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73
한 사회의 습관이 갑작스럽게 달라지면 오래된 습관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언제나 거추장스럽고, 거치적거리고, 후미진 구석에 다소곳이 격리되어 있으면 더 좋을 그런 이질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런 처지에 내몰린 당사자들은 무척 불안할 것이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처지가, 자신의 앞날이...
이들을 괴롭히는 불안은 낯설면서도 엄청나게 방대한 세상에 의지할데 없이 혼자 내버려진 듯한 느낌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막연하기도 하고 원인을 특정하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개벽이 일어나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한 누가 쉽게 달래주기도 어렵고 치유되기도 힘든 불안이다.
P 97
아랫세대와는 살아온 습관이 달라졌으니 공유할 기억이 없다. 공유할 기억이 없으니 대화가 겉돈다. 서로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명절은 가족들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같은 시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다. 어른의 자리에서 인자한 표정으로 던져주는 덕담은 아랫세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이해할 수 없는 말, 실천할 수도 없는 말, 듣기 싫은 말, 답을 할 수 없는 말들뿐이다. "말랐네, 밥 많이 먹어라", "시집 (장가) 가야지.", "취직해야지", "애 빨리 낳아야지", "애 하나로는 안 된다. 둘은 되어야지", "아들은 꼭 있어야 되는 데" 대답하기 싫은 만큼 세대 간의 간격도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말이라고는 토속 사투리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어서 아랫세대가 쓰는 말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은어인지, 약어인지,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 토속어인지, 비속어인지, 암호인지, 표준말인지, 사투리인지조차 구분이 되질 않느다. 그렇다고 해서 분기탱천 고함지르며 나설 처지도 못된다. 따지고 보면 한글을 제쳐두고 한자를 숭배하다가 일제강점기 때는 일어로 말하고 읽었고, 해방 이후에는 영어만이 살길인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도 그 세대들 아닌가?
사람이 불안을 일으키는 제일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세상으로부터, 또 사람들로부터 외따로 떨어져 나왔다는 느낌이 들때이다. 어느 순간 내 몸이 머물고 있는 이 자리가 한없이 어색해지고, 사방에 펼쳐진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고, 그렇지만 어느 한편에도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사방팔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갇혀 있는 것 같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을 때, 이 불안을 도대체 어찌 감당할 것인가? 누구든 나쓰메 소세키처럼 죽든지, 미치든지, 종교를 얻든지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까?
P 116
미국의 문화평론가 수전 손택은 멜랑콜리라는 정서에서 활기와 격정이란 매력을 빼고 나면 의기소침이 된다고 했다.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은 의기소침"이 요즘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우울증인 셈이다.
사실 멜랑콜리라는 정서에 숨어있는 낭만적인 활기와 격정, 그리고 고독한 몽상의 세계에서 남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시선은 예술과 철학의 창조성을 뒷받침하는 토대였기도 하다.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철학은 그의 멜랑콜리한 정서가 이루어낸 성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멜랑콜리한 정서 즉 우울을 자신의 "가장 출실한 애인"이라고 하였고, "많은 사교 클럽의 친구들 외에 가장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자신의 "내밀한 마음의 공간에 지진을 예감"하게 하는 정서였다.
P 118
도스토예프스키의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도스토예프스키야말로 멜랑콜리한 정서 이면에 숨어있는 활기와 격정을 최고로 고양시켜 삶과 창작의 의지를 촉발시키고, 우수와 의기소침, 그리고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악마의 저주"라고도 하는 간질병을 앓으면서도 "뜨거운 피와 입가의 싸늘한 떨림을 가지고 삶과 죽음 사이의 예기치 못한 실존적 상황을 증명"한 유일한 작가라고.
P 119
한민족의 한의 정서를 연구해 온 한 의학자는 한에 대해 정의하기를 "한이란 역사적으로 나라를 잃고 고난을 수없이 겪었으며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상태로 억울한 처지에서 살아온 계층의 사람들의 마음 심층에 쌓이고 응어리진 감정이며, 또한 수백 년간 내려온 한국인의 감정적 문제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 이는 약자의 욕망 억제, 패배의식, 좌절, 적개심, 허무감, 체념 등의 감정적 복합체, 또는 설움 덩어리로서 개인을 넘어 집안과 민족적으로 전승된느 것" 이라고 했다.
P 120
풀리지 않고 쌓인 한은 화가 되고. 그 화는 다시 몸의 이상을 불러온다. 한이 쌓이고 쌓여서 생긴 한국인 특유의 증상을 우리는 오랜 세월 홧병이라 불러왔고, 국제적 진단 기준에 따라 질병을 명명하고 분류하는 정신의학계에서도 '홧병'을 문화와 관련된 정신의학적 증후군으로 인정하고 있다.
화가 쌓이고 쌓여서 한이 되는 이유는 화를 불러오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데다, 대상이 특정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힘을 가진 상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이란 권력이나 금력의 부당한 횡포나 전횡 탓에 억울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거기에 대해 보상을 받기는 커녕 저항도 할 수 없고, 정당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체념이 어우러진 정서이기도 하다. 달래 주지 않는 슬픔, 위로받지 못한 억울함,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과도 받지 못하는 부조리, 그런 슬픔과 억울함, 원망이 섞이고 맺히면서 응어리진 것이 한이 되는 것이다.
P 123
우울증은 별안간 찾아오고 증세는 느닷없이 드러난다. 그렇다기보다는 그렇게 보인다. 속으로 안으로 짓눌려 오던 것이 어느 한계에 도달함으로써 한 인간의 정신세계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거나 한 인간의 에너지가 불타듯이 소진되면서 나타나는 것이므로 겉보기에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증세처럼 보인다. 그런데 모른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 자신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그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무엇에 그렇게 짓눌리고 살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속은 문드러지고 있으면서도 겉모습은 쾌활하기 그지 없고 활력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연기를 해 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죽음의 문을 두드리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이다.
p 131
한국의 노인들은 은퇴 이후 자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고 자족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함부로 은퇴할 수가 없고 은퇴하더라도 이전에 해 왔던 일과는 다른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해야 한다. 여전히 사회 속에 묶여서 젊은 층과 경쟁을 해야 하고, 생계를 위해서 멸시와 조롱을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홀몸노인들의 빈곤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들의 고립과 고독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모든 생명체의 끝은 죽음이지만 그들의 끝만은 고독사라 부른다.
p 152
우리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된 토지 위에 건설된 대단지 아파트에 수용되어 관리비를 내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늙고 병들게 되면 아파트를 떠나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격리, 수용되어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호모 가스트렌시스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 호모 카스트렌시스
이반 일리치가 산업사회의 주거문화를 비판하면서 사용한 용어이다. "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디에 수용되는 것은 불행의 표식입니다. (중략) 산업사회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입주자로 만들고자 하는 유일한 사회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늙고 병들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요양병원에 수용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수용된 이상은 내 삶을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용기관에 의해 관리된느 삶을 살게 되며, 공동생활과 공동규칙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다.
p170
이승을 떠나려는 사람에게 투입되는 의료처치는 아무리 경미한 것일지라도, 환자를 위한 지극히 순수한 목적의 시술이라 할지라도 떠나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쇠사슬이다.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환자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의사인 나에게 남기고 간 가르침이다.
p 173
정진홍은 불쌍한 죽음이란 "죽음이 삶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 살다가 자신의 죽음을 맞는" 것이며, 이는 "죽을 줄 모르고 살다 죽는 죽음" 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의 죽음들이 하나같이 불쌍하다.
p 187
생명체라는 한자말을 풀어보면 하늘이 '살아'라고 내린 명령을 받은 몸 정도가 되겠다. '살아'라는 명을 받은 만큼 살아가는 동안 죽음에 대한 생명체의 공포와 거부 반응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몸에 각인되어 있는 것일 터이다. 신생아들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조건반사는 위험으로부터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본능적 반응들인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삶을 위협하는 위험을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이를 거부하는 본능적인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반사행동과 함께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는 어린 생명이 보여주는 삶의 의지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이가 들어 성인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점점 옅어진다. 우리는 지금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위험과 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그런 위험에 노출된 인간의 몸은 유약하기 짝이 없지만, 한참 활동하고 일을 해야 할 나이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삶과 죽음은 서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이지만 누구든, 특히 젊을수록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인 듯 생각하고 살아간다.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죽음을 아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갑자기 죽음의 공포를 몰고 오고, 권태롭기까지 한 일상을 한순간에 뒤엎어버리는 것이 암이다.
병원에서는 치료만 잘 받으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스스로도 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지만 희망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소진되어가는 몸과 버둥거리면서 싸우다가 결국에는 탈진하여 죽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암이다. 어느날 갑자기 삶을 참 덧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암이라는 병이 가진 속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긴 투병생활 끝에 암에서 회복된 사람 중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p 194
베이비부머 세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의 출산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세대들이어서 자녀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하나 아니면 둘 뿐인 자녀들은 또 세계화, 국제화의 영향을 받고 자란 세대였고, 부모가 먼저 나서서 기러기 신세를 감수하면서까지 자녀들을 '글로벌화'된 세계인으로 키운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들은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 또는 한솥밥 먹는 식구의 개념이나 가정의 질서를 받아들이기 거북해하고,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세대들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장성한 자녀들이 만들어가는 가족문화는 핵가족을 넘어 일인 가구로까지 바뀌고 있다. 그런 자녀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 늙고 병든 부모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 1~20년의 세월이 더 흘러 지금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삶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부부가 한날한시에 같이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사주를 타고났거나 동반자살을 하지 않는 이상 한 사람은 반드시 독거노인이 될 수 밖에 없다. 금슬이 아무리 좋은 부부였다 할지라도 남은 한 사람은 혼자 쓸쓸히 살다가 혼자 쓸쓸히 죽어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p 196
50~60대 연령층의 행복지수가 낮은 데에는 아무래도 경제적 요인이 제일 크게 작용할 것이다. 위로는 늙고 병든 부모를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고, 아래로는 7포 세대라는 자녀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형편인데, 자신은 이미 일터에서 밀려나왔거나 곧 밀려나올 처지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더라도 자아성취나 자아실현이니 하는 거창한 명분보다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거친 일터로 내몰리다시피 한 형편이니 일에 신명이 날 턱이 없다. "50대 자영업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한편 "부도 자영업자의 절반이 50대"라는 통계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수치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대의 우울증과 자살율이 꾸준히 올라가는 것도, 그리고 범죄가 증가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일 것이다.
p 236
지금 병의원에서 치매라고 진단되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가정에서 보호를 받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모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알츠하이머병을 확진한느 것은 사후 부검을 통해 뇌조직에서 몇몇 병리적 소견을 확인하는 길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MRI와 같은 방사선 검사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을 특정할 수 있는 특이한 소견은 나오지 않고, 혈액이나 체액을 이용한 검사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특정할 만한 객관적 소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체 훼손에 대한 거부정서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학술적 목적 이외에 망자나 유족들에게는 아무 실익이 없는 부검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사후에도 알츠하이머병으로 확진된 사례는 많지 않다.
그래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대개 간이치매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그런데 치매검사법은 설문방식이다. 실지 치매를 비롯한 정신질환의 진단도구는 설문방식으로 구성된 것이 많다. 다른 신체 질환이나 장기에 뚜렷한 병변이 확인되는 질환과 달리 이들 질환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사방법이나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병을 확진할 수 있는 검사방법이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실지 진료현장에서 상용화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상당기간 치매에 대해서는 환자의 병력과 함께,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설문방식이 가장 유용한 진단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다.
P 248
망각의 효용에 대한 니체의 설명은 탁월하다. "일종의 능동적인, 엄밀한 의미에서의 적극적인 저지 능력"이며, 불쾌한 생각들이 우리의 의식에 떠오르지 않도록 "의식의 문과 창들을 일시적으로 닫는 것"으로 "마치 문지기처럼 정신적 질서와 안정, 예법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효용"이란 것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망각의 효용이다. 따라서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예상치 못했던 외상이 사람의 정신세계에서 망각이란 문지기를 제거해버린 것이 외상성 신경증이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다. 이런 외상이란 "자극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장벽에 어떤 파열구가 생긴 것"으로 "유기체의 에너지 기능에 대규모의 혼란을 초래하고 가능한 모든 방어적 장치를 가동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의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하여 "쾌락의 원칙이 중지되는 한편 다량의 자극이 범람하는 사태에서 정신기관을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외상성 신경증이다.
P 252
컬럼비아대학 예술사 고고학부 교수인 조너선 크레리는 그의 저서에서 "신경과학과 제휴한 제약산업은 예전에는 불필요했던 제품을 위한 거대한 새 시장을 창조할 목적으로 갈수록 많은 감정상태를 병적인 것으로 제시하여 왔다"면서 "수줍음, 불안, 가변적 성욕, 주의산만, 슬픔 등의 관념으로 부정확하게만 암시되는 인간의 정서와 감정의 변화가, 거대한 이윤을 안겨주는 약물이 공략해야 할 의학적 장애로 그릇되게 변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확실한 의학적 근거는 아직 없는 것 같다.
P 276
집단의 관행과 인습에 젖어 사는 삶의 속모습을 융은 아래와 같이 진단한다.
각 개인은 집단 속에 있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무의식적으로 더 나쁜 사람일 수 있다. 각 개인은 집단에 떠맡겨져 있으므로 그만큼 자기의 개인적 책임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큰 단체는 도덕성과 지능의 측면에서는 우둔하고 포악한 짐승을 닮은 경우가 있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그 조직의 부도덕성이나 맹몽적 우둔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P 282
칼 수구스타프 융이 지적하는 비뚤어진 문명인이란 "공적으로 보증되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영적인 세계와는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산, 바다, 하늘, 땅, 강, 바람, 구름, 나무, 새와 온갖 꽃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어떤 길을 가야 할 지 넋을 잃은 채 얼이 빠진 채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바로 '비뚤어진 문명인'인 우리들의, 결코 행복하지도 못하고 건강하지도 못한 삶의 모습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