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김승옥의 『무진기행』 中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의 명문장인 이 글을 보고 나서 안개는 저에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안개가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 하나였다면, 지금 만나는 안개들은 때로는 저를 뺑 둘러싼 적군, 다른 때는 저를 둘러싸고 지켜주는 아군과 같이 느껴집니다. 아침에 안개가 끼는 날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 문장이 생각납니다. 아직 무진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무진에 갈 일이 있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무진의 안개에 둘러싸여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안개를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이라고 표현 할 수가 있었을까요.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이글을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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