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Dong-A Business Review) No.236



■ 펀치드렁크 예술감독 펠릭스 바렛 인터뷰

  └ 무대, 대사, 플롯도 없는 기괴한 공연? 참여와 소통으로 놀라운 몰입감 제공하다.


- 슬립노모어를 본 관객들은 공통적으로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연극의 새로운 공간과 형식에 열광한다. 전문가들은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린 펀치드렁크의 새로운 공연 형태를 '이머시브 연극'이라고 정의했다. 이머시브 연극이란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와해된 공간적 환경을 제공하고, 관객이 직접 이동하며 창의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참여형 공연 형태"를 말한다.


-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었다. 관객을 적극적으로 무대에 참여시킨다. 무대는 실제 한 건물의 여러 곳에서 진행이 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때로는 함께, 때로는 혼자 각각의 방으로 들어가며 연기자들은 연기를 한다. 사람들이 가는 동선에 따라 이야기의 구성 중 순서는 바뀌지만 전체를 보고난 후에는 이야기가 연결이 된다. 같은 공연을 보았지만, 사람들마다 느끼는 방식은 달라지는 것이다. 

※ 차별화, 관객 친화, 창발



■ 윤종신의 음악 창작 및 유통 플랫폼 전략

  └ 모차르트보다 위대한 살리에리? '전략적 인재 활용'으로 천재를 넘어서다


- 윤종신은 5집을 만들 때 유희열을 통해 익힌 공식으로 이런 변혁에도 슬기롭게 대처해왔다. 윤종신은 1996년 발매한 6집부터 최근의 '월간 윤종신'까지 하림, 이근호, 조정치, 포스티노 등의 '신예 천재'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음악 노예'로 곁에 두고 작곡과 편곡을 대거 맡기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 윤종신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 4월만 제외하고 2010년 3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102곡의 음악(리메이크 18곡 포함)을 꾸준히 발표하며 월간 윤종신의 페이지 수를 차곡차곡 늘려왔다.


- 월간 윤종신은 어느덧 윤종신만의 플랫폼이 아니라 모든 뮤지션들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위 뜬다는 아티스트들은 죄다 한 번씩 거쳐 가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됐다. 월간 윤종신이 폐간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으며 세련된 음악을 대중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개방형 플랫폼'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감성적이고 세련된 음악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월간 윤종신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무수히 쏟아지는 애중음악의 홍수 속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부류의 음악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음악 창작 및 유통 플랫폼인 월간 윤종신을 통해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저렴한 마케팅 비용으로 본인들의 작품을 원하는 두터운 고객층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 월간 윤종신이 플랫폼으로서 높은 가치 창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 '월간 윤종신' 의 힘은 바로 그 꾸준함의 시간 속에서 시작된다. 분명 매달 한 곡씩 쌓여가면서 양적인 측면에서의 성장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속에서의 질적인 측면의 자연스러운 힘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 꾸준함이 지속되면서 동료 가수들과 후배 가수들이 자연스럽게 합류되고, 자연스럽게 홍보의 역할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이전보다는 적은 노력으로 더 나은 성과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플랫폼을 통해서 자원들이 모여들고 그 속에서 새로움이 창출되는 것이다. 내 삶에서도 플랫폼은 필요하다. 플랫폼을 통해서 내 삶의 정보들을 하나의 통로로 모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지식과 경험들이 쌓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경험과 지식들이 이제는 그 플랫폼이라는 것을 통해서 예전보다는 적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효과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게 힘이다. 어떻게 하면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 하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효과적/호율적으로 처리해나갈 수 있을까. 그 방법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나가자.

※ 플랫폼, 꾸준함, 협력



■ 관행 파괴한 현대무용가 안은미

  └ 작품 형식, 가치관, 전통, 관객과의 소통... 모든 것을 깨고 현대 무용의 전설이 되다.


- 안은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파격적인 무용가로 꼽힌다. 그는 작품의 형식은 물론 작품 세계, 그리고 예술가와 관객이 맺는 관계까지 기존 관행을 모두 파괴하고 새로움을 시도했다. 그의 예술 활동은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고 기존에 없었던 시장을 창출해 내는 일종의 '창업가 전신'과 맞닿아 있다. 새로운 장르의 현대 무용을 끊임없이 시도했으며 글로벌 무대에서 동양인 여성 안무가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또 예술가의 근엄함과 신비주의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터뷰 등을 통해서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며 현대 무용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 성공요인 분석

1)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2)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정신

3) 창업가 정신을 접목한 노련한 예술가


- 현대무용가 안은미를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철학과 고집을 통해 굽히지 않고 움직이는 힘이다. 분명 이렇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자기 확신과 확신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어느 정도의 실력이 쌓아가면 그때 부터는 그 사람의 철학이 중요한 법이다. 이제는 실력과 철학을 모두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 작가와 상생 파트너십 구축한 아라리오갤러리

  └ 판매하는 '딜러' 아닌 지원하는 '매니저', 전속작가제 도입해 '윈윈' 모델 구현


- 아라리오 갤러리의 성공 요인


1) 공간 브랜딩 통해 중소도시 갤러리라는 지역적 한계 극복

 : 세계적인 스타 작가들의 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고 수십억 원대 조각품들로 구성된 야외 조각 공원을 운영하며 공간에 파워와 권위를 더함, 그 결과 천안이라는 중소도시에 근거지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갤러리로 자리매김에 성공


2) 호랑 역할 재정의 통해 작가와 갤러리 간 상생 파트너십 구축

 :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딜러'가 아니라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관리해주는 '매니저'역할로 갤러리 역할 재정의. 전속작가제 도입해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모델 구축.


- 30년 넘게 수많은 컬렉션을 해오던 김창일 회장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외국 작가들의 작품만 수집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그는 외국 작가, 특히 유망한 신예 작가들의 경우 앞으로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아무리 창의적인 아티스트라 해도 소위 '뜰'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 그 주된 이유는 "작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의 부재 때문" 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경우 작가마다 전속 갤러리가 붙는다. 그 덕에 작가는 작품에만 전념하고 갤러리가 나서서 각종 전시회도 기획하고, 작품도 유통시키며,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엔 대부분 작품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릴 생각만 하지 체계적인 관리가 없다." 는 게 김창일 회장의 설명이다.


- 아라리오갤러리는 파워 컬렉터인 김창일 회장의 소장품과 해외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2002년 개관 초기 세계적인 스타 작가들의 전시회를 집중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아라리오갤러리라는 공간에 권위를 더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YBA 처럼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작가들의 기획 전시회를 통해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전시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더했다. 엄청난 거금을 들여 수집한 컬렉션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거리에 '내놓은' 것 역시 아라리오갤러리의 공간 파워를 더하는 데 플러스 요인됐다. 미술품은 소수의 상류층과 지식인들이나 즐기는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물론 일반 대중과의 지속적 소통이 가능한 접점을 만들어냄으로써 아라리오라는 브랜드 지속성 관점에서도 큰 도움에 됐다. 그 결과 근거지가 지방 중소도시에 있다는 지역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길러리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 시작은 김창일 회장의 컬렉션과 그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그를 통해 연결되는 네트워크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전략들을 통해 아라리오갤러리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중요한 것은 매니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매니아가 되어라. 그리고 나면 그 이후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따라오게 될 것이다.


■ 미술관의 통념 깬 프랑스 마그재단

  └ "돈 말고 열정" 아티스트 놀이터로 출발, 살아 숨 쉬는 예술 플랫폼으로 우뚝 서다.


- 마그재단 미술관은 오로지 당대에 활발히 활동하던 아티스트들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터전, 다시 말해 그들의 영감 넘치는 놀이터로 기획되고 만들어졌다. 작가들도 직접 나섰다. 그래서 마그재단 컬렉션 중 상당수는 오로지 이 전시 공간만을 위해 창조됐다. 샤갈의 모자이크, 미로의 정원, 자코메티의 뜰, 브라크의 타일 작품이 바로 그 살아 있는 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미술관이 많지만 다수의 작가들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동참해 미술관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낸 사례는 극히 드물다.


- 마그재단 미술관의 가치이자 성공 요인


1) 20세기 예술사를 써 내려간 보석 같은 '다국적' 작가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보통 지역 기반의 미술관은 자국 작가들을 중심으로 세워진다. 설립자 부부는 프랑스 국적을 지니고 있었지만 마그재단 미술관의 컬렉션을 보면 작가 국적이 다양하다. 브라크나 레제 같은 프랑스 작가들도 있지만 스위스 출신인 자코메티, 러시아에서 망명한 유대인 샤갈,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 미로와 건축가 세트르, 벨기에 아티스트 폴 뷰리, 미국이 낳은 칼더 등이 있다.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활동한 갤러리 가문답게 다국적 아티스트들로 구성한 결과, 다채로운 개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은 20세기 최고 작가들의 컬렉션으로 남게 됐다.


2) 단순한 자본의 힘이 아니라 아티스트들과 남다른 친분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협업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공공이든, 사립이든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 컬렉션은 대개 꾸준한 수집의 산실이거나 아티스트들이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의뢰를 받아 탄생한다. 그런데 마그재단의 컬렉션은 오히려 아티스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미술관 자체를 예술품으로 빚어낸 '관계의 미학'이 작용한 경우다. 메세나 활동의 전범으로 여겨지는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 가문이 20세기에 작은 규모로 환생한 하지만 보다 능동적인 협업의 예를 보는 듯하다.


3)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가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가 빼어난 한적한 마을 생폴드방스를 택함으로써 '힐링 미술관'의 본보기가 됐다. 사실 예술이란 자연을 재현하거나 모방하고, 그 위대함을 찬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만 해도 대도시가 아니라 고요한 자연 속에 '힐링' 콘셉트로 지어진 수줍급 미술관은 드물었다. 마그재단 미술관은 독일 노이스의 인셀홈브로히미술관,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과 과 더불어 자연과 공존하고 소통하는 유럽 최고의 '힐링 뮤지엄'으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 관광지인 니스를 옆에 둔 지리적 이점도 있지만 사실 남프랑스는 워낙 이름있는 미술관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지역이라 경쟁도 만만치 않ㅅ다. 하지만 자연미를 머금은 마그재단 미술관을 보기 위해 일부러 생폴드방스를 찾는 '힐링족'이 꽤 많다.


4) 과거를 화려하게 수놓은 '올드 마스터' 들에게만 기대지 않고 현존 작가들과 꾸준히 협업함으로써 동시대 문화 플랫폼으로서의 결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애초에 문화유산이 되기를 원한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예술'에 초점을 맞춘 설립자 가문의 뜻을 이어가는 행보이기도 하다 .개관식 당시 앙드레 말로의 연설문 내용처럼 미술관을 지을 때 마그 부부는 단순한 저장고 처럼 예술 작품들이 박제되듯이 보관되는 게 아니라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아티스트들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역동적인 공간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 마그재단 미술관의 시작은 마그 부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의한 작품들이었다. 마그 부부의 매니아 적인 측면이 역시 그 시작이었으며, 이를 통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무언가에 빠져들고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자.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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