룬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이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은 작가 자신이 겪은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을 읽고 한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인간이란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쥐』는 『이것이 인간인가』의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내용의 유사성과 느껴지는 잔혹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나역시 그런 인간이라는 불안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쥐』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이 실제 아우슈비츠를 경험하고 살아나온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독특한 점은 유태인들은 '쥐'라는 동물로 표현하고 있으며, 독일군들은 고양이,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돼지로 표현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작가는 왜 유태인을 쥐로 묘사했던 것일까? 책의 중간에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안타까운 글이 있다.



아우슈비츠에 관련해서는 책 뿐만 아니라 많은 영상들을 접할 수 있는데, 많이 접하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접할 때 마다 너무 끔찍하고 무섭고 두렵고 안타깝다. 어떻게 신문기사에 저렇게 끔찍하게 기사가 올라올 수 있는가.

그리고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게 아닌 민주적인 선거제도를 통해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수많은 고민에 빠뜨려 버린다. 


민주적인 선거로 뽑힌 히틀러에 의해서 어쩌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공장이 만들어 진다. 히틀러가 유태인 뿐만 아니라 나치스와 히틀러에 반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어떻게 수십 수백만의 유태인들을 죽일 수가 있었을까? 단지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는 점, 아니면 당시 대공황에 빠져있던 상황에 유태인들의 자본을 빼앗기 위해서인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이것은 설명할 수 없다.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 들어온 포로들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게 결정된다.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육체적으로 일할 힘이 없으면 바로 그들에게 심판당한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스실에는 별도의 금니용해실이라는 곳도 있다. 그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이들이 이빨에 붙어있는 금딱지를 얻어내려고 금니용해실을 만들었다. 정말 끔찍하고 역겹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장면이 두 부분이 있다.


하나는 인터뷰의 대상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의 창고에는 쌓여만 갈 뿐 버리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들과 길을 걸어가면서 버려진 전기줄을 마치 횡재를 한 듯이 줍는 모습이었다. 왜 아버지는 그런 습관이 몸에 베었을까? 

아우슈비츠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다. 하루에 한조각 나오는 빵도 만약을 대비해서 반을 잘라서 보관해둔다. 그곳에서는 어떤 물건이라도 소중하다. 철사 한 조각, 버려진 끈 등 모든 것이 그들의 생사를 갈라 놓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트 슈피겔만은 작품 속에서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하지만, 그가 그 장면을 삽입했던 것으로도 그 역시 아버지의 그 습관에 대해서 뼈저리게 아파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른 한 장면은 포로수용소에 일반 포로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독일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포로들 중에 한 사람이이었다. 조금의 혜택을 받고 이들은 나치스 보다 더 심하게 동료들을 대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그들 역시 가스실로 간다는 점이다. 사람은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동물이다. 모든 상황에 이런 사람들은 꼭 존재한다. 예전에 소작농을 괴롭히던 사람은 마름들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누구보다 독립운동가를 밀고한 이들은 일본인이 아닌 같은 조선인이었다. 이럴 때마다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실제 상황이 닥치는 과연 나는 어떨까? 하지만 확실한 자신감이 없기에 나 자신에게 묻는 것 조차 두려울 때도 많이 있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라서 어쩌면 더 강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등장인물들이 사람이 아니기에 좀 덜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그린게 더 순화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쥐, 돼지는 원래 그렇게 사람처럼 잔인하지 않으니까.


책을 읽고 나니 사람이 무서워진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불안하다.



▲ 조그만 화차에 수백명을 억지로 집어넣는다. 대부분 그곳에서 압사, 질식사로 사망한다.



▲ 포로 수용소의 배식장면이다. 작업을 마치고 옷에 이가 있으면 배식은 없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베개

- 서평 : http://zorbanoverman.tistory.com/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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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이야기에 빠져서 소설책만 읽어왔다. 이제는 조금 다른 장르의 책을 읽을 때가 온 듯 하다.

그래서 이번에 선택한 장르는 바로 '과학'이다. '과학'에 관련해서는 거의 지식이 전무해서 어느 정도 필요성도 느낀다.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예전에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이 떠올랐다. 

바로 196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의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다.


이 책은 리처드 파인만이 쓴 책이지만 과학에 대해서 논한 책이라기 보다는 파인만의 회고록이다. 그런데 물리학자의 회고록이 너무나 유쾌하다. 1,2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번에 읽은 1권에서는 어린시절과 MIT대학생활, 프린스턴대학에서의 대학원 생활,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리학자의 회고록이기에 중간중간 물리학이나 생물학 관련해서도 다루지만 이 책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해도 읽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데는 성공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에 관련한 책을 읽기를 원하지만 부담스러워 하는 초심자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낸 파인만의 천재성에 감탄하기도 하고, 동시에 이렇게 그의 유쾌한 모습에 저절로 끌리게 된다. 이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과학자는 아닌 듯 하다. 분명 옆에 있으면 끌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에서 다루어지는 부분 중에 파인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라디오를 고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그마한 창고에 자기만의 실험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기도 하고, 자기 나름의 이런저런 실험을 한다. 벌써부터 평범하지 않다. 어렸지만 그의 라디오 수리 실력이 알려져서 사람들에게 수리 요청이 들어온다. 그 중 한 곳의 라디오는 처음에 라디오를 켰을 때 소음이 나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파인만은 생각만으로 왜 그런 원인이 발생했는지 걸어다니면서 생각만을 하다가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고 바로 수리를 한다. 그래서 생각만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p25) 나는 한 번 의문나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덮어둘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친구가 <그만 둬,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라고 말했다면 나는 너무 약이 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까지 손을 댔으면 끝장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알아낸 뒤에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끝내 원인을 찾아서 그 라디오를 고치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태도가 나중에 그를 노벨물리학상까지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일하는 분야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되면 그것으로 그치는 경향이 크다. 그 일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끝까지 파고 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원리를 알고 근본적인 문제 발생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어느 정도만 이해되면 이 정도면 됐어하고 혼자 멈추어버린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다른 재미있는 부분은 금고를 여는 장면인데, 파인만은 누군가에게 자물쇠를 여는 법을 배우고 나서, 나중에는 스스로 금고를 여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맨하튼 프로젝트의 중요한 문서들이 있는 금고들도 손쉽게 풀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동료의 어떤 문서가 필요하면 파인만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럴때마다 파인만은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혼자 들어가서 금방 열어두고 잡지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 뒤 동료들에게 어렵게 풀었다는 듯한 행동을 한다. 

리처드 파인먼,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p202) 대령은 공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메모를 보냈다. <파인만씨가 방문했을 때, 사무실에 들어왔거나, 근처에 있었거나, 사무실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메모가 전달 되었다. <금고 번호를 바꾸시오!>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핵실험에 처음 성공했을 때 동료 밥 윌슨과의 대화도 인상적이었다.

궁금하기도 했다. 핵을 만든 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그들도 알고 있었을까?


(p187)시험이 끝나고, 로스앨러모스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모두들 파티를 했고, 우리 모두 뛰어다녔다. 나는 지프 끝에 앉아서 드럼을 쳤다. 그러나 한 사람은 앉아서 울상을 하고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밥 윌슨이었다.

내가 말했다. 「왜 울상이지?」

「우리가 만든 것은 흉악한 거야」

「하지만 당신이 시작했잖아. 당신이 우리를 끌어들여 놓고선」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시작했고, 열심히 한 덕분에 성공했고, 이것은 즐거운 일이고, 짜릿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냥 멈춘 것이다. 밥 윌슨은 그 순간까지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얼마 뒤에 나는 코넬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문명으로 돌아왔다. 그 때 내 첫인상은 아주 이상했다. 지금은 이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강렬했다. 예를 들어, 뉴욕의 레스토랑에 앉아서 창 밖의 건물을 보면서 생각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의 파괴 반경이 얼마였던가. 여기에서 34번가까지 얼마나 멀지? 이런 건물들이,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릴 텐데> 


어쩌면 파인만과 같은 과학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연구와 실험에 충실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 원자폭탄이라는 것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축하하며 그들은 파티를 하고 드럼을 쳤다. 그런데 얼마 후 그것은 사망자 21만명을 포함해 인명피해가 70만명으로 추정되는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멍에를 남겼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핵전쟁의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다.


이 책은 파인만의 회고록이기에 이런 원자 폭탄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잠시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가치 판단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나중에나 깨달았을 것이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물리학자가 쓴 책인데 이렇게 재미있게 쓸 줄 몰랐다. 지루함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파인만은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궁금한 게 많았다. 그런데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실험해보고 관찰해보고 궁금한 것은 악착같이 해결해나갔다. 퇴근 길에 이 책의 마지막을 읽었는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줄 돋보기를 두 개 샀다. 아이들에게 밖에서 돋보기로 개미를 찾아보자고 했다. 왠지 아이들에게는 파인만씨 처럼 호기심을 길러주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파인만씨는 '과학'에 물꼬를 틀어주었다. 

이제 2권이 남았다. 이 감동이 가시지 않게 늦지 않게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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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었다.

그의 작품은 『데미안』, 『싯타르타』에 이어서 세번째다.

『데미안』은 유독 사람들마다 여러번 읽고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한 번 읽은 나는 지금은 어렴풋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싯타르타』는 우리가 흔히 석가, 부처라고 부르는 고타마 싯타르타와 관련된 내용이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두 작품 모두 우리 내면에 대해서 깊숙히 들어가서 뱉어낸 작품이었던 것 같다.

 

『크눌프』는 이전에 읽은 두 작품 보다는 읽기 편하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그렇게 무겁게만은 다가오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보다는 밝은 느낌의 주인공 크눌프 때문인지도 모른다.

헤세는 '크눌프'라는 작품 속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크눌프'를 헤르만 헤세가 자신을 본떠서 만든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헤세가 애정을 간직한 인물, '크눌프'에 나 역시 두껍지 않은 책을 읽는 동안에 좋아하게 됐다.

이런 인물을 가슴 속에 하나, 둘 심어두고 가끔 한 번 꺼내 보는 것도 삶을 사는 재미가 아닐까.

'크눌프'는 어쩌면 나와는 다른 성격의 인물이기에 가슴 속에 더 심어두고 싶은지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 보면 예술은 우리들의 삶의 균형감각을 맞추어준다고 한다.

우울하고 힘든 사람들은 더 침잠해지기를 원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아름답고 경쾌한 미술작품을 통해 위로받는다.

형식적인 틀에 얽매인 사람은 자유롭게 표현하는 작품에 매료된다.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산부들이 평소에 먹지도 않거나 심지어 싫어했던 음식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몸 속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서 우리 몸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크놀프'를 가슴 속에 담아두고 싶은 이유는 나와는 다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크눌프'에 대해서,

그가 부럽고 동시에 내 부족함을 대신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질감 뿐만 아니라, 그와 나는 비슷하다는 동질감 또한 갖게 되니 애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는 '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 이라는 서로 이어지는 듯 하지만 단편적인 작품 세 편으로 구성된다.

이 작품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쓰여졌지만, '크눌프'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라는 공통점으로 1915년에 한 권으로 묶여졌다.

 

<초봄>은 크눌프라는 '자유로운 영혼' 크놀프에 대해 여실없이 보여준다.

크눌프는 어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행을 하며 떠돌아 다닌다.

세련된 매너와 여행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경험으로 펼쳐지는 입담으로 사람들은 그가 그들의 집에 방문해주기를 원한다.

 

'자유롭다'라는 의미에는 때로는 '무절제하다', '버릇없다', '문란하다' 와 같은 곁가지들이 따라 붙는데,

'크눌프' 어떤 게 진정한 자유인지 알고 있다. 친구의 아내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자 재치있게 넘어간다.

하지만 자신이 애정을 가지는 대상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표현한다.

어떻게 보면 이 친구는 한마디로 'Gentle and Cool' 이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크눌프가 그렇게 의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며 영혼이기에 그가 밉지 않다.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한 때 크눌프와 친구였던 이가 기억하는 크눌프에 대한 이야기다.

(p76)크놀프가 말했다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 저것 불어댈 뿐이지.

작품 속에서 크눌프가 하는 말은 친구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며, 그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는 말한다.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 같다' 라고.

나 역시 크눌프의 말로 회상한다.

 

<종말> '크눌프'의 마지막을 담고 있다.

크눌프의 몸은 점점 아파 온다. 그리고 마치 숙명처럼 고향으로 돌아 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고향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삶의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끊임없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눈다.

크눌프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한다. 무엇인가 잘못된 삶을 살지 않았나 자책한다.

 

그때 하느님이 말한다「이제 그만 만족하거라.

크눌프의 마음은 점점 편안해지는 것 같다.

 

(p134)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이렇게 나는 작품 속에서 '크눌프'라는 친구를 만났고, 마지막을 함께 했다.

그는 삶에서 마주한 어떤 사건으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사건 역시 그의 삶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간 게 아닐까.

나는 '크눌프' 이 친구가 마음에 든다.

자유롭지만 경솔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그가 좋다.

자유, 자연, 여행,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 '크눌프'가 그립다.

어쩌면 나에게는 끊임없는 결핍의 요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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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표지의 중앙에 마르고 잿빛 머리를 한 노인이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검정색 슬리퍼를 신고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끌고 간다. 그 아래에는 제목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라고 적혀 있다. 2013년 7월에 출간된 이 책은 작년 한 해 동안 서점계를 강타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인 요나스 요나슨은 이번 책이 데뷔작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대박을 친 것이다.


다들 너무나 좋아하고 항상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에 작년 한 해 동안에 이 책은 내 읽을 거리에는 배제되어 왔다. 왠지 그냥 남들이 너무 많이 읽는 건 읽기 싫어하는 잘못된 독서방식과 책을 읽어가면서 생겨난 편견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험한 걸로 봐서 이렇게 장기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들은 분명 이유가 있다. 과연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을까 궁금하다. 사실 이번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같이 책을 읽는 이의 적극적인 추천때문이었다.


그렇게 500쪽에 달하는 하늘색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읽고 있는데 내용이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중간 중간에 이런 요소들이 조금씩 숨어있었다면 아마 나는 이 책에 큰 실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가는 스케일이 다르다. 어이가 없고 황당함을 내가 생각하고 예상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혼자 실소를 터뜨리며 읽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이야기는 두 개의 줄기로 진행된다. 하나는 자신의 100세 생일에 양로원 창문을 넘어 탈출한 노인 '알란' 이 우연히 어느 갱단의 돈가방을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나머지 하나는 알란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수많은 사건을 통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주로 폭탄전문가로서 살아가는 예상을 초월해버리는 또 다른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던 장면을 한 장면을 꼽자면, '알란 일당'이 검사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었다. 100세 노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말하는 부분과 삶의 경험으로 교묘하게 정신을 혼란시키는 알란의 모습과 그의 일당들이 중간중간에 증언하는 모습은 유쾌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미국의 트루먼과 존슨 대통령, 러시아의 스탈린, 스페인의 프랑코,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는 장면은 작품을 흥미롭게 만든다. 어이가 없는 게 우선인 것은 사실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재미있고 유쾌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보통 책을 읽을 때 연필을 손에 쥐고 읽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처음에 (p47)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이 부분을 줄을 친 후에 연필을 내려놓았다. 


이 책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나눈다면,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유쾌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으로 기억될 거 같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사적인 사건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 이 전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협상국(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운 전쟁이다.


▷ 러시아 혁명 (1917년 10월) 

-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 스페인 내전 (1936~1939)

- 스페인에서 일어난 내전. 1936년 2월의 총선거에서 스페인에 인민전선 내각이 성립되자 이것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이 인속하는 군부가 반란을 일으켜 치열한 내전이 일어났다. 독일과 이탈리아 양국이 반정부군 측을 강력하게 지원한 것에 반하여 인민전선 정부군 측을 원조한 것은 소련뿐이었으며 영국과 프랑스 등은 불간섭 정책을 취하였다. 그 때문에 전국은 점차 정부군 측에 불리하게 되어 1939년 3월 수도 마드리드가 함락되어 내전은 프랑코 장군의 반정부군 측의 승리로 끝났다. 


▷ 제2차 세계대전 (1941~1945)

-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서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이다.


▷ 중국 내전과 모택동의 승리 (1949)

- 19세기 말 중국 왕정은 무능하고 부패한데다가 제국주의적인 서양 열강들의 중국대륙 진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중국은 의화단 사건 이후 거듭된 혁명의 진통을 거친 다음 그들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인 중화민국의 탄생을 보게되었다. 이 공화국은 초대 지도자 손문(쑨원)이 일찍이 사망하고 난 다음 1927년에 국민당 장개석이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곧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 사이가 결렬되면서 중국은 양대 세력 간에 20년이 넘도록 내전을 겪고 1949년 10월 1일 북경에서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강력한 공산정권을 탄생시켰다.


▷ 한국전쟁 (1950.06.25~1953.07.27)

-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국에서의 전쟁


▷ 68혁명 (1968.05)

- 프랑스 칸대학과 파리대학 낭테르 분교의 학생 시위가 정부의 탄압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분개한 각지역의 청년근로자들이 합세하였다. 총 400만 명이 파업과 공장 점거, 대규모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소외, 유럽공동체 하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후 미국, 독일, 일본 등 국제적으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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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이번에는 책을 읽고 나서 남기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저런 문장을 끄적이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음을 알아간다. 


어쩌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번 다 읽고 나서 작품의 해설과 같은 책을 다룬 팟캐스트를 두시간 가량 들었는데, '이런~! 완전히 잘 못 읽고 있었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중요한 부분을 놓쳐버리고 말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읽고 난 후에 계속 걸리는 게 많았다. 아직까지 소설을 깊이있게 읽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늦지 않게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된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 이렇게 읽고 난 후에 나를 더 고민에 빠뜨려버렸고, 글을 남기는 것 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소설은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소록도의 병원에 새롭게 부임한 병원장인 현역 대령 조백헌과 섬 사람들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작품 속에도 기자가 등장하듯이 실제 어떤 한 기자가 기사로 쓴 것을 이청준 작가가 보고 나서 이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 속 주인공인 조백헌 대령의 실제 모델인 '조창원 원장' 을 만나 본격적으로 글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새로 부임한 조백헌 원장, 한센인을 대표하는 황 장로, 조백헌 원장과 대척점에 서 있는 보건과장 상욱이 있다. 황 장로의 어린 시절, 한센병을 걸리게 되는 이야기 부분은 어떻게 보면 작품 속에서 가장 자극적인 부분이고 극적인 장면이다. 그런데 이것도 실제 황 장로의 실제모델의 실화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거기에 허구를 덧씌운다고 하지만 어쩌면 실제 현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극적인 소설보다 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나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소록도의 한센병 병원의 병원장으로 온 현역 대령인 조백헌 원장은 소록도를 한센인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섬사람들은 이미 수십년 동안 경험해 온 비슷한 병원장이라 생각하고 조원장과의 의지에 맞추어 행동하지는 않는다. 조백헌 원장은 발가락도 몇 개씩 떨어져나간 한센병 환자들로 구성된 축구팀을 만들고 도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한다. 이를 계기로 조원장은 간척사업을 시작하고 후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쓸 구상을 합니다. 하지만 간척사업을 하면서 소록도 주민들과의 갈등을 겪고, 간척되어져가는 땅을 원하는 섬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 결국 병원장에서 해임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후에 다시 일반인의 신분으로 소록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한센병 환자와 일반인들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윤혜원, 서미연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작품을 마치는데...


작품 속에서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는 가장 큰 점은 조백헌 원장이 소록도를 한센병 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와 보건과장 이상욱이 생각하는 결국 그것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런 일을 추진하는 조백헌 원장을 위한 것일 뿐, 소록도의 환자들에게 천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조백헌 원장은 황 장로와 이상욱을 통해서 자신은 정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진정성있게 섬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후에 원장의 신분이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섬으로 들어와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이게 정말 그들 간의 갈등의 화해, 한센인과 일반인들과의 경계의 허물어짐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혼 장면으로 모든 것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설을 읽고 나서, 그리고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다룬 부분을 들으면서 이게 그런 의미가 아님을 알았다.

나는 너무 글자 그대로 일차원적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조백헌 원장의 수많은 노력은 어쩌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자기는 아니라 하고 다른 사람도 아닐 거라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을 한 것인지 모른다. 작품 속에서 동상을 세운다는 개념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도 모르게 스스로 동상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은 축사를 연습하는 조백헌 원장의 이야기를 결혼을 취재하러 온 기자와 이상욱 보건과장이 엿듣는 장면이다. 조백헌이 진심으로 일반인과 한센인들의 화해라 생각하는 결혼식 축사를 준비하는데 자신은 이미 약속된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도 축사 연습을 할 뿐이었다. 결국은 스스로에게 취해있지 않았나 모르겠다. 작품은 축사 준비로 끝난다. 과연 결혼식의 주인공은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게 궁금할 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심장함을 느낀다. 이미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제목 속에는 '우리들의 천국'이 되지 못함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백헌 원장이 축사 연습을 엿듣는 장면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p494) 긴장하고 있던 상욱의 얼굴 위에 비로소 희미한 미소가 한 가닥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정태는 아직 그 상욱의 웃음의 뜻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그는 조 원장의 그 너무도 직선적이고 순정적인 생각에 다소의 감동을 받은 듯 싶기도 했고, 어찌보면 오히려 씁쓸한 비웃음을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처음 읽었을 때는 순정적인 생각에 감동만을 받은 채 책을 덮었다. 하지만 나중에 뒤돌아봐서 생각하니 상욱의 쓸쓸한 비웃음이 유난히 선명나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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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인상적인 첫 구절이다. 2년 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넘어가지 못했다. 읽고 나서 해설에 매달리고 내가 잘못읽었나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마도 더 이해하지 못했던 거 같다. 이번에는 소설의 이야기 중심으로 읽고 그리고 여러 사람과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읽어서인지 이해의 폭이 조금은 나아졌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아 죽이고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는 이야기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뫼르소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보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때 냉담했다는 사실, 장례 다음날 해수욕을 하고 여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고 희극영화를 본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뫼르소에게 비판의 날을 세우고 결국 그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뫼르소는 이해하지 못한다. 왜 내가 아랍인을 쏘아 죽인 것과 상관없는 다른 것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고 나를 심판하는지 의아해했다. 재판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인데 왜 자신은 거기서 배제되어지는 의아해한다. 사형선고를 받을 때도 자기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같은 사람의 생명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세상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p130)아무리 해도 나는 그러한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마련해준 재판과 판결의 언도가 내려진 순간부터 어쩔 수 없게 된 그 결말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이 17시가 아니라 20시에 낭독되었다는 사실, 그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혹은 독일 국민, 중국국민)이란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하여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 같은 결정으로부터 많은 준엄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내가 몸뚱이를 비벼되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준엄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서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부조리'와 '실존주의'다.

이 책을 읽을 때 소설을 그냥 이야기 중심이 아닌 그 속에 내재된 의미를 찾아야된다는 생각에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부조리'와 '실존주의'에 대해서 이해하고 난 후에 접한 이야기는 조금 더 풍성해진 느낌이 있다.


옮긴이(이휘영)에 따르면 부조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176) 카뮈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은 합리의 욕망이 있는 까닭에 세계의 뜻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세계는 인간이 알아볼 만한 아무런 뜻도 없다. 인간이 가진 '합리의 욕망'과 세계의 '몰합리'라는 두 개의 상반되는 것, 이러한 이율배반으로부터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카뮈의 부조리이며, 인간이 피하지 못할 숙명,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졸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습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상생활의 쳇바퀴를 돌며, 인생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문제 삼지않는다. 그처럼 졸고 있으면 존재자의 의식일 수 없으므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카뮈에 따르면 부조리와 직면하여 모순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 '반항' 이다.


소설을 있는 이야기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유없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는 것, 사람을 죽인 후에도 그렇게 큰 죄책감이 없었다는 점은 싸이코패스와 유사하다. 카뮈는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를 조금 더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본질 속에 매몰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본질이 상실되면 나 조차 상실하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부터 '실존주의'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의자라고 한다면 의자의 본질은 '앉을 수 있는 것' 이다. 만약 나무로 만든 의자가 다리가 뿌러져서 앉을 수 없다면 의자의 본질은 상실한 것이고 이것은 곧 의자 자체의 상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고정된 본질이 갖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실존으로 존재한다. 본질로 규정되어 지는 자기를 둘러싼 억압과 규정에서 자유로워지고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은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부조리와 실존주의가 책을 읽고 나서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된 이 책의 내포된 의미였다면,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인간본연의 모습도 존재한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 해변가에서의 아랍인 살해, 재판 과정 중에서도 담담하고 어떻게 보면 무관심했다. 하지만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는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른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의지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p134)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밤마다 그 새벽을 기다리며 지낸 셈이다. 나는 언제나 갑자기 놀라는 것을 싫어했다. 무슨 일이든 생길 때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마침내 낮에 좀 자두었다가 밤에는 끝끝내 새벽빛이 천장 유리창 위에 훤히 밝아오기를 기다리게끔 되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들이 보통 그 일을 하러 오는 때라고 알고 있던 그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 나의 귀가 그처럼 많은 소리, 그렇게도 조그만 소리를 들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안 발 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으니 어지간히 운수가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하늘이 빛을 디며 새로운 하루가 나의 감방으로 새어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와서 내 심장이 터지고 말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문으로 달려가서 판자에 귀를 대고 얼빠진 듯이 기다리노라면 나중에는 나 자신의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거칠기가 마치 허덕이는 개의 숨결과도 같아서 깜짝 놀라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결국 나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나는 24시간을 벌었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을 29살의 나이에 발표했는데, 어떻게 이런 작품을 그 나이에 발표했을 수가 있을까라는 놀라움과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가장 부조리하게 여겼던 교통사고로 4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느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하나의 작품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다음은 『이방인』의 이해를 한 층 더 돕는다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카뮈를 다시 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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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는알랭 드 보통의 처녀작이자,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책이었다. 처음에 별로 큰 기대를 가지고 읽지는 않았는데 읽는 동안 몇 번을 감탄을 했는지 모르겠다. 남녀 간의 사랑의 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그의 세심함과 인간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나 부러웠다. 한 작가의 어떤 책이 마음에 들면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저작을 찾아보는 습관으로 그의 다른 책을 찾아보았다. 상당히 많은 책이 있었지만 그중 『불안』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었다. 내가 만난 알랭 드 보통의 두번째 책은 바로 『불안
』이었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가 매 장(chapter) 마다 소주제를 다루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 처럼 『불안』역시 불안이라는 것의 원인과 그 해결방법을 각 챕터마다 제시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각종 철학에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여행, 건축 등 일상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카드 작업을 통해 여러 주제들을 모아 두었다가 어떤 한 책의 맥락에 많게 카드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책을 내놓는 방식을 취한 것과 같은 형식으로 여러 저작들을 편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안』에서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원인과 그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역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불안의 원인으로는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이며, 불안의 해소 방법으로는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럼 차근차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 불안의 원인


(1.사랑결핍) 사람들은 태어날 때 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우리는 타인들의 칭찬이나 격려에 힘을 얻지만, 타인들이 자신을 배격하거나 무관심할 경우에는,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2. 속물근성)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단순히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자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은 타인들을 경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감과 열등감을 가진 이들은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느김을 심어주려고 기를 쓰는 경향이 있다. 또한 무시와 외면은 이러한 속물적인 세상에서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내려진다.


(3. 기대) 19세기 초에 서양의 서점에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책이 출간되면서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부유해질 수 있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또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는 항상 사회 고위층의 생활의 모습을 자주 노출시켜주었다. 결국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욕망 즉, 기대가 점점 높아져 결국 부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4. 능력주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움트는 가혹한 의견 중의 하나는, 사회적 위계는 단계마다 거기에 속한 사람의 자질을 엄격하게 반영한다고 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게으름뱅이가 실패할 조건은 이미 굳어져 있는 셈이고 결국 자선, 복지, 재분배 장치, 단순한 동정의 필요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즉,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가난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선 수치라는 모욕이 덧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5. 불확실성) 1)변덕스러운 재능, 2)운, 3)고용주, 4)고용주의 이익, 5)세계경제 라는 요소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상당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에 빠지거나 안 좋은 상황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 한다.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느냐는 대응여부는 삶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 '사랑결핌',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에 의해 야기되는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살펴본다.



■ 불안의 해법


(1. 철학) 많은 철학자들은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에 따르라고 권한다. 살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2. 예술) 예술은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소설가의 경우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꾸고,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매슈 아널드는 예술의 정의를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실용과 동떨어진 예술에서 우리는 진정한 실용을 경험하게 된다.


(3. 정치)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어릴 때 우리 모두 가졌던 환상, 즉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가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환상을 머리에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작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늘 존재해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제도는 사실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로 아무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변화가 몇 세대 만에 일어나곤 한다." 어쩌면 이 말이 정치가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만, 정치적 관심의 결과로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이런 관심이 없이는 그저 사람들의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규칙도 제대로 모른체.


(4. 기독교)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후는 삶 이후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마지막,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우리가 집착하는 지위와 부는 우주적인 관점과 천년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미미하다. 이런 깨달음은 자신이 초라해진다는 관점이 아닌 모두가 동일하구나 하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게 만든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성공하여 피어날 것이냐 아니면 실패하여 시들 것이냐 하는 이분법의 그 가혹한 칼날도 약간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5. 보헤미아) 보헤미아들은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있게 살아가려면 자신들만의 가치 체계,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집단과 전통보다 개인이 우월하다고 강조하며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냈다. 가장 넓은, 가장 포괄적인 말로 보헤미아의 기여를 요약하자면 그들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 추구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존중하는 하위문화의 경계를 정하고 의미를 규정했는데, 이곳에서는 부르주아 주류가 과소평가하고 간과하는 가치들이 적절한 권위와 위엄을 부여받았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不安), 사전적의미로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이라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 중에 하나를 다섯가지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다섯가지 해법으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상당히 다양하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상황과 맥락속에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불안도 역시 마찬가지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원인을 위와 같이 제시했지만, 어쩌면 나는 다르게 접근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원인과 해법은 어디에나 적용해도 될 정도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제목이 『불안』일 뿐이지 이 책은 다른 제목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져도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지만, 무언가 특별함이라던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보여주던 세심한 감각은 이 책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다음에는 『뉴스의 시대』를 읽을 예정이다.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보자. 처음 그의 책을 읽고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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