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를 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기독교 목사와 신부들이 역사적 예수와 다른 구세주 유형을 구상해냈다고 비판한다. 니체에게 역사적 예수는 자유와 초탈, 평등과 사랑을 삶으로 실천한 "역사상 유일한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사제집단은 사랑을 통한 구원을 신앙을 통한 구원으로 바꿨다. 교회는 물론, 부활과 심판에 대한 종말론적 교리들 또한 예수의 뜻과 어긋난다. 니체는 구세주 유형을 왜곡하고 교회 조직을 세운 목사와 신부들이 신에 대한 복종을 권고하면서 실은 자신들에게 복종을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흥미롭게도 니체는 그가 비판한 사제 집단인 목사의 아들로 1844년 태어났다. 대학에서 신학과 함께 고전문헌학, 예술가를 공부하던 니체는 곧 신학을 접고 문헌학에 몰입했다. 1869년 당대 최고의 문헌학자 아래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니체는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했다. 교수 니체 는 편두통과 만성적 위장 장애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 따뜻하고 공기가 신선한 곳을 찾아 다녔다. 사회적 삶은 최소한의 사교에 그쳤고 그나마 편지로 소통했다.


1879년 건강상의 이유로 교수직에 사표를 던진 니체는 그로부터 4년 뒤에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발표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숨을 거둔 바로 그해다. 니체는 그 책으로 자신의 철학적 과제를 실현했다고 자부했지만, 출간 직후 평가는 인색했다. 1부에서 4부까지 연속 출간했지만 마지막 4부는 자비로 출간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니체는 좌절하지 않았다.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자기를 넘어서는 과정의 고통을 기꺼이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자유정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순을 넘어서는 창조적 삶을 제시했노라 확신했다.


하지만 니체는 1889년 1월 광장에서 마부가 말에 채찍을 휘두르는 광경을 목격한 니체는 갑자기 달려가서 말의 머리를 얼싸안더니 쓰러졌다. 곧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지만 사람을 식별하지 못했다. 휠체어에 의존하다가 1894년부터는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20세기가 열리는 1900년 니체는 병상에서 숨을 거뒀다. 루 살로메에게 연정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니체가 남긴 가장 유명한 명제 "신은 죽었다"는 단순히 기독교적 신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신'은 서양 철학이 전통으로 삼아온 형이상학적 초월세계를 뜻한다. 플라톤의 철학과 기독교 신학이 공유하는 세계관, 곧 주어진 삶 너머에 있는 '피안의 세계'를 상정하는 사상과 결별해야 옳다는 제안이 "신은 죽었다"에 담겨 있다. 니체에게 그것은 인류가 '천상의 세계'에 빼앗긴 삶의 의미를 되찾는 전환점이자 잃어버린 지상의 세계를 되찾는 과정이다.


사람들이 '초월적 가치'에 현혹되지 않고 지상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며 창조적 존재로서 자신을 형성해가야 한다고 생각한 니체는 '삶을 긍정하는 철학'을 제시했다. 그 철학은 기존의 형이상학적이고 개념적인 틀을 벗어나 예술적이고 창조적이다.


니체가 삶을 걸어가던 당시 서양 철학은 헤겔이 대표하듯 보편성과 전체성을 중시하는 '동일성'과 '정체성'을 중시했다. 니체는 그 전통을 해체하며 개체들의 차이를 중시했다. 동일성에 맞서 차이를 중시한 니체가 연 새 길은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 '탈근대 사상' 곧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20세기 내내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숱한 니체 연구서들이 쏟아졌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라는 선언이 적중한 셈이다.


니체는 시간을 초월한 정태적 실체나 존재를 부정한다. 우주와 자연의 모든 것은 시간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역동적 운동이다. 니체에게 그것은 '영원회귀' 사상으로 이어진다. 모든 현상, 모든 존재가 영원히 반복되어 생성된다는 뜻이다. 우주의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그 자신을 무한히 반복했고, 자신의 놀이를 영원히 계속하는 순환이다."


그렇다면 영원히 반복되는 삶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니체의 답은 명료하다. 그에게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하는 존재'다. 니체의 사상이 처음 국내에 소개될 때 그것을 '초인'으로 옮겼지만, 그 번역어 또한 '슈퍼맨'을 떠올리는 오해를 낳기 십상이다. 니체가 '위버멘쉬'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는 간명한 다음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스스로 명토박아 밝혔듯이 니체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보았다. 그 '무엇'이 '위버멘쉬'다. 니체에게 인간은 "스스로를 극복하는 생성"이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가는 주권자가 바로 위버멘쉬다.


많은 사람들이 오독하고 있지만 니체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

을 '표준화'한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분노했다. 니체는 현대 사회와 고대 그리스 사회를 견주어 설명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특성을 부각시키고자 했고 독특한 행위와 업적을 통해 자신이 최고임을 보여주었다." 문헌학 연구에 근거한 니체의 분석이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독특한 개성이나 행위를 '일탈'로 규정함으로써 순응주의 사회를 조장한다. 순응주의 사회는 니체에게 정치의 쇠퇴형식이자 정치의 소멸이다. 니체는 근대의 정치를 '작은 정치'라든가 '정치를 상실한 정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 시대가 끝나간다고 예고한다. 주권자가 투표권만을 주권 행사로 여기는 현실에 대해 니체는 자신이 복종해야 할 법을 만드는 데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인 '작은 정치'라며 날카롭게 고발했다. 주권자는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니체가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소유물의 분배에 집중함으로써 문화나 도덕이 갖고 있는 힘에 너무 무지하다는 니체의 진단을 오늘날에도 새롭다.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사회주의는 큰 권력을 갈망하면서 전체주의를 닮아간다고 본 니체는 정치의 쇠퇴를 예언했다. "사회주의가 원하는 국가가 달성된다면 생성의 강한 에너지는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가 그것이이다. 그때 국가는 새로운 생성적 힘을 상실하고 허무주의적 형태를 띠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니체의 그 예언은 소름이 끼치도록 적중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을 니체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니체는 대의제 민주주의도 통렬하게 비판했다. 대의제와 관련해서 니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리를 초월적 기구에 양도하면 양도할수록 가장 평균적인 자들의 그리고 마지막에는 최대 다수자들의 지배에 만족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니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기존의 가치에 적응하며 동일한 가치 아래 안주하고 있는 현상을 개탄한다. 다양한 국가 장치들, 법이나 관습, 문화가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강제해 '군주적 본능'이 완전히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에서, 생성의 능력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상실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 자못 날카롭다.



- 출처 : 기획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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