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속의 책을 찾아서 읽어라.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에서 다른 책들을 인용을 하거나 다른 책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책들을 책의 앞쪽이나 메모지에 적어두자. 그리고 그런 책들을 찾아 읽어보자.

다른 방법은 흔히들 메타북이라고 하는 책을 소개하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을 소개해본다.


#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 『지식인의 서재』, 『행복한 서재』, 한정원

# 『공부할 권리』, 정여울

#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조우석

# 『이젠 함께 읽기다』, 신기수 外

# 『월경독서』, 목수정




2. 책과 관련된 잡지를 구독하거나 찾아보라.


잡지를 보면 기본적으로 많은 종류의 책이 소개된다.

또한 먼저 읽어본 전문 서평가나 작가들의 소개가 된다. 

이런 잡지들을 읽다보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책을 접할 기회가 생겨서 특히 유익하다.


# 『기획회의』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 달에 두 번 출간이 된다.

# 『책 Chaeg』, 책과 문화 예술에 대해 소개하는 잡지, 월간지다.

# 『월간채널예스』, 온라인서점 YES24 에서 발행을 한다. 

    나는 이걸 받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이곳에서 주문을 한다.




3. 작가의 저작을 탐하라. 


어떤 책을 읽다가 감명깊거나 인상적이었다면,

그 저자의 다른 책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간혹 아닐 수도 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책들이 궁금해진다.

한 명씩 좋아하는 작가들을 늘려나가라. 

그들이 궁금해지고, 그들의 책이 궁금해진다.


# 박범신의 『소금』을 읽고

-  『고산자』,『소소한 풍경』,『더러운 책상』,『산다는 것은』,『은교』 를 찾아 읽었다.

#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 『인생』을 읽었다.

# 천명관의 『고래』를 읽고

- 『나의 삼촌 브루스리 1,2』,『고령화 가족』 을 읽었다.

# 이덕일의 『조선의 왕을 말하다』를 읽고

- 『근대를 말하다』,『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회영과 젊은 그들』,『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윤휴와 침묵의 제국』,『사도 세자가 꿈꾼 나라』  를 읽었다.

#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영혼의 미술관』,『뉴스의 시대』,『행복의 건축』을 찾아 읽었다.




4. 책을 추천해주는 다른 매체를 활용하라.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모르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추천해주는 책을 읽어보라.

책은 물꼬를 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만 잘 선택하면 꼬리를 물게 되기 때문이다.

물꼬를 트는 데는 다른 자극이 필요할 때도 있다.


#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진행 : 이동진, 김중혁, 이다해

#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 창비
- 현재 시즌2를 진행 중, 개인적으로는 시즌1을 더 추천한다.

# tvN, 『비밀독서단』 : 현재는 『비밀독서단2』

- 다양한 책을 선정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는 책 100'을 소개해준다.

# http://sosullist.com/

-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소설리스트를 참고

- 작가들이 소개하는 소설들, 좋은 소설을 만날 수 있다.

# 어플 iinnk 

- 이번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알게 됨

- 그곳 담당자는 영화에 왓챠라면 책에는 잉크라고..

-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고 방문자가 많지 않아서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괜찮음




5. 읽을 책이 생각나지 않으면 세계문학전집 목록을 찾아보라.


나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생각이 안나면

세계문학에 포함되어 있는 책들의 맨 뒷 페이지를 본다.

각 출판사 별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기 때문에 그 목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민음사>, <문예출판사>, <열린책들> 출판사의 세계문학 목록을 찾아본다.

고전의 경우에는 <책세상>을 추천하고, <범우사>의 한 손에 잡히는 책들도 괜찮다.


이런 책들은 처음에는 접근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한 번만 빠져보길 바란다. 이 책들의 표지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그에 비할 바가 못된다. 사실 읽기 힘든 책이 더 많긴 하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재미와 보람이 있다.




6.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어라. 독서 모임을 가져라.


책은 혼자 읽을 때와 같이 읽을 때는 많이 다르다.

똑같은 책을 일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내 느낌을 말하고, 상대방이 읽은 내용을 듣다 보면,

단순히 책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크다.

그리고 자기가 모르고 있던 양질의 책들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분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마 처음에는 엄청 어색할거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너 어제 그 영화봤어?

어제 그 프로그램 봤어? 는 서로 물어봐도 너 그 책 읽어 봤어?는 쉽지가 않다.

무언가 먼저 말하기가 그렇다. 어색하다.  하지만 모임에 적응해 보라.

책 읽는 새로운 재미를 얻게 될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이런 기회가 항상 아쉽다고 핑계를 대본다.




7.  서점에 간다. 그리고 마음가는 책을 선택한다.


이 글은 개인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어서 쓴 글이다.

여러 가지 책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지만 결국 답은 내 맘대로다.

그냥 표지 하나를 보고 끌리는 책이 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직접 서점에 가서 종이를 만져가면서 책의 한 구절을 읽어가면서

마음 가는대로 책을 선택하는 게 답이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 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


- 1980.01.05 움베르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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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왔습니다. '박웅현 작가의 『다시, 책은 도끼다』 출간' 이라는 제목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관심작가에 대한 신간알리미 서비스를 등록해두었더니 이렇게 관심 작가들의 책이 나올 때 문자를 보내줍니다. 최근에는 정유정, 박웅현, 유시민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이 문자로 날아옵니다. 저에게는 상당히 반가운 문자입니다.


박웅현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고 했을 때, '아, 책 잘 파시는 분이 오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분은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자신의 책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저서에 소개하는 책들까지 독자들이 사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분입니다. 지난 번에 『책은 도끼다』를 읽고 세 권의 책을 주문했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 같습니다.


작가의 서문을 보면 『책은 도끼다』가 독서를 어떻게 해야할까 에 대해서 집중을 했다면, 『다시, 책은 도끼다』는 역시 기존과 마찬가지의 형식이지만 조금 더 개별적인 책들에 집중하면서 내용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읽고 나니 『책은 도끼다 2』라고 해도 좋겠네요. 앞으로 계속 이어서 출간이 되어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1 이제는 시습(時習)이다.



우리에게는 심사, 깊이 생각함이 빠져 있는 듯 합니다. 많이 읽는 게 제일이잖아요. 1년에 100권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심사할 시간이 없죠.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적으로는 많이 읽었을지 몰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책 속의 지식이 진짜 내 것이 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습, 즉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려는 노력입니다. 이 문장을 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양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주관적인 이성으로 내가 책에 담긴 내용은 제대로 이해한다면 소중한 지식이 된다는 사실도요.


예전의 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입니다 .여전히 그 모습 중 많은 부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박웅현 작가는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어서 읽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으로 읽는 저와는 다릅니다. 그가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라면 저는 차 창 밖으로 지나가는 거리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저는 차 안에서 가끔씩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습(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다)을 하려면 생각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도대체 사유, 사색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지? "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알거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떼고 머릿 속에서도 잠시 떠나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글도 써보고, 혼자 멍하니 생각도 해보는 겁니다. 지나간 일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고요. 그냥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나 혼자 산다〉를 보니 '멍 때리기 시합' 도 있네요. 이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마 말은 쉬워보여도 스마트폰에 매몰되어 버린 이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지혜보다 높은 것이 있다, 느끼는 것"  

- 고은


책 속에 보면 '북 스마트', '스트리트 스마트' 라는 말이 나옵니다. 책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랑 실제 경험을 통해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 '책을 읽고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끔 자연의 소중함과 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글을 쓰지만 정작 산을 제대로 찾아가지 않습니다. 허울 뿐입니다. 알맹이가 없어요. 조금씩 경험을 하다보면 알게 됩니다. '북 스마트'도 중요하지만 결코 '스트리트 스마트'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시각적인 것에서 한정된 것에서 촉수가 오감으로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감각이 늘어났다고 그만큼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들 간에 서로 연결되면서 자극과 경험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에게 하는 간절한 충고입니다. "이젠 시습이다."



#2 미성(未成)의 시간 그리고 질문



인생을 직선으로 놓고 봤을 때, 9할은 기존(旣存)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에요. 내가 살고 있는 당대, 내가 타고난 삶의 조검 등 대부분의 것은 기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경써야 할 것은 나머지 1할인데, 그것의 9할은 기성(旣成)입니다. 이미 이루어졌어요. 저는 이제 오십대이고, 남자로 태어났고,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이건 끝난 겁니다. 되돌릴 수 없어요. 이것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이 1할의 1할입니다. 바로 미성(未成)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미성의 시간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1할의 1할이니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미성이 곧 기성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미성이 기성으로 넘어갈 때 후회가 없어야 겠지요. 그러려면 미성의 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 책상 위에 붙어있는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


나의 탄생은 내가 결정한 바 없고,

선택한 바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탄생 이후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생각하는게 

인문학적 사유의 첫번째 과제라는 말의 의미다.

- 『쓰잘 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中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


도정일 선생은 '탄생 이후의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감당은 '마땅히 견디어 냄'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던지 간에, 그리고 지난 과거가 어떠했던지 간에 이미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마땅히 견디어 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미성의 시간에 집중하고 미성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있게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미성의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보내야 할까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 얻은 대답은 '질문'이라는 단어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구 중에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과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스스로 질문하지 않게 되면 남들이 정해놓은 길, 남들이 가는 길을 생각없이 따라 가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조금 더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면 아쉬운 일은 생겨도 후회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자기들만의 독법(讀法)을 찾아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책에서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해봤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박웅현 작가 만의 소설읽는 법입니다. 그는 밀란쿤데라의 『커튼』이라는 책을 읽은 후에 소설을 읽는 재미가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알랭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얘기했죠.

우리는 부정확한 정보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고요.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의 정확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사랑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치통과 그사람의 방귀끼는 습관과 그 사람의 짜증내는 모습, 이 모든 걸 다 알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어요. 부분적인 정보만 가지고 사랑에 빠진 뒤 나머지를 내 상상으로 채워요. 그 상상은 대부분 내 욕망이지요. 그리고 3,4년 후 사귀다 상대가 내 맘대로 안되면 넌 왜 내 바람대로 안되냐고 화를 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원래 그 모양이에요. 이 또한 사랑의 기본적인 속성이죠.


여기서 커튼은 사랑하는 사람의 좋은 면만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커튼을 걷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원래 이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이 다 드러나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죠. 로맨틱한 상황에 갑자기 배가 아파오고, 나름 잘 보이려고 입은 옷이 너무 꽉 끼어 숨을 참고 신발에 뒷꿈치가 까집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소설에서는 잘 다루지 않아요. 정말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우리의 삶은 커튼 뒤의 모습이 진짜입니다. 그리고 커튼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을 보여주죠. 

그 한 예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입니다. 소설 속에는 커튼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는 거 같습니다. 궁금합니다. 다음에 읽을 책으로 선정해 두었지요.


이 책의 마지막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 소개합니다. 제가 항상 읽고 싶다라고 생각만 하고 있는 책입니다. 쉽사리 읽어봐야 겠다고 결정을 못하는 책이죠. 그런데 박웅현 작가는 말합니다. 자기는 스토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한 편의 시를 읽듯, 한 줄 한 줄 명언을 읽듯 읽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책에서 인상깊었다는 부분을 소개합니다. 그가 소개하는 문장들을 읽어보니 저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글귀를 조금씩 얻어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파우스트』도 재미있게 읽을 날이 생기겠죠.

마지막으로 박웅현 작가가 소개하는 파우스트의 글귀를 소개합니다. 역시 후회없는 책이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친구여, 부득이 그대가 청춘을 필요로 할 때란

전쟁터에서 적들이 그대에게 밀어 닥칠 때,

사랑스럽기 한량없는 소녀들이

전력을 다하여 그대 목을 끌어안고 매달릴 때,

빨리 달리기 경주의 월계관이 멀리

도달하기 어려운 골인 지점으로 눈짓하고 있을 때,

회오리 바람처럼 돌아가는 격렬한 춤을 춘 다음

주연을 베풀어 술 마시며 밤들을을 지새울 때 올시다.


지상의 작은 신이라 자처하는 놈들은 언제나 판에 박은 듯,

천지창조의 그날 그대로 괴상망측하지요

차라리 당신이 하늘의 빛을 비춰주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이 조금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텐데요.

인간은 그걸 이상이라 부르며

어떤 짐승보다 더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데만 쓰고 있어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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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의 소설 『미국인』은 앞 부분에서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 라고 하는 문장이 있다.


나는 그 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할 것이다


- 이미도, 『똑똑한 식스팩』 中



저 역시 『미국인』 에 등장하는 한 남자와 같습니다.

나쁜 운명을 깨우기가 무섭습니다.

그런데 좋은 운명, 나쁜 운명이라는 것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죠.

저에게 닥쳐오는 좋은 운명(행복), 나쁜 운명(불행) 을 모두 받아들이도록 마음가짐을 가져야 겠습니다.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결국 하나의 운명이 되고 한 인간의 생이 되겠죠.

위축되지 마십시오. 저도 위축 될 때 마다 한 번 씩 이 글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당당하게 큰 걸음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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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中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 라고 했다. 사람들은 매일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대부분은 아마도 어제와 그렇게 다른 오늘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루하루를 너무나 똑같이 살아가면 아쉽지 않은가? 무언가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어제와는 다른 날씨를 몸으로 느껴보고, 어제와는 다른 시선으로 길가의 나무와 가로등을 쳐다봐야 하지 않을까? 


보도 블록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를 바라보면서 생명의 강인함을 느껴보아야 한다. 출퇴근 길에 눈에 보이는 아파트 공사현장을 바라보면서 한 번 더 질문해봐야 한다. 이렇게 모든 논과 밭을 아파트로 바꿔야만 하는 것일까? 그냥 단순히 걷지말고, 오감을 열어두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자. 그리고 하루의 삶에서 감탄할 것들을 찾아보자. 오늘 하루 나의 즐거움은 종이 위에 적는 서걱서걱 소리나는 만년필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찾아내자.


'사물에 대한 감수성', 이 역시 많은 관심과 연습이 필요하다. 바라보고 관찰하고 느껴보자. 

그리고 조용히 사색을 하면서, 생각을 하자.  생각이 깊어지면 '사물에 대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보자.' 그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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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中


이 글을 처음 보았을 때는 작가가 이 문장을 쓰기 위해서 소설 속의 주인공 이름을 롤리타라고 지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롤-리-타' 혀 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이 문장을 몇 번을 따라 해 봤는지 모른다. 그리고 따라 할 때 마다 혀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유심하게 느껴봅니다. 정말 입천장을 세 번 건드리고 마지막에 앞니를 건드립니다. 분명 작가는 이 문장을 염두해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런 문장이 나왔다면 정말 너무 합니다.


이 문장의 진가는 영문으로 읽어 봐야 합니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번역된 글보다 영문으로 읽었을 때 느껴지는 건 확실히 나름니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한 번 따라서 읽어보세요. 마치 시인들의 문구같기도 하고, 랩퍼들의 라임같기도 합니다. 이 부분도 읽어보시죠.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t발음의 연속된 향연입니다. 읽는 재미가 몇 배로 커집니다. 


영어 독해 능력이 좋지 않아서 책 전체를 영문으로 읽어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아마 『롤리타』는 영문장의 매력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롤리타』를 읽으려고 영어 공부를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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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김승옥의 『무진기행』 中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의 명문장인 이 글을 보고 나서 안개는 저에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안개가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 하나였다면, 지금 만나는 안개들은 때로는 저를 뺑 둘러싼 적군, 다른 때는 저를 둘러싸고 지켜주는 아군과 같이 느껴집니다. 아침에 안개가 끼는 날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 문장이 생각납니다. 아직 무진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무진에 갈 일이 있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무진의 안개에 둘러싸여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안개를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이라고 표현 할 수가 있었을까요.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이글을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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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블로그를 하는 걸까?




 저는 블로그를 합니다. [조르바, 위버멘쉬를 꿈꾸다]라는 문패를 가지고 있지요. 블로그 이름을 지을 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혼자 읽으면서 뿌듯해했습니다. 그리고 니체의 책들을 소개하는 책을 읽으면서 '위버멘쉬(초인)' 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니체의 책들을 읽어내기에는 책력이 부족하여 여전히 니체의 책 주변만 맴돌고 있습니다.

 

블로그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고민을 했었죠. 그러다 그냥 좋은 건 다 끌어다 붙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조르바, 위버멘쉬를 꿈꾸다』 였습니다. 이 블로그 명을 지을 때는 '조르바'를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했고, '위버멘쉬'는 완벽한 사람 하지만 완벽하기에 조금은 자유로움이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석을 잘못한 겁니다. 단어 한 번 들어봤다고 아는 체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죠.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이 완벽을 향해 간다.' 로 해석을 했습니다. 반대로 『위버멘쉬, 조르바를 꿈꾸다』 라고 짓기도 했는데요. 반대로 '완벽을 향해가는 사람이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라는 뜻으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르바, 위버멘쉬 둘 다를 꿈꾼다. 라는 중의적인 의미로도 저 혼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왜 이런 이름도 조금씩 고민하면서 블로그를 하는걸까요?

처음에는 그냥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나도 한 번 해볼까가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제가 꾸준히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인정욕구' 입니다. 누군가에게 제가 쓴 글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이 글 참 좋네, 글 잘 쓰네.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어떤 이가 제가 쓴 서평을 읽고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고 했을 때는 제가 그 책의 저자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페이스북은 만들어만 놓고 잘 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좋아요' 에 하나에 왜 매달리는지 그 마음 역시 알 거 같습니다.

 

 

■ 무언가 부족한데, 부족한데

 

제가 블로그에 쓰는 글은 보통 한 권의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제 생각을 풀어내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쓰면서 이 형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될 거 같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히 책이라는 수단에 매몰되지 말고 지금까지 읽은 책들과 서로 연계관계로 찾아내고, 조금 더 포괄적이고 통찰력있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욕심이 생긴 건 주변에 이렇게 쓰는 사람들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입니다.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열등감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절대 좋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더 나은 한 발자국을 위한 충분한 힘이 되어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족한 것은 알았습니다. 어떻게 글을 쓰고 싶은 지도 머릿 속에 희미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길을 모르고,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생각, 아이디어, 재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 그걸 찾아야 합니다. 다행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았으니까요.

 

 

■ 방법은 다시 책으로 - 『메모 습관의 힘』



 

예전부터 메모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연습장에 아무런 규칙 없이 적어내다 휴지통으로 향하는 일은 반복되었습니다. 바꿔 보자. 분명히 내 메모 습관을 바꿀 무언가가 있을꺼야 하면서 찾다가 발견한 책이 『메모 습관의 힘』 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데 아니 작가의 성향과 제 성향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스캐너도 동일한 제품입니다. 예전에 이어령 선생님의 집이 소개된 적이 있어서 보았었는데 그 때 보고 구매했었던 스캐너 였습니다. 저자가 사용하는 어플 중에 Google Keep 과 에버노트도 제가 평소에 사용하는 거였습니다. 종이 노트에 가끔 이것저것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부족한 점을 알았습니다. 저자의 책 제목에 있는 단어입니다. 신정철 작가는 '습관'이라는 게 몸에 베어 있었고, '습관'이 잡히다 보니 메모에도 체계가 있었고 나름의 방법론이 있었던 겁니다. 반대로 저는 마음이 내킬 때 마다 온오프라인으로 적어 두고, 나중에 사용을 하지 않다 보니 모아두었던 정보는 단순히 짐일 뿐이고, 결국은 쓰레기로 전락했던 겁니다.

 

저자인 '신정철' 작가가 나와 성향이 비슷한지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들이 저에게 잘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이번에는 eBook으로 읽었습니다.)을 다 읽고 바로 '메모 노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노트의 앞 표지에는 'Again Steady' 라는 콩글리쉬를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소개된 Pocket (기사를 수집하는 앱, 간단하고 상당히 유용함)을 설치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책에 소개된 주간계획표를 조금 수정해서 만들어 두었고,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메모를 하기 위한, 재료를 찾아낼 준비는 저자의 도움으로 약간의 체계가 잡혔습니다.


▲ 또 다시 노트를 준비했습니다. 이제부터 제대로 노트 습관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 저자의 주간 계획표처럼 저 역시 만들고, Daily Todo List를 만들었습니다.. 나름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생각, 아이디어를 해야 할 때입니다. 재료를 찾기 위한 실천의 단계가 남았네요. 저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생각한 것인데, 그건 알고 보니 세상을 좀 더 경험하는 방법 같았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오감을 조금 더 확장해야 합니다. 관찰을 해야 합니다. 오감으로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제 생각도 관찰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까지 관찰을 합니다. 그리고 떠오른 무언가는 일단 적어야 합니다. 이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 찰나를 잊지 않고 적어야 합니다.

 

일주일 가량 이런 연습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 좋은 예감입니다. 분명히 이 책을 읽기 전과 지금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의 카테고리에도 Why? 라고 해서 제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궁금한 점을 찾기 위한 폴더와 제 안의 감정과 책들에서 언급되는 이야기들로 만들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말들을 적어둘 생각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왠지 무언가 변할 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 Blogger로 세상과 소통하다.

 

Blogger 라는 말은 이미 10년 전부터 들어왔던 거 같습니다. 그 때도 이런 말이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비트의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조르바, 위버멘쉬를 꿈꾸다] 블로그입니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제 글을 읽고 제가 소개한 책들을 손에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사소한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조르바, 위버멘쉬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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